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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사법부 수장 자리가 비었다…전원합의체 선고 불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5일부터 대법원장 공석 사태를 맞은 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장' 소개 페이지도 아무 것도 쓰이지 않은 빈 화면이 뜬다. 대법원 홈페이지 캡쳐

25일부터 대법원장 공석 사태를 맞은 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장' 소개 페이지도 아무 것도 쓰이지 않은 빈 화면이 뜬다. 대법원 홈페이지 캡쳐

25일 0시를 기점으로 초유의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시작됐다.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후임 대법원장이 취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청문회를 마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당초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야당 원내지도부가 사퇴하면서 국회 본회의가 연기됐고, 표결도 기약없이 미뤄지게 됐다.

대법원장 공백 사태는 1993년 9월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문제로 사퇴한 뒤, 윤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 15일간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 이후 30년 만이다. “진짜로 공석 사태가 올 줄은 몰랐는데… 이제 완전히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등법원 부장판사 A) “청문회부터 난항이었지만, 표결 앞두고 뜻밖의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이슈까지 더해질 줄은 몰랐다”(지방법원 부장판사 B) 등 법원 구성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한 뒤, 신임 대법원장이 오기 전까지 궐위기간에는 안철상 선임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사진 대법원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한 뒤, 신임 대법원장이 오기 전까지 궐위기간에는 안철상 선임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사진 대법원

일단은 안철상 선임대법관이 대법원장 직무권한을 대행한다. ‘대법원장이 궐위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선임대법관이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한 법원조직법 13조 3항에 따른 것이다.

다만 대행 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권한대행이 대법원장 직무를 대행했을 때 효력은 어떻게 봐야하는지 등 세부적인 규정은 없다. 대법원은 25일 오후 3시 임시대법관회의를 열어, 권한대행의 범위 및 권한 행사에 관해 긴급히 논의했다. 대법관들은 “향후 사법부 수장 공백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추가로 권한 범위 등을 논의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공백이 길어질수록 권한 행사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후임 대법원장 임명 절차가 조속히 진행돼, 재판 지연 등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①대법원의 핵심, 전원합의체 선고 ‘멈춤’

대법원장이 공석이면 우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불가능하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재판장을 맡아 선고를 할 경우의 효력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권한대행이 선고를 굳이 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시각이 많다. 안철상 대법관도 25일 회의 직후 “대법원장의 궐위 상황이 계속될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만 권한대행 주재로 전원합의체 사건 논의는 무리가 없을 것이란 해석이 많다. 또 전원합의체 선고가 지연되는 동안, 대법관 4명이 한 조가 되어 진행하는 소부 선고만 진행하면서 신임 대법원장 임명을 기다리는 것도 가능하다.

②대법관 2명 후임은?

대법원장뿐 아니라 대법관 두 자리도 공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내년 1월 1일에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으로, 신임 대법원장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후임 대법관 지명도 기약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2018년 1월 2일에 임기를 시작한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은 내년 1월 1일 24시까지 임기를 채우고 퇴임하게 된다. 통상적인 대법관 임명 절차에 따르면 대략 10월~11월에는 대법관 후보를 추려 지명하고, 12월 내에 인사청문 절차와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을 지명한 것도 11월이었다.

대법원장 임명이 미뤄진 데 이어 대법관 2명에 대한 인선도 지연되면, 초유의 ‘3인 공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규정을 해석해봐도 권한대행이 대법관 임명까지는 못할 가능성이 커보여서 다들 걱정이 크다”며 “올해 안에 대법원장 공석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건국 이래 처음으로 대법관 3명이 비는 기가막힌 일까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③내년 2월 전국 판사 3100명 인사도 큰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마다 2월에 내는 전국 법관 3100여 명의 인사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인사 전 사전 작업은 실무진들이 미리 해놓더라도, 최종 대법원장의 재가가 없이는 고법판사를 선발하거나, 승진인사를 낼 수 없다. 이 최종 재가를 권한대행이 하기엔 부담이 크고 무리가 있다는 게 법원 내의 중론이다. 수도권 법원의 한 지원장은 “전보인사는 할 수 있겠지만, 10조 판사(법관인사규칙 10조에 따라 뽑는 고등법원 판사)나 승진인사는 못할 것”이라며 “전 대법원장 퇴임 전인 21일 신규 법관 121명 임용을 마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26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뒤 원내지도부가 꾸려지면, 여야 합의로 본회의 일정을 다시 정해 이균용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추석연휴 이후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 최소 9일 이상의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예상된다. 만약 표결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공백은 더더욱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안철상 권한대행은 25일 “저는 대법원장의 궐위라는 비상상황을 맞아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권한 대행으로서의 업무를 엄정하고 적정하게 수행해 나가겠다”며 “후임 대법원장에 대한 임명 절차가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국회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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