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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中에 다 먹힐라…유럽 車업체 “전기차 관세 10% 절대 안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럽 완성차 업계가 내년부터 유럽연합(EU)과 영국 간 거래되는 전기차에 부과되는 관세를 유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전기차가 유럽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점령해 가는 가운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후폭풍’으로 인한 까다로운 규정을 고집하다간 자칫 유럽 자동차 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유럽 완성차 업계는 EU-영국 간 전기차 관련 규정 적용 유예를 두고 EU 집행위를 압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유럽 완성차 업계는 EU-영국 간 전기차 관련 규정 적용 유예를 두고 EU 집행위를 압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5일 관련 업계와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는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EU-영국 간 전기차 관세’ 규정을 2027년까지 최소 3년간 유예해야 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주에 열리는 EU-영국 브렉시트 무역위원회를 앞두고 낸 성명이다.

ACEA 협회장을 맡고 있는 루카 데 메오 르노 최고경영자(CEO)는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해 소비자 가격을 올리는 것은 올바른 조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ACEA는 같은 우려를 담은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스텔란티스는 영국과 EU 간 무역협정의 전기차 관련 규정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텔란티스는 영국과 EU 간 무역협정의 전기차 관련 규정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렇게 유럽 자동차 업계의 신음이 깊어지는 데는 배경이 있다. 지난 2020년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서 맺은 ‘EU-영국 무역협정’ 중 전기차 원산지 관련 규정 때문이다. EU에서 발을 뺀 영국과 쓴 ‘이혼 합의서’인 셈인데, 서로 전기차 부품의 45% 이상을 EU·영국산으로 쓰지 않으면 내년부터 관세 10%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현재로썬 중국산 배터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EU와 영국의 제조업체들이 역내 전기차 공급망을 충분히 구축하지 못한 탓이다. 관세가 부과되면 ‘가성비’ 좋은 중국산 전기차에 시장을 잠식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협상 당시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속도감 있는 전동화 전환을 자신했지만, 중국산 부품의 사용을 빠르게 줄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EU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34%였다.

이런 불안감에 이미 선전포고를 한 업체들도 있다. 영국 엘즈미어 포트에 공장을 운영 중인 스텔란티스는 “브렉시트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시 이 공장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이러면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르노, 포드 등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열린 ‘IAA 2023(뮌헨모터쇼)’에서 BYD 차량을 보는 관람객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독일에서 열린 ‘IAA 2023(뮌헨모터쇼)’에서 BYD 차량을 보는 관람객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ACEA는 이 관세 규정이 적용될 경우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2024~2026년 43억 유로(약 6조12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EU 내 자동차 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만 1300만여 개라 고용 안정성도 흔들릴 수 있다. 영국자동차제조무역협회(SMMT)는 “영국해협 양쪽의 자동차 생태계 전체를 손상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이 관세 유예를 주장하는 데는 무엇보다 중국 전기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최근 글로벌 1·3위(올 1~7월)인 비야디(BYD)와 상하이자동차를 필두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유럽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30년까지 유럽에서 전기차 150만 대를 팔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지난해 6%였던 유럽 내 중국 전기차 점유율은 올 상반기 8%로 늘었고, 2025년에는 15%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EU는 지난 13일 중국 전기차 업체에 대해 보조금 조사에 착수하는 등 부랴부랴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정부 보조금으로 가격을 낮게 유지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현재 10%보다 더 높은 관세를 매긴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런 움직임에도 EU-영국 간 전기차 관련 규정 적용이 유예될지는 미지수다. EU 집행위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이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가디언은 “EU 집행위는 자동차 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해 협상을 재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국내 업계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EU의 중국 견제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잠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결국 EU가 노리는 것은 역내 공급망 강화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내 현지 공장 건설 등 다방면으로 전략을 세워야 유럽 시장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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