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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들의 위험한 결탁...지금 한미일이 먼저 해야할 일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최근 북한과 러시아 간의 군사협력과 전략적 밀착 행보 강화로 향후 예상되는 북ㆍ러의 행동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을 고조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대응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약 없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때마침 코로나19 봉쇄가 풀리는 시점에서 푸틴과 김정은이 러시아의 극동지역에서 위험한 만남을 가졌다. 외국 정상과 회담 때마다 상습 지각생으로 낙인이 찍힌 푸틴이 30분 전 현장에 먼저 도착해 김정은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그만큼 푸틴이 더 절박함을 가지고 회담장에 나왔음을 시사한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5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날 푸틴은 30분간 김정은을 기다렸다. 에서 두 사람은 한반도 및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로이터=연합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5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날 푸틴은 30분간 김정은을 기다렸다. 에서 두 사람은 한반도 및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로이터=연합

사흘 만에 우크라이나 영토를 정복할 것으로 오판한 푸틴은 전쟁이 장기화하자 김정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생사가 갈리는 전쟁을 벌여놓고 끝내지 못하는 푸틴은 초조해졌으며, 우크라이나가 서방 세계로부터 부족한 무기와 포탄을 지원받자 맞대응식으로 북한과의 이면결탁을 모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러시아(구소련)와 군사 무기체계가 흡사하다. 북한은 특히 야포와 방사포가 1만 5000여 문에 이를 정도로 다종의 화포를 보유 중이며, 재래식 포탄 또한 보관 관리가 힘들 정도로 많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다양한 화포는 러시아제와 동일한 구경이 많기 때문에 관련 포탄만 가져가서 그대로 러시아군이 사용할 수가 있다. 구소련 체제하의 공산권 무기체계로 상호 호환성과 운용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또한 병영국가체제인 북한은 군수공장 가동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주야간 포탄 생산을 강제할 수 있는 독재체제이기 때문에 전쟁 중인 러시아에게는 단기간 내에 부족한 포탄과 재래식 무기를 적기에 조달받을 수 있다. 그리고 비용을 당장 지불하지 않아도 북한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핵심부품을 협력해 주고 식량 등 현물로 대체하기도 용이하다. 북한이 전쟁 중인 러시아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지원군인 이유다.

러시아 국방부가 민간군사기업인 바그너로부터 압수한 각종 화포들. 최근 러시아군은 화력전에 우크라이나에 밀리고 있다. AP=연합

러시아 국방부가 민간군사기업인 바그너로부터 압수한 각종 화포들. 최근 러시아군은 화력전에 우크라이나에 밀리고 있다. AP=연합

다른 한편으로 북한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코로나 팬더믹과 제재로 인해 가중한 식량난과 민심 악화를 다스릴 수 있는 명분과 기회가 상존하기도 했다.

첫째, 핵무기 고도화에만 올인해 온 김정은에게는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처참한 상황을 교훈 삼아 자신들의 핵보유국 정당성 확보에 가장 좋은 호재로 삼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들어선 지난해 9월부터는 북한이 공세적인 핵무력 정책법을 공표하고 전술핵 공개와 고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ㆍ정찰위성 발사, 신형 전술핵잠수함(SLBM) 진수까지를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것도 핵보유국 정당성을 명문화하는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잘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지난해 6월부터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포탄과 무기지원 요청이 쇄도하자 북한은 러시아와 은밀하게 포탄을 거래하기 시작해 때아닌 외화나 이에 상당하는 대가를 받아낼 기회를 낚아챘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주변 나라들에선 군수 무기산업이 번창하고 전쟁터에서는 불가피하게 무기의 밀거래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무기거래는 전장에서의 소요와 공급의 균형을 따라가려는 시장의 작동원리와 유사하게 성행하면서 불법적인 행태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속성이 있다.

2018년 열병식에서 북한 자행포(자주포). 북한의 포병 무기는 구 소련과 거의 비슷해 러시아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로이터=연합

2018년 열병식에서 북한 자행포(자주포). 북한의 포병 무기는 구 소련과 거의 비슷해 러시아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로이터=연합

북한과 러시아는 무기와 포탄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발뺌을 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해 11월 북한에서 러시아로 이동하는 열차 위성사진을 미국이 공개했다. 이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도 미상의 무기를 운반했다는 증거이며, 올해 7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보급된 북한제 방사포 122㎜ 포탄을 현장에서 압수하여 사진으로 공개함으로써 그 실체가 밝혀졌었다. 미국의 열차 이동 위성첩보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의 노획된 것으로 보이는 북한제 방사포탄(방-122) 사진 첩보를 종합분석해보면 러시아와 북한 간의 무기 밀거래를 단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증거임은 물론 러시아와 북한이 유엔결의안을 명백하게 위반한 거래였다는 사실도 동시에 확인한 것이다.

푸틴은 교착상태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다시 집권해야 한다. 연말연시 대(對) 우크라이나 총공세를 준비하는데 북한의 포탄과 무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김정은을 초청했고 방러 간 김정은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주발사기지, 최신예 전투기 공장, 전략핵폭격기와 핵잠수함 기지를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북한의 포탄과 무기 지원을 대가로 김정은의 전략핵 투발 수단 완성을 촉진하는 군사협력을 강화할 수 있고 극동지역 경제개발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대가성 시그널을 던진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한 경우 모두가 유엔제재결의를 위반할 뿐만 아니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 돼 아직도 탈냉전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반도는 그야말로 신냉전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주한 러시아대사관 측은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미국 주도의 서방집단이 벌이는 공격적인 대러시아 하이브리드 전쟁의 맥락에서 전개되는 도발적 대결적 성명으로 간주한다”면서 “러ㆍ한(한ㆍ러) 양자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에 기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반박했다. 마치 북한과 한통속임을 보여주는 적반하장식 논조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비행장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 둘째)의 설명을 들으며 전략폭격기의 핵탄두 장착 부분을 살펴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러시아 국방부

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비행장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 둘째)의 설명을 들으며 전략폭격기의 핵탄두 장착 부분을 살펴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러시아 국방부

이러한 러시아의 반박논리를 역으로 해석해 보면 푸틴의 머릿속에 더 큰 그림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푸틴에게는 내년 대선 이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실각할 것이라는 초조함이 깃들어 있고, 행여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속화된 신냉전체제라는 울타리 속에 장기간 고립되는 처참한 신세를 우려하는 출구전략이 필요했다. 바로 북한과의 군사ㆍ경제협력을 통해 한반도를 신냉전의 핵확산 지역으로 불을 지피며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주의를 우크라이나 전쟁지역으로부터 한반도와 동아시아지역으로 분산시키려는 이른바 대서방 하이브리드 전쟁을 의도하고 있다는 속내를 보여준 셈이다.

푸틴이 김정은을 초청한 이유가 단지 부족한 재래식 무기와 포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보유를 인정해주며 최첨단 핵기술을 협력할 수 있다는 정치전략적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김정은의 환심을 이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나서 이제부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할 최종적인 채비를 강화하면서 핵무장한 북한을 뒤에서 조정하며 신냉전을 주도하겠다는 고도의 정치전략이 깔렸다. 그 결과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불안정 상태는 더욱 고조될 것이고 결국은 북한의 핵무기에 의해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관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지난 8일 진수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구형 로미오급을 잠수함발사미사일(SLBM)과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연합

북한이 지난 8일 진수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구형 로미오급을 잠수함발사미사일(SLBM)과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연합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한미일은 물론 서방세계는 먼저 러북 간의 무기탄약 밀거래 정보를 더 세부적으로 감시하고 공개하여 유엔결의안에 이미 찬성했던 러시아에게 관련 결의안 위반 책임을 강력하게 물어야 한다. 또한 고군분투 중인 우크라이나에 서방세계의 무기탄약 지원을 증강해 예상할 수 있는 푸틴의 총공세를 상쇄하고 푸틴의 아킬레스건인 재선에도 제동을 걸어 러ㆍ북 간의 위험한 결탁을 무산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참에 북한보다 먼저 핵잠수함을 가질 수 있는 유비무환의 지략도 잘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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