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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짓느니, 2억 벌금이 싸다” 저출산 외면하는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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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회사 구성원 50% 이상이 누리는 것이 복지인데 어린이집은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이 누린다.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지만, 벌금이 (운영비보다) 싸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최고위급 임원이 지난달 직원과의 온라인 미팅에서 한 발언이다. 무신사는 ‘실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직장 어린이집 설치를 백지화했는데,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한문일 대표는 전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사과하며 위탁 보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이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은 메가스터디와 에듀윌·컬리·쿠팡 등 총 27곳이다. 설치 의무 미이행 사업장 136개소 중 명단 공표 제외 사유에 해당하는 109개소를 뺀 수치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근로자가 300명 이상이거나 상시근로자가 500명 이상인 사업장은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의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비즈테크아이 ▶이와이컨설팅 ▶㈜코스트코 코리아 ▶한영회계법인 등 6곳은 2년 연속 법령을 위반했다.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하지 않을 경우 연간 최대 2억원(1년에 두 차례, 매회 1억원 범위)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하지만 설치에 드는 비용보다 벌금을 내는 것이 저렴해 사실상 강제력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이행강제금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복지부는 회의적이다. 금액이 낮지 않은 수준인 데다, 해마다 의무를 이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의무이행률은 제도 도입 전인 2015년 52.9%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91.5%로 올랐다.

기업의 ‘보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은 “육아를 위한 사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직장에서 이를 얼마나 배려해주느냐가 관건”이라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지고 투자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반도미래연구원(한미연)이 지난달 설문조사 결과 직장 만족도가 높은 집단에선 60.2%가, 불만족 집단에선 45.2%가 출산하겠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로 한정하면 각각 55.8%(만족도 높은 집단), 32.6%(불만족 집단)로 차이가 더 컸다. 직장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연차의 자유로운 사용, 육아 휴직 보장, 출산 후 복귀 직원에 대한 공정한 대우, 출산 장려 분위기 등이 꼽혔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한 듯 최근 적극적인 저출산 대책에 앞장서는 회사도 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기업 노사 가운데 처음으로 저출산·육아지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임신과 출산을 돕기 위해 난임 유급 휴가를 기존 3일에서 5일로 확대하고, 난임 시술비도 1회당 100만원 한도로 횟수 제한 없이 지원하기로 했다. “저출산 극복의 롤모델이 되겠다”고 선언한 포스코 그룹에선 ‘배우자 태아 검진 휴가제’를 시행해 남성도 임신과 출산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정부의 정책도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부모들이 마주하고 있는 직장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출산과 육아가 가능해진다”며 “기업들이 인구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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