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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안 보고 웃고 즐기는, 한국만의 코미디 문화 이룰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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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호 20면

스탠드업 코미디언 대니초

“1분에 3번은 웃겨야 스탠드업 코미디죠. 그게 아니면 그냥 ‘세바시(CBS 강연프로그램)에요.’”

홀로 무대에 서서 마이크 하나로 웃긴다. 대니초(41)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어려서부터 친구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미국의 명문 대학인 UCLA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억대 연봉을 받으며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밤마다 무대에 가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다. 그만큼 코미디가 좋았다. 그는 “내가 코미디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중에 후회하기가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당연히 가족들에게 좋은 소리는 못들었다. 그는 “좋은 회사 다닐 때는 부모님이 나를 ‘우리 새끼’라고 불렀는데, 그만두니 한 글자 바뀌더라. ‘저 새끼’라고”라며 웃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대니초. 최영재 기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대니초. 최영재 기자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게 된 계기는.
“2년만 있다가 돌아갈 생각으로 한국에 왔다가 지금의 ‘피식 대학’ 멤버들이 홍익대학교에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됐다. 공연 후에 호흡을 어디서 줘야 하는지, 텐션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등 코미디 스킬을 알려주는 소위 ‘꼰대짓’을 했다. 당시 그 친구들이 ‘이 사람은 뭔데 우리를 가르쳐’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실력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코미디가 한국에서도 통할까, 스스로도 궁금하던 차에 그 다음주에 홍익대에서 공연을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발전시키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대학생 때 오르던 아마추어 무대에서부터 시작해 20여년간 스탠드업 코미디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재능을 갈고 닦았다. 미국 내 각종 코미디 쇼 등에 배우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고, 각본을 짜기도 했다. 그는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는 2017년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불모지인 한국에 정착한 것이다. 대니초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는 이들을 모아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는 “조회수나 팔로워보다 네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라”, “100명 중 10명이 네 스타일을 싫어해도 널 좋아하는 90명에게 집중하라”고 북돋웠고, 스스로도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 유튜브, 쇼츠 등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된 공연 영상 조회수는 약 5500만회를 넘어섰다.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씬 자체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투어만으로 500억원을 벌어갈 수도 있다. 그 정도 규모는 어렵겠지만 나와 함께했던 동료, 후배들이 이 일을 하면서 돈을 괜찮게 벌어갈 수 있는 규모로 시장이 커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목표는 내가 존경하는 데이브 샤펠(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배우) 같은 선배들에게 ‘리스펙’을 받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공연 분위기는 어떻게 다른가.
“한국 관객분들이 보수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사실 ‘PC(political correctness) 주의’로 따지면 미국 관객이 더 보수적인 경우도 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미국 관객과 한국 관객의 차이점은 미국 관객들은 본인이 웃기면 옆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웃는다는 것이다. 한국 관객의 경우 내가 웃겨도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아있으니 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웃음을 참는다.”
아무래도 좀 아쉬운 부분인가.
“그렇진 않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 사람들도 수위가 높거나 강한 개그에도 눈치 보지 않고 웃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20년 전만 해도 힙합을 음악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핫한 아이돌들도 힙합이나 랩 파트를 꼭 담아두는 것처럼 스탠드업 코미디도 몇 년 뒤쯤 그 자체로 하나의 굵직한 장르가 됐으면 좋겠다. 한국만의 스탠드업 코미디 문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한국에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이 자리 잡을 때까지 도전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그는 지난 3월 전국 투어 스탠드업 코미디쇼 ‘코리언 드림(KOREAN DREAM)’을 시작했고, 티켓 오픈과 함께 입소문을 타며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많은 분이 공연을 보러 와주실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공연을 결정할 당시에는 즉흥적으로 ‘그래 까짓거 해보지!’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그는 “공연 이후에 많은 분이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에 빠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좋은 코미디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코미디는 묵은지 같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고리즘’ 코미디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때그때 유행을 등에 업고 웃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는 ‘밈(meme)’이나 컨셉을 따라가면 한두번은 웃음을 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 특정 시기에만 웃기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해도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는 이야기가 좋다. 트렌드만 따라가려 하다 보면 코미디가 일률적이 된다. 댓글들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밍밍해지기도 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만의 매력은.
“내가 개그를 뱉는 순간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바로 피드백이 오는 것이다. 그거보다 더 좋은 기분은 없다. 또한 코미디언 각자의 매력과 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짧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푸는 코미디언, 길게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터트리는 코미디언 등등 스탠드업 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코미디를 경험할 수 있다.”
앞으로 계획은.
“마이크 들 힘이 있을 때까지 공연을 하고 싶다. 지금도 공연하기 전에 떨림과 설렘 사이의 감정을 느낀다. 그만큼 코미디를 사랑한다. 스케치 코미디(1분에서 10분까지 정도의 길이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코미디) 같은 장르도 도전해 보고 싶다. 최근 코미디 트렌드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집중하는 듯한데, 공감해서 감탄하는 것과 웃긴 것은 다르다. 나중에 한국 코미디에 내가 이 정도는 공헌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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