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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9년 5개월만에…다시 시동걸린 '유병언家' 재판

중앙일보

입력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씨가 세월호 참사 발생 9년 만에 지난 8월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인천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씨가 세월호 참사 발생 9년 만에 지난 8월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인천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10시 인천지방법원 형사 법정. 검은색 뿔테 안경에 검은색 양복을 갖춰 입고 법정에 선 유혁기(50)씨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방청석엔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남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씨의 변호를 맡았던 미국 국적 변호사 등 대부분 유씨 측 관계자들이었다. 세월호 실소유주였던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인 혁기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돼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9년 만에 한국 법정에 섰다.

이날 검찰은 “세월호 선사 계열사들 대표들과 공모해 경영자문료, 상표사용료, 사진대금 등 명목으로 254억 6346만원을 반출한 뒤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공소사실을 밝혔다. 이에 대해 유씨 측은 “상표권·사진 판매 계약 관련해 일방적 지시한 적 없다. 정상적 처분의 계약이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모두 이행했다. 횡령행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씨 변호인이 증거 인부 여부를 다음 기일로 미루면서 이날 재판은 30분만에 마무리됐다.

유병언 일가의 막내로 미국 거주 

4남매의 막내인 혁기씨는 1989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미시건 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직 취업비자를 받았고, 2002년 미 교포와 결혼해 2007년 영주권을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사진홍보대행사 아해프레스와 경영컨설팅업체인 키솔루션 대표 등을 맡았다. 그는 2014년 3월 사업차 한국을 찾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4일 뒤 인천지검이 세월호 선사 경영 비리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면서 더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는 게 유씨 측의 설명이다.

2014년 5월 한국 법무부는 미국에 있던 혁기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혁기씨가 경영비리에 연루돼 있다고 본 것이다. 한동안 행적이 묘연하던 혁기씨는 결국 2020년 뉴욕 남주연방검찰청(SKNY)에 체포됐다. 2021년 7월 뉴욕남부연방법원이 범죄인인도 결정을 내렸지만 혁기씨는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면서 버텼다. 그러나 지난 7월 청원이 기각되면서 9년 만에 국내 송환이 이뤄졌다. 8월 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뒤 재판에 넘겨졌다.

유 전 회장 일가 등 20명은 이미 재판

유벙언 전 회장의 큰딸 유섬나가 지난 2017년 국내로 송환돼 인천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유벙언 전 회장의 큰딸 유섬나가 지난 2017년 국내로 송환돼 인천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혁기씨와 달리 장녀 섬나(57), 장남 대균(52)씨 등 유 전 회장 일가는 이미 검찰 수사를 거쳐 재판을 받았다. 대균씨는 2002년 5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5개 계열사로부터 상표권사용료 명목으로 71억원을 받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2014년 1심 재판부(인천지법 형사12부)는 대균씨에게 징역 3년 형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서울고법 형사1부)는 징역 2년형으로 감형했다.

유 전 회장의 부인 권윤자(80)씨는 2010년 2월 기독교복음침례회 재산을 담보로 신협 등으로부터 297억원을 대출받은 혐의(배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다. 유 전 회장의 형 병일(71)씨는 2008년 개인 부동산 구매를 위해 D주식회사 자금을 한 영농조합을 통해 송금받은 혐의(횡령)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이들은 역으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7년 9월 서초세무서는 세무조사 결과 세모그룹 계열사들이 대균씨에게 지급한 상표권 사용료를 포함해 소득을 다시 산정했다며 총 11억3000여만원의 종합소득세(가산세 포함)를 부과했다. 이에 대균씨는 “2015년 형사재판을 받는 동안 청해진해운에 35억여원, 천해지에 13억여원을 반환했는데도 세무당국이 이를 고려하지 않아 부당하다”며 2019년 3월 행정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대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항소심은 2021년 1월 원심을 깨고 대균씨의 손을 들어줬다.

매듭 못 지은 사건도 산적 

아직 법적 판단을 확정 짓지 못한 사건도 있다. 검찰이 특경법·조세처벌법위반 혐의로 장녀 섬나씨를 추가 기소한 사건은 1월 인천지법 형사15부가 업무상 배임횡령 건에 대해 일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검찰이 항소하면서 서울고법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가 유 전 회장 자녀들과 청해진해운 주주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4213억원 구상권 청구 소송은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2020년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는 “유 전 회장의 자녀인 유섬나·상나·혁기씨 남매가 총 1700억여원을 국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 국가가 지출한 비용으로 인정된 금액(3723억원) 중 70%를 유 전 회장 일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사고에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구상권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채무를 대신 졌을 때 원래의 채무자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혁기씨는 추가 기소 가능성도 남아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혁기씨를 기소하면서 “306억원에 달하는 유씨의 추가범행, 125억원 조세포탈 범행을 추가로 기소하기 위해 미국의 동의 요청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부간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르면 인도의 근거가 된 범죄 이외의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미국의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 “2014년 법무부가 유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당시 기재된 유씨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만 기소했지만, 추가로 입증한 유씨의 범죄사실을 기재해 추후 미국 정부에 전달할 방침”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전태호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넘었는데 아직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다 이뤄지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참사 10주기를 맞는 내년 전까진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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