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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물렁해요" 강남 싱크홀에 떤다…서울 지하 개발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일 서울 강남구 언주역 1~2번 출구앞 사거리에서 지름 1미터, 깊이 1.5미터 가량의 땅꺼짐(싱크홀) 현상이 발생해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19일 서울 강남구 언주역 1~2번 출구앞 사거리에서 지름 1미터, 깊이 1.5미터 가량의 땅꺼짐(싱크홀) 현상이 발생해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도로가 물렁물렁해요.”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언주역 8번 출구 인근 도로에서 싱크홀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경찰서로 접수됐다.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이 확인한 결과 도로가 패이거나 구멍이 난 흔적은 아직 없었으나, 도로가 진한 색으로 변해 있어 누수 혹은 공동(空洞) 현상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서울시가 조사한 결과 도로 침하가 맞는 것으로 판단됐고, 빈 공간에 모래를 다져 넣는 방식으로 3시간에 걸쳐 보수를 마무리했다.

이번에 도로 침하가 확인된 곳은 불과 7일 전인 12일 오전에도 땅꺼짐 현상이 발생했던 장소였다. 당시 화물차 바퀴가 구멍에 빠지는 소동이 벌어졌고, 복구 작업으로 인해 8시간 동안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불과 일주일 만에 반대 방향 도로에서 또 다시 땅꺼짐 현상이 발생하자 시민들은 불안감을 드러냈다.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이모(40)씨는 “자주 지나는 곳인데 며칠 간격으로 씽크홀 발생 소식이 들려와 불안하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강남구 언주역 부근에서 깊이 3미터 가량의 땅꺼짐(싱크홀) 현상이 발생해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땅꺼짐 현상은 인근 상수도관 파손으로 지반이 약해짐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12일 서울 강남구 언주역 부근에서 깊이 3미터 가량의 땅꺼짐(싱크홀) 현상이 발생해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땅꺼짐 현상은 인근 상수도관 파손으로 지반이 약해짐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서울에서 땅꺼짐 현상에 대한 심각성이 처음 제기된 건 2014년 석촌지하차도 침하 사건이 계기였다. 2014년 8월 5일 석촌지하차도에서 폭 2.5m, 깊이 5m의 싱크홀이 발견됐고, 서울시는 조사단을 꾸려 “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 과정에서 쉴드 터널 공사(원통형 쉴드를 회전시켜 흙과 바위를 부수며 수평으로 굴을 파고들어가는 공법)를 사용한 공사를 벌이면서 생긴 일”이라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2014년 8월 5일, 석촌지하차도에서 폭 2.5m, 깊이 5m의 싱크홀이 발견됐다. 이후로도 지하차도 하부에서 13m 길이의 동공(洞空) 등 빈 공간 다섯 곳이 추가로 발견됐다. 뉴스1

2014년 8월 5일, 석촌지하차도에서 폭 2.5m, 깊이 5m의 싱크홀이 발견됐다. 이후로도 지하차도 하부에서 13m 길이의 동공(洞空) 등 빈 공간 다섯 곳이 추가로 발견됐다. 뉴스1

당시 조사단장을 맡았던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당시 사고 원인은 지하터널 공사 도중 흙이 공사장 인근으로 쓸려가면서 땅 속에 빈 공간이 생긴 것”이라며 “도심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도로침하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와 같은 사건은 치수판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서 “그나마 서울의 경우는 공사를 잘못할 경우 재산 피해액이 상당하기 때문에 공사하는 입장에서도 굉장히 꼼꼼히 살피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반 침하는 계속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9년 13건, 2020년 15건, 2021년 11건, 지난해 20건의 지반침하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면적 1㎡, 깊이 1m 이상 크기 혹은 사망·실종·부상자가 발생한 경우 지반 침하로 분류한다.

석촌지하차도 사건 직후인 2014년 서울시는 지표투과레이더(GPR) 차량을 도입해 정기적인 도로 점검을 벌이기 시작했다. GRP 장비는 지표면 밑 3m 이내에 빈 공간이 있는지 감지할 수 있는 장비다. 서울시는 도로침하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데 2023년 43억 3500만원, 2024년 43억 73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GRP 차량을 추가로 구입하는 비용도 포함된 예산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GRP 장비를 이용해 총 1만 7292㎞의 도로를 조사했으며 공동 6154개를 발견해 복구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도시의 도로침하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는 “싱크홀은 땅 속에 공간을 채우고 있던 지하수가 빠지면서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지하철 역사마다 용출수가 수만톤씩 빠져나가고 있는데 지표면은 콘트리트로 싸여있어 빗물이 들어오지를 못하니 지하에 빈 구멍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빈 공간을 찾고, 수도관을 교체하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고 전반적으로는 도심의 지하 공간을 정비하고 물 순환 방법을 모색하는 근본적인 대안을 고안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서울시는 오는 21일부터 내달 13일에 걸쳐 언주역 인근과 봉은사로, 논현로 일대에 GRP 조사차량 3대를 투입해 '집중 공동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가동 중인 GRP 조사 차량까지 총 동원해 언주역 일대는 물론이고 주변 봉은사로, 논현로까지 탐색할 예정”이라며 “시민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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