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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2) 칼 한 자루로 위기를 벗어난 관우, 복황후를 때려죽인 조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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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익주목이 되어 제갈량과 정무(政務)를 논하고 있을 때 형주로부터 관평이 왔습니다. 마초가 투항했다는 말을 들은 관우가 서천으로 와서 그와 한번 겨뤄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비는 느닷없는 관우의 편지에 깜짝 놀랐습니다. 둘이 겨룬다면 두 사람 모두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갈량이 성급한 관우가 올 것을 염려하여 즉시 답장을 써서 관평에게 주고 그 밤으로 형주로 돌려보냈습니다. 관우는 제갈량이 보내 준 편지를 받아 열어 보았습니다.

‘듣자니 장군은 마초와 누가 나은지 겨뤄보고 싶어 하신다는 데, 제가 헤아려 보건대 마초의 당당하고 극렬함이 비록 보통이 아니라 하나 경포와 팽월의 무리에 불과할 뿐이오. 장비와 나란히 달리며 선두를 다투기에 알맞을 뿐, 아직 더없이 출중한 미염공(美髥公)에게는 미치지 못하오. 지금 공은 형주의 책임을 맡고 있으니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오. 만약 서천으로 들어왔다가 형주를 잃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큰 죄는 없을 것이오. 잘 살피시기 바라오.’

편지를 다 읽은 관우는 자신의 수염을 움켜쥐고 웃으면서 흡족해했습니다. 편지를 빈객들에게 두루 보여 주었습니다. 서천으로 들어가려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한편, 손권은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자 즉시 신하들과 형주를 돌려받을 일을 상의했습니다. 만약 유비가 돌려주지 않는다면 군사를 동원하여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장소가 계책을 내었습니다.

유비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제갈량뿐입니다. 그의 형 제갈근이 지금 오에 있으니, 근의 가족부터 잡아 가두소서. 그런 다음 근에게 서천으로 들어가 그의 아우에게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주라고 권해라. 만일 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에게 그 누가 미칠 것이다’라고 고하게 하소서. 제갈량은 형제간의 정을 생각해서 반드시 응낙할 것입니다.

제갈량의 친형인 제갈근.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의 친형인 제갈근.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은 형님인 제갈근이 유비를 찾아오는 이유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비에게 계책을 내어주고 본인은 눈물을 흘리며 지극한 형제애를 발휘하는 연기를 합니다. 유비도 짐짓 그에 이끌리어 형주의 3개 군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관우의 성질이 불같으니 잘 이야기해서 받으라고 말입니다. 제갈근이 편지를 가지고 관우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쉽게 내어줄 관우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 형님과 도원결의할 때 함께 한나라를 붙잡아 바로 세우기로 맹세했소. 형주는 본래 대한(大漢)의 강토인데 어찌 한 치인들 남에게 줄 수 있겠소? 장수가 밖에 나와 있을 때는 임금의 명령도 안 받는 수가 있소. 비록 형님의 편지를 갖고 왔다고 해도 나는 돌려주지 못하겠소.

제갈근은 무안만 당한 채 다시 서천으로 왔습니다. 아우인 제갈량은 지방출장 중이어서 유비를 만나서 관우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일을 고했습니다.

내 아우의 성질이 급해서 더불어 말하기가 극히 어렵소. 그대는 잠시 돌아가 계시오. 내가 동천의 한중을 빼앗으면 관우를 보내 지키게 할 터이니, 그때 형주를 돌려받도록 하시오.

대로한 손권은 노숙을 시켜 결자해지를 요구했습니다. 노숙은 육구(陸口)에 병력을 모으고 관우를 불렀습니다. 말로 해서 안 들으면 힘으로 처치할 요량이었습니다. 관우는 측근 10여명에 칼 한 자루만 들고 노숙을 만났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노숙,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해야 하는 관우. 둘의 만남은 결국 아무런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관우의 위력에 눌린 노숙이 잠깐 기회를 준 사이 관우는 유유히 회담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른바 삼국지연의 명장면 중 하나로 칭송받는 관우의 ‘단도부회(短刀赴會)’입니다.

노숙의 손을 잡고 위기를 모면하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노숙의 손을 잡고 위기를 모면하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오나라 신하를 어린애처럼 깔보고 藐視吳臣若小兒
칼 한 자루 들고 연회에 나가 적을 제압했네. 單刀赴會敢平欺
그 당시 행한 영웅다운 기개는 當年一段英雄氣
민지 회맹 때의 인상여보다 훨씬 낫구나. 尤勝相如在澠池

손권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무력으로 형주를 빼앗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조조의 30만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군사를 합비로 돌렸습니다. 형주공략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왕찬, 두습, 위개, 화흡 등이 조조를 높여 위왕(魏王)으로 삼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중서령 순유가 나섰습니다.

아니 됩니다. 승상의 벼슬이 위공(魏公)에 이르렀고 영화가 구석(九錫)을 더하여 이미 극에 달했는데, 이제 또다시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소이다.

이 사람이 순욱을 닮아가는 것이라더냐?

순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순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순유는 근심과 울분이 병이 되어 자리에 누웠습니다. 10여 일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조조는 위왕으로 높이는 일을 중지시켰습니다. 조조가 궁으로 들어가 헌제와 복황후를 뵈었습니다. 헌제는 조조를 보자 오금을 펴지 못하고 벌벌 떨었고, 복황후는 황망히 일어섰습니다.

폐하, 손권과 유비가 각각 한 지방씩 강점하고 앉아 조정을 우러러 받들지 않으니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모두 위공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남들이 내가 임금을 업신여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만일 기꺼이 도와주겠다면 매우 다행이겠소. 그렇지 않다면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두시오.

조조가 이 말을 듣자 성난 눈으로 헌제를 쏘아보다가 한스러워하며 물러갔습니다. 복황후는 조조가 위왕이 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환관 목순을 통해 아비 복완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내 조조를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목순이 복완의 답장을 가져오다가 조조를 만났습니다. 결국 의심 많은 조조가 목순의 상투 속에서 복완의 편지를 찾아냈습니다. 조조를 죽이고자 했던 거사는 시행도 못 하고 결단이 났습니다. 조조는 복씨의 삼족(三族)을 잡아 옥에 가뒀습니다. 상서령 화흠이 5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벽 속에 숨은 복황후를 잡아냈습니다. 조조에게 끌고 갔습니다. 조조가 마구 욕을 해대고는 좌우에게 명령해서 몽둥이로 때려죽였습니다. 황후가 낳은 두 황자는 독살했고, 복완과 목순의 일가친척 2백여 명을 저잣거리에서 목 베어 죽였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한탄했습니다.

조조처럼 흉포한 놈 세상에 없는데 曹瞞兇殘世所無
복완은 충의만으로 어찌하려 했던가 伏完忠義欲何如
가련타, 황제 황후 생사 이별하는 모습 可憐帝后分離處
민간인 아내와 남편만도 못하구나 不及民間婦與夫

조조가 복황후를 죽인 것에 대해 모종강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합니다. 그의 평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조가 모후(母后)를 때려죽인 일은 천지가 뒤집힐 일이다. 참으로 사상 유례가 없던 일이고, 여간해서는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석했다. 헌제는 한고조의 후신이고, 복황후는 여황후의 후신이고, 조조는 한신의 후신이고, 조조의 딸은 척희의 후신이고, 화흠은 조왕 여의의 후신이기 때문에 전생에 자신들이 당했던 일에 앙갚음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아! 그런 것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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