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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대법원장 공백, 전원합의체 선고 지연 비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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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안철상

안철상

25일 0시를 기점으로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시작됐다.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후임 대법원장이 취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청문회를 마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당초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야당 원내지도부가 사퇴하면서 국회 본회의가 연기됐고, 표결도 기약없이 미뤄지게 됐다.

대법원장 공백 사태는 1993년 9월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문제로 사퇴한 뒤, 윤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 15일간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 이후 30년 만이다. 일단은 안철상(사진) 선임대법관이 대법원장 직무권한을 대행한다. 법원조직법 13조 3항에 따른 것이다.

다만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권한대행이 대법원장 직무를 대행했을 때 효력은 어떻게 봐야하는지 등 세부적인 규정은 없다. 대법원은 25일 오후 3시 임시대법관회의를 열어, 권한대행의 범위 및 권한 행사에 관해 논의했다.

대법원장이 공석이면 우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불가능하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재판장을 맡아 선고를 할 경우의 효력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권한대행이 선고를 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시각이 많다. 안철상 대법관도 25일 회의 직후 “대법원장의 궐위 상황이 계속될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만 권한대행 주재로 전원합의체 사건 논의는 무리가 없을 것이란 해석이 많다. 또 전원합의체 선고가 지연되는 동안, 대법관 4명이 한 조가 되어 진행하는 소부 선고만 진행하면서 신임 대법원장 임명을 기다리는 것도 가능하다.

대법원장뿐 아니라 대법관 두 자리도 공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내년 1월 1일에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으로, 신임 대법원장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후임 대법관 지명도 기약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장 임명이 미뤄진 데 이어 대법관 2명에 대한 인선도 지연되면, 초유의 ‘3인 공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해마다 2월에 내는 전국 법관 3100여 명의 인사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최종 대법원장의 재가가 없이는 고법판사를 선발하거나, 승진인사를 낼 수 없다. 이 최종 재가를 권한대행이 하기엔 부담이 크고 무리가 있다는 게 법원 내의 중론이다. 수도권 법원의 한 지원장은 “10조 판사(법관인사규칙 10조에 따라 뽑는 고등법원 판사)나 승진인사는 못할 것”이라며 “전 대법원장 퇴임 전인 21일 신규 법관 121명 임용을 마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26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뒤 지도부가 꾸려지면, 여야 합의로 본회의 일정을 다시 정해 이균용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추석 연휴 이후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커, 최소 9일 이상의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예상된다. 만약 표결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공백은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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