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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영어 100점 수학 100점보다 중요한 배움, 서당에서 알아봐요

중앙일보

입력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각 나잇대에 필요한 교육을 받죠. 특히 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3년은 국가에서 제정한 법률에 따라 취학 연령 아동이 필히 받아야 하는 의무 교육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이 같은 제도권 아래서 균등하게 교육을 받게 된 것은 1948년 헌법에서 국민이 교육받을 의무를 규정한 뒤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에요. 조선시대에는 글을 배우고 싶은 아동만 서당 등에 가서 교육받았죠. 전국 곳곳에 설립된 서당은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인데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조선시대 서당에서 행해진 교육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년중앙 학생기자단이 서울 중구 남산공원 호현당을 찾아 알아본 내용을 2주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 영어 100점 수학 100점보다 중요한 배움, 서당에서 알아봐요
② "하늘 천 땅 지"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 가르치는 서당 교육 맛보기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 '서당'을 보면 수염을 기른 근엄한 표정의 훈장님을 중심으로 아홉 명의 학동이 앉아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훈장님에게 혼이라도 난 것인지 울상인 채로 훌쩍이고, 다른 학동들은 이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고 있죠. 많은 사람에게 조선시대 서당(書堂)은 이 풍속화 속의 모습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안수민·박리안 학생기자와 이예준 학생모델(왼쪽부터) 이 정명래 훈장에게 수업받기 전 의관을 정제하고 공수 자세로 바르게 앉았다.

안수민·박리안 학생기자와 이예준 학생모델(왼쪽부터) 이 정명래 훈장에게 수업받기 전 의관을 정제하고 공수 자세로 바르게 앉았다.

대한민국의 교육기관은 유치원과 초·중·고교, 대학교·대학원 등이죠. 이들은 설립 주체에 따라 공립과 사립으로 나뉩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는 나라에서 세운 국립대고, 연세대·고려대는 사학재단이 세운 사립대죠. 이처럼 조선시대 교육기관도 나라에서 세운 관학과 개인이 세운 사학으로 나뉩니다. 유교적 이념에 근거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수도 한양에 세운 오늘날 국립대학 격인 성균관과 지방 곳곳에 건립한 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관학이죠. 반면 조선시대 초등교육 기관인 서당과 선현을 기리고 학문을 연구하는 서원은 사학이에요.

조선시대 초등학교, 서당

서당은 16세기 이후 사림파가 성장하면서 각 지방 마을, 즉 향촌에 본격적으로 설립된 사설 초등 교육기관이에요. 사림파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양반 지배층을 뜻하는데, 정치에 관여하는 관료이자 학자였죠. 이들은 관직에 나가기 전에는 서당에서 학문을 배우고, 퇴관 후에는 직접 서당을 건립하거나 운영에 참여하면서 성리학적 이념에 근거해 백성을 교화시키고자 했어요. 이를 통해 관학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작은 단위의 촌락까지 전국 곳곳에 서당 설립이 활발해졌죠.

서당은 설립을 위한 일정 조건이나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설립 주체에 따라 유형이 다양했습니다. 훈장 자신이 생계 혹은 취미로 설립한 경우도 있었지만, 마을에서 경제적 사정이 넉넉한 유지가 자신의 아이들이나 친척을 교육하기 위해 세우기도 했죠. 또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몇몇 개인이 서당계를 만들어 훈장을 초빙해 계원의 자제를 교육하거나, 동네 전체가 서당계를 형성해 서당을 세우기도 했어요. 이렇게 설립된 서당은 대략 7~16세 연령의 학동들에게 한문뿐 아니라 각 촌락에서 공유되던 규범과 질서도 가르쳤습니다.

정명래(맨 앞) 훈장과 함께 바른 자세로 사뿐사뿐 걷는 법을 연습 중인 소중 학생기자단. 일상에서 행동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곧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이다.

정명래(맨 앞) 훈장과 함께 바른 자세로 사뿐사뿐 걷는 법을 연습 중인 소중 학생기자단. 일상에서 행동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곧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이다.

서당에서 학동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훈장(訓長)이라 불렸어요. 오늘날 초·중·고교 선생님이 되려면 사범대를 졸업하거나 관련 전공을 공부한 뒤 교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죠. 반면 조선시대에는 서당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듯, 훈장의 학식 수준도 균일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훈장은 관직에서 물러난 양반이나 명망이 높은 학자가 후학 양성을 위해 맡는 경우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한 중인 신분이거나 몰락 양반으로 생계형 훈장도 있었고,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마을·문중의 사람이 맡기도 했죠. 동네에서 뽑든 외부에서 초빙하든 학동을 가르치는 자리다 보니 서당 훈장은 일정한 수준의 유교적 소양과 지식을 반드시 갖춰야 했습니다. 또 학동 중에 나이가 있고 학업 성취가 우수하며 품행이 모범적인 자를 접장(接長)으로 뽑았어요. 접장은 주로 서당에 갓 입학한 학동들을 가르쳤습니다. 학동이 의지하는 사형(師兄)이자 보조교사의 역할을 한 것이죠.

오늘날 사전적 의미의 서당은 "예전에 한문을 사사로이 가르치던 곳"입니다. 서당이라고 하면 댕기 머리를 한 아이들이 훈장 앞에 앉아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을 외우면서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과 일치하죠. 하지만 서당은 단순히 글만 배우는 공간이 아니었어요. 박리안·안수민 학생기자와 이예준 학생모델이 서울 중구에 있는 남산공원 호현당을 찾아 서당 교육을 체험해 보기로 했죠. 정명래 훈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했습니다.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등장하는 그림 '서당'.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등장하는 그림 '서당'. 국립중앙박물관

수민 학생기자가 "서당은 7~16세 나이의 남자들이 주로 다녔다고 들었어요. 입학이나 졸업할 때 연령 제한이 있었나요? 또 여자들은 어디서 교육받았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서당의 학동은 7∼8세에 입학하여 15∼16세에 교육 과정을 마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졸업할 때) 20세가 넘는 경우도 많았어요. 성별로는 남자 위주의 교육이 대부분이었고, 여자를 위한 교육은 개인이나 집안끼리 경영하는 글방인 가숙(家塾)의 형태로 이따금 설립되기도 했죠." 조선시대 지배층은 양반이기 때문에 양반가 아이만 서당을 다녔을 것 같지만, 18세기 이후 쌀의 수확량을 늘린 이앙법의 확산과 각종 농기구의 혁신 등으로 농업생산력이 향상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일반 백성의 아이도 서당 교육에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정 훈장의 설명을 듣던 리안 학생기자가 "지금의 초등학교와 조선시대 서당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또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해했죠. "비슷한 점은 아이가 알아야 할 기초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며, 아이가 사회생활을 제일 처음 배우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또 정기적인 시험을 통해 학습 능력을 향상한다는 공통점도 있죠. 반면 한 명의 교사가 같은 내용을 여러 명의 학생에게 가르치는 초등학교와는 달리, 서당은 학동의 수준에 따라 훈장과 1대 1 학습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훈장과 학동 사이에 인격적 교류가 이뤄지기도 했죠. 또 서당은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 중점을 두고 교육했어요."

서당 교육의 핵심

소중 학생기자단은 호현당 일일 학동이 돼 서당 교육을 체험해 봤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가 같다'라는 뜻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스승에 대한 예를 중시했어요. 서당은 그런 스승에게 학문을 배우는 자리이니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죠. 가장 먼저 할 일은 의관 정제입니다. 리안·수민 학생기자와 예준 학생기자가 정 훈장의 지도에 따라 전복을 입고, 머리에 복건을 썼죠. 요즘 학생이 학교에 갈 때 교복을 입는 것처럼, 조선시대에 서당을 갈 때도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는 게 중요했어요.

정명래 훈장의 도움을 받아 복건을 쓰고 있는 박리안 학생기자. 호현당에서는 복건·전복 등 전통 의상을 입고 수업을 받는다.

정명래 훈장의 도움을 받아 복건을 쓰고 있는 박리안 학생기자. 호현당에서는 복건·전복 등 전통 의상을 입고 수업을 받는다.

복장을 다 갖췄으니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법을 배워봅시다. 먼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포개어 잡는 공수(拱手) 자세를 해봤죠. 정 훈장이 "여러분이 사극에서 많이 보던 자세일 텐데요.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남자는 왼손이 위로 올라가도록 양손을 포개야 해요"라며 손 모양을 바로잡아줬죠. 다음은 바르게 걷는 법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호현당 밖으로 나가 옛 학동들이 서당에 수업받으러 오는 상황을 재현해봤어요. 호현당 마당 입구에는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죠. "어린 친구들이 발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걷는 경우가 있는데, 바른 자세로 걷는 습관을 들여야 해요. 공수 자세로 앞을 보면서 이 선을 사뿐사뿐 넘어가 보세요.

정 훈장의 지도에 따라 마당을 사뿐사뿐 걸어서 호현당 앞에 도착한 소중 학생기자단. 하지만 서당에 입장하기 위해 익혀야 할 예절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정중하게 문을 여는 방법도 익혀야 하죠. 호현당의 문은 밀어서 여닫는 방식의 미닫이문이었는데요. 먼저 안에 있는 분에게 자신이 도착한 것을 알리기 위해 '똑똑' 노크하고, '제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서 허락받은 뒤, 한쪽 문고리를 두 손으로 잡아서 조심스럽게 엽니다. 다른 쪽 문도 두 손으로 연 뒤, 방 안에 입장해서는 다시 두 손으로 번갈아 가며 양쪽 문을 닫죠.

공수 자세와 바르게 걷기, 정중하게 문을 여닫는 법까지 익힌 소중 학생기자단은 드디어 호현당 안에 입장해 정 훈장 앞에 섰어요. 무릎을 꿇고 방석 위에 앉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무릎 위에 손을 올려 공수 자세를 취하면 드디어 수업을 시작할 준비가 끝납니다. 스승을 대면하기까지 참 많은 준비가 필요하네요.

미닫이문을 여닫는 법을 배운 이예준 학생모델. 스승과 함께 공부하는 공간인 서당은 생활 규범을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미닫이문을 여닫는 법을 배운 이예준 학생모델. 스승과 함께 공부하는 공간인 서당은 생활 규범을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여러분도 공자·맹자·장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중국의 사상가이자 훌륭한 삶을 산 성현들인데요. 공자와 그의 제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論語)』라는 책에 보면 군자답게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걸음을 걸을 때 '터벅터벅'이 아니라 '사뿐사뿐' 걷고, 건물 입구에서는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그 자체가 군자답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릴 때 습관을 잘못 들이면 어른이 되어도 고치기 힘들어요. 반대로 말하면 세 살 때 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면 여든까지도 그런 사람이 되겠죠."

서당에서 수업을 받을 때 '군자다움'을 유념해야 하는 이유는 서당이 단순히 학문만 알려주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예법을 가르치고, 덕성을 함양해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군자(君子)가 되는 교육이 함께 이뤄졌죠. 일상에서 행동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곧 흐트러진 마음을 수습하는 방법으로 보았기 때문에 세수하고 머리 빗기, 옷 입기, 인사하고 절하기, 문안드리기, 글 배우기, 인사하기 등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바르게 하는 법을 익히는 것도 공부만큼이나 중요했어요. 그래서 서당별로 학동이 지켜야 할 학규가 존재했죠.

조선 중기의 문신 겸 성리학자 박세채는 자신이 운영한 남계서당에 적용되던 학규를 1689년 남긴 바 있는데요. 이를 통해 당시 서당을 다니던 학동들이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살펴봅시다.

박리안 학생기자(서울 태랑초 5)·이예준 학생모델(서울 도성초 4)·안수민 학생기자(서울 동호초 5·왼쪽부터)가 서울 중구 남산공원 호현당을 찾아 조선시대 서당 교육을 체험했다.

박리안 학생기자(서울 태랑초 5)·이예준 학생모델(서울 도성초 4)·안수민 학생기자(서울 동호초 5·왼쪽부터)가 서울 중구 남산공원 호현당을 찾아 조선시대 서당 교육을 체험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스스로 침구를 정리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빗은 뒤 의관을 바로 한다. 스승을 뵐 때는 절하여 예를 표하고, 스승에게 말할 때는 손을 공손히 모은다. 책을 읽을 때는 궁금한 부분은 질문하고, 복습을 반복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며,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 여유가 생기면 책을 보거나 글씨 연습을 하면서 나태해지지 않는다. 연장자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10세 이상 연장자가 실내에 들어오면 일어서서 맞이한다. 말은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신중히 말하며, 타인의 과오를 들추지 않는다."

330여 년 전 서당에서 지키던 규칙임에도 오늘날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받는 기본예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추석맞이 큰절하는 법

민족 대명절인 추석은 평소 만날 기회가 드물었던 일가친척과 함께 차례·성묘 등을 함께 지내는 날인데요. 이럴 때일수록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예의를 갖춰야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정명래 호현당 훈장에게 명절에 제례를 지내거나 웃어른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 필요한 큰절하는 법을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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