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가락」속 결실 불투명/내일 재개 남북총리회담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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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미·일등 관계 고려 대화 유지엔 동조/남,「3회 만남」 공감사항 모아 발표 추진
베를린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했던 전민련관계자 3명을 정부가 구속하자 이를 문제삼아 북측이 한때 보이콧 움직임을 보였던 3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예정대로 11∼14일 서울에서 열린다.
남북 양측은 9월 1차(서울),10월 2차(평양)에 이어 이번 3차회담중엔 북측 음악인들이 서울무대에서 전통음악을 노래하는 등 대화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만남의 겉모양과는 달리 3차회담이 결실을 볼 것인가의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대화를 하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트집거리가 될 수 있는 전민련 문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결국 회담에 임한 것은 그들 나름대로 남북대화의 모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측 역시 북한의 개방을 위해 대화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남북 기본관계정립·불가침선언 등 핵심문제에 대해선 섣불리 양보하지 못할 입장이다.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를 어떤 형식이든 이어가야 할 복합적인 사정에 처해 있다. 우선 북한은 정권위기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경협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대일 수교를 위해선 한국과 미국이 일본에 대북한 수교 양해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남북대화」를 계속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북한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경제위기,특히 식량난을 돌파하기 위해선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수교교섭차 평양에 온 일본 자민당 가네마루 의원에게 『소련의 원조가 끊겨 식량문제가 심각하다』며 수교 전이라도 3억∼5억달러의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따라서 고위급회담 직후인 15일 제3차 북한­일본 수교교섭 예비회담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도 수교조건이 남북 대화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북측은 아울러 남북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서도 대화지속을 피할 수 없고 소련과 중국의 대화압력 역시 「주체」 하나로 버틸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이같은 처지에서 북측은 남북대화를 여러 가지 과녁을 겨냥해 활용하고 있다. 2차 평양회담에서 갑자기 들고나온 불가침선언이 대표적인 예다.
남측이 실질적 구속력이 없는 불가침선언보다는 진정한 공존과 협력관계를 위해 기본합의서부터 채택하자고 맞서고 있어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북으로선 원모심려를 담은 구상이다.
북측은 지난달 21·27일,그리고 1일의 세 차례 실무대표 접촉을 통해 불가침문제뿐만이 아니라 교류협력·기본관계정립에 동의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보이긴 했지만 속셈은 불가침선언을 그들 페이스대로 끌고 가자는 데 있다.
그러나 남측은 북측 제안의 여러 표현들이 방북인사 석방·유엔 동시가입 반대·보안법 및 콘크리트장벽 철폐·주한미군 철수 등 고정메뉴와 연결되는 함정이라고 분석하고 있어 북측식의 불가침선언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북한은 남북대화에 충실하고 있다는 대외적인 이미지 구축을 위해 「불가침」이라는 명칭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이 「불가침선언」을 얻어내면 곧 대미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며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 비핵지대화 ▲남한 군사력 증강 반대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쪽으로 목청을 바꿀 것이 뻔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남쪽은 북측의 선전적 계산,즉 불가침선언을 대남통일전선전략과 연결시키는 함정에는 빠질 수 없으며 정말 불가침선언을 하려면 「불가침이 보장되는 선언」을 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북한은 말로만 불가침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남북화해·협력에 성의를 보이고 불가침을 보장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대일교섭과 동시에 대일비방을 중지한 것과는 달리 남북회담이 진행중인 상황에서도 방송을 통해 우리측 대통령을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비방하고 있고 남한내 반체제세력의 궐기를 부추기는 등 적대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 태도의 문제점을 주시하면서 불가침선언 대신 ▲상호체제 존중 및 비방중상 중지 ▲신문·라디오·TV 상호개방 ▲통행·통신·경제교류에 관한 합의서 채택 ▲이산가족문제 해결 ▲군비경쟁 지양 및 군사적 신뢰구축 등 남북이 화합과 공존을 약속할 수 있는 기본틀부터 합의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바탕에서 「남북 관계개선 기본합의서」를 만들어놓고 1개월 이내에 정치군사분과위를 설치,불가침선언 문제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때문에 남북간의 의견대립이 3차회담에서 해소되어 합의서 같은 「큰 물건」이 생산되기는 거의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은 그대신 총리회담이 세 차례나 진행되는만큼 조그마한 합의라도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양측이 그 동안 의견접근을 보인 몇 개의 작은 사항이라도 묶어 「남북 공동발표문」 형식으로 채택할 것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공동발표가 가능한 부분으로 ▲자주·평화통일·민족 대단결의 7·4 공동성명원칙 재확인 ▲군사 고위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사연습 사전통보 등을 꼽고 있다.
정부는 동시에 비공식접촉을 통해 남측의 쌀과 북측의 무연탄을 직교역하는 문제 등 경제협력을 적극 설득해보겠다는 생각이지만 북측의 긍정적 반응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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