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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노른자 땅이 캔버스…이 대지 예술가 "서울은 축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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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의 유명 환경 예술가 알란 손피스트가 첫 한국 전시를 앞두고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뮤지엄웨이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의 작품은 그가 태평염전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다. 김현동 기자

미국의 유명 환경 예술가 알란 손피스트가 첫 한국 전시를 앞두고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뮤지엄웨이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의 작품은 그가 태평염전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다. 김현동 기자

1965년, 뉴욕 도시국장은 19세 미술학도에게 편지를 한 통 받는다. 뉴욕의 무분별한 부동산 및 도로 개발로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맨해튼에 "미국의 탄생 전부터 미 대륙에 살고 있었던 나무들로 숲을 조성하는 예술작품을 만들게 해달라"는 요지였다. 편지를 보낸 이는 앨런 손피스트 당시 오하이오주립대 미술 전공생, 받은 이는 탐 호빙 국장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호빙 국장은 승낙했다. 추후 뉴욕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MET)의 관장으로 부임하게 될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깊은 호빙이었기에 가능했다. 약 48년이 흐른 뒤인 지난 19일 만난 손피스트 작가는 "예스라는 답을 받을 줄은 나도 몰라서 깜짝 놀랐다"며 미소 지었다.

OK 사인을 받은 직후 손피스트는 문헌 조사와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양버즘나무ㆍ루브라참나무 등 미 대륙의 터줏대감 수종(樹種)을 구해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블록에 심었다. 땅과 나무, 대기 등 자연이 하나가 되는 이른바 '대지 예술(land art)'의 시작이다. 시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가는 작품이라는 의미로 제목은 '타임 랜드스케이프'로 지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이 작품을 영구 보존하도록 결정했다. 뉴욕 맨해튼의 황금 노른자위 땅에, 빌딩 아닌 나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며 예술의 새 장르를 연 셈이다.

앨런 손피스트의 이름을 알린 첫 대지 예술작품, '타임 랜드스케이프.' 1965년 당시 사진이다. Copyright Alan Sonfist

앨런 손피스트의 이름을 알린 첫 대지 예술작품, '타임 랜드스케이프.' 1965년 당시 사진이다. Copyright Alan Sonfist

이렇게 환경을 예술로 만든 손피스트를 필두로 한 전시가 이달 22일부터 석 달간 서울 성북동 뮤지엄 웨이브에서 열린다. 전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타임 랜드스케이프'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어린 시절 제일 좋아했던 숲이 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걸 목격했다. 그 숲에 살던 사슴이며 거북이도 다신 만날 수가 없었고, 이런 난개발의 주도자인 인류에 경종을 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승인을 받고 난 뒤엔 사실 부지를 찾는 일이 어려웠는데, 다행히 환경 보호 운동가들의 도움으로 그리니치 빌리지의 땅에 숲을 만들 수 있었다. 개발론자들의 반대도 많았다. '희귀 수종은 곧 시들겠지'라는 말도 많았다. 그러나 나무들의 생명력은 강인했다. 묘목들은 곧 자라나 울창한 숲을 이뤘다."  
숲을 조성한 이유는.
"나무들도 서로 대화를 한다. 날씨며 땅의 기운 등에 대해 서로 얽히고설킨 뿌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 도시의 가로수를 보면 마치 사람들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위해 나무를 장식하는 것 같지 않나. 나는 나무가 주인공이 되고, 서로 대화하고 자라나고 스스로의 세계를 만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앨런 손피스트는 대지 예술의 첫 지평을 연 겻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을 포함한 전시는 22일 뮤지엄 웨이브에서 개막해 석 달 간 계속된다. 김현동 기자

앨런 손피스트는 대지 예술의 첫 지평을 연 겻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을 포함한 전시는 22일 뮤지엄 웨이브에서 개막해 석 달 간 계속된다. 김현동 기자

과학자들과도 협업하는데.  
"대지 예술에서 과학은 중요한 축이다. 예술의 상상과 낭만과 과학의 지식과 정보를 엮어내야 완성할 수 있는 게 대지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활동에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과학자들과 계속 교류 및 협업을 해왔다. TEA(TechnologyㆍEnvironmentㆍArt), 즉 기술ㆍ환경ㆍ예술을 한데 모은 단체를 창립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다음 달에도 MIT와 함께 '대지 예술 포워드(Land Art Forward)'라는 포럼을 뉴욕에서 개최한다. 이번 서울 전시 타이틀도 'TEA_time'로 정했는데, 한국과 아시아의 다양한 예술과들과 손잡고 태평염전 등 한국 곳곳을 다니며 전시를 기획했다. 염전의 물이 작품이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와서 꼭 봐주시라(웃음)."  
서울이라는 도시는 대지 예술가의 눈으로 보면 어떤가.  
"역시 회색이 지배한다는 점에선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서울은 축복받은 곳이라고 본다. 나는 서울을 덮고 있는 콘크리트 아래 숨 쉬고 있을 나무들과 풀과 벌레들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최근 자연재해며 기후변화 위기가 심각한데.  
"하와이 산불도, 여러 홍수 등 자연재해는 지구가 보내는 재앙의 경고음이다. 그 경고음을 예술로 해석해 지구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소중히 여기자는 것이 대지 예술의 핵심이다. 자연과 환경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는 것, 지구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라는 것을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꼭 되새겼으면 한다."  

손피스트는 대지 예술로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덤 와인버그 미국 휘트니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보내온 메시지에서 "손피스트의 작품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내세우면서 도시적 산업화에 경종을 울리는 첫 작가"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핵심적 역할을 한 최종신 우리넷 대표이사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예술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이번 서울 전시를 통해 대지 예술에서의 한국의 존재감을 넓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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