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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이 가장 신뢰하는 이 사람, 알리바바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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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 알리바바 신임 CEO로 취임한 우융밍(吳泳銘). 알리바바 그룹

지난 9월 10일 알리바바 신임 CEO로 취임한 우융밍(吳泳銘). 알리바바 그룹

지난 10일 알리바바 그룹이 최고경영자와 회장을 포함하는 최고 경영진에 대한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지난 3월 ‘1+6+N’ 사업 분할을 발표한 이후 가장 최고 수준의 조정이다.

새로 취임한 회장은 부회장을 지냈던 차이충신(蔡崇信)이 임명됐다. 전 알리바바 회장 겸 CEO 장융(張勇)은 10억 달러 규모의 기술펀드 운용을 담당한다. 남은 CEO 자리는 우융밍(吳泳銘)이 채웠다. 차이충신은 알리바바의 2인자로 불리며 다양한 공을 세워 익숙한 반면, 47세의 젊은 나이로 CEO에 임명된 우융밍은 ‘의외’의 인물이라는 평이다. 그는 어떻게 알리바바의 경영권을 따낼 수 있었을까.

알리바바의 유일했던 ‘기술 오타쿠’

우융밍은 알리바바 창업 멤버다. 알리바바를 개척한 ‘18나한(十八羅漢)’ 중 한 명으로, 마윈이 기업 정보 열람 플랫폼 ‘차이나 옐로우페이지’(中國黃頁)를 설립할 때 합류한 정통 알리바바계 인재다. 당시 마윈을 포함한 18명의 창업자 중 인터넷 기술을 명확히 이해했던 유일한 인물로, 홀로 웹사이트 개발을 담당하며 1세대 프로그래머로 톡톡히 활약했다.

우융밍은 알리바바의 내부 혁신 사업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알리바바 내의 기업가로 이미 유명했다. 알리바바 그룹 내 다양한 계열사의 책임자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 창업 후 마윈을 따라 꾸준히 성장한 그는 2004년 알리페이 설립과 동시에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임명됐다. 2007년 알리바바의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 ‘알리마마(阿里媽媽)’의 성장과 2008년 모바일 타오바오 인큐베이팅 참여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알리바바와 타오바오의 합병 과정에서 부사장으로 임명됐다. 2011년, 타오바오가 분할하며 쇼핑 가이드 플랫폼 ‘이타오(一淘網)’가 만들어졌는데, 우융밍은 사장으로 임명됐다. 2015년부턴 알리헬스(阿里健康) 이사회 의장을 역임, 현재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타오톈(淘天·타오바오·티몰)을 이끌고 있다.

항저우 아파트에서 회의 중인 마윈과 알리바바그룹 창업팀. 알리바바

항저우 아파트에서 회의 중인 마윈과 알리바바그룹 창업팀. 알리바바

비즈니스에도 능통

업계 관계자는 우융밍이 알리바바의 총아로 떠오른 이유로 특기인 ‘기술력’ 외에도 ‘높은 비즈니스 이해도’를 꼽았다. 기술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기술을 제품으로 전환하고 이를 수익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는 평이다. 특히 PC가 중국 인터넷의 주류였던 2000년대 후반, 우융밍은 모바일 시장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알리바바의 사업 모델을 모바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 2008년부터 내부 테스트를 시작했다. 우융밍의 진두지휘 하에 알리바바는 3년 만에 발 빠르게 모바일 버전을 내놓았고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다. 투자에도 일가견이 있다. 창업 혁신의 물결이 일던 2015년, 알리바바를 잠시 떠나 벤처 캐피털인 위안징캐피털(元璟資本)을 설립했다. 그가 투자하는 곳은 주로 첨단 기술· 의료· 산업 분야로, 지금까지 150여 개 이상의 신생기업에 투자를 주도해오고 있다.

완성차 운송 전문 과학기술 물류 플랫폼인 푸유트럭(福佑卡車, FOR-U)에 3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2021년 5월, 푸유트럭이 새로운 자금 조달에 성공하며 최근 15억 달러(약 1조 7880억 원) 가치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윈 ‘추종자’

“(마윈과) 비즈니스와 비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이자 사람을 전염시키는 힘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융밍은 알리바바 그룹 내에서 마윈의 추종자로 통한다. 1996년, 당시 갓 졸업한 학생이었던 우융밍은 우연히 옐로우페이지 프로그래머 공고를 보게 된다. 마윈과 일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는 첫 인터뷰에 직접 만든 자바(Java)프로그램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를 가져와 내보였고, 마윈은 그를 보고 인터넷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융밍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전문적 배경을 활용해 기술 리더가 되고 알리바바 초기 아키텍처 구현을 위해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알리바바는 그룹을 25개 사업단위로 나누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는데, 창업 공신 중 살아남은 사람이 우융밍 한 명뿐인 것도 마윈의 신뢰가 한몫했을 것이라고 직원들은 입 모은다. 심지어 마윈은 우융밍과 그의 아내를 연결해 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998년 만리장성에서 촬영한 사진. 마윈(맨 왼쪽)과 우융밍(왼쪽에서 세 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웨이보 갈무리

1998년 만리장성에서 촬영한 사진. 마윈(맨 왼쪽)과 우융밍(왼쪽에서 세 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웨이보 갈무리

우융밍 CEO는 지난 12일 ‘인공지능(AI) 중심’과 ‘사용자 중심’의 경영 비전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그는 “향후 10년간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AI에 의해 일어날 것”이라며 AI를 따라가지 못하면 타 기업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또 “AI를 우선으로 하면서도 알리바바를 중국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만들어준 수백만 명의 고객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소비자 중심의 비전을 밝혔다.

이를 위해 AI 기반 기술과 기술 중심 인터넷 플랫폼,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 투자를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육성하고 스타트업식 경영 마인드를 유지해 알리바바를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아울러 1985년 이후 출생한 젊은 직원, 30대 젊은 관리자를 중심으로 그룹 경영을 이끌겠다며 기업 다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융밍의 선언은 마윈이 지난 5월 “과거 성공했던 방식은 더는 적절하지 않다”며 “서둘러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장융 전 회장 겸 CEO가 클라우드 컴퓨팅과 내수시장 활성화, 세계화 등을 전략으로 강조한 반면 우융밍은 기술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며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빅테크 기업 사이에서 기술력으로 차별점을 찾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알리바바의 24년 역사를 함께 걸어온 우융밍이 향후 어떤 핵심 영향력을 끼칠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금이다.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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