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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기 힘든 폭행 없더라도 공포유발 협박 땐 강제추행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피해자가 저항하기 곤란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강제추행죄로 인정됐던 ‘40년 묵은 판례’가 깨졌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까지 요구되지 아니하고,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거나 공포심을 일으킬 해악을 고지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촌 여동생을 강제추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면서다. 이 사건 관련, 1심 법원은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강제추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위계 등 추행)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A씨의 유형력 정도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 것이다.

형법상 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으로만 정의돼 있다. 여기서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1983년 대법원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라고 해석했고, 지난 40년간 ‘판례 법리’로 이어져 왔다. 이날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범죄 구성 요건과 보호법익, 종래의 판례 법리의 문제점,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판례 법리와 재판 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 등에 비춰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는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홍영기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최근 들어 기존 법리와 다른 판결들이 나오면서 전원합의체에서도 이러한 기준을 더는 취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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