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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사망 사건, 언제쯤 사라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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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사회부 기자

최모란 사회부 기자

지난 8일 전북 전주에서 40대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에선 출생 신고가 안 된 어린아이가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있었다. 부검을 통해 파악된 사인은 동맥경화였지만 경찰 등은 ‘생활고’를 사망 원인으로 꼽았다.

A씨는 8년 전 이혼 후 뚜렷한 직업 없이 홀로 아이를 낳아 키워왔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지만 2021년 5월 건강보험료·가스비 등을 체납해 처음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에 포함됐다고 한다. 이후 수익이 생겨 2021년 12월 명단에서 빠졌다가 또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하면서 지난 7월 다시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가 됐다.

지난 8일 전북 전주시의 한 주택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집 앞 우편함에 체납 고지서가 가득하다. 김준희 기자

지난 8일 전북 전주시의 한 주택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집 앞 우편함에 체납 고지서가 가득하다. 김준희 기자

A씨가 살던 집 앞 낡은 우편함엔 체납 고지서가 가득했다. 건강보험료는 56개월이나 내지 못해 체납액이 118만6530원에 달했다. 관리비 5만원도 반 년간 밀렸고 월세는 두 달가량, 전기 요금은 6~8월 석 달 치(21만4410원)를 체납했다. 요금을 내지 않아 지난 5월 이후 가스가 끊긴 것으로 파악됐다.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는 집주인의 신고가 없었다면 남겨진 아이까지 변을 당할 뻔했다”는 후배 기자의 설명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A씨의 사연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다. 9년 전인 2014년 2월엔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방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딸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22년 8월엔 경기 수원시에서 세 모녀가, 같은 해 11월엔 서울 서대문구에서 모녀가 숨졌다. 이들 모두 A씨처럼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지역명과 가족 구성원만 다를 뿐, 생활고로 인한 사망 사건은 잊을 만하면 또다시 일어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기 가구를 돕겠다”며 각종 정책을 내놨다. 문제는 끊이지 않고 드러나는 사각지대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체납 정보를 활용한 위기 가구 발굴 정책을 마련했지만, 수원 세 모녀의 경우 사는 곳이 주민등록 주소지와 달라 문제가 도움을 받지 못했다. A씨는 전입신고 서류에 정확한 호(戶)수가 적혀있지 않아서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전입신고 때 동·호수를 모두 적는 아파트와 달리, 다세대주택 등은 자세하게 적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전에 새로운 위기 가구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선 주민센터 등에서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 수는 고작 1~2명이다. 정확한 정보가 없는 한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찾기 어렵다. 각 지자체가 통·반·이장에, 우유배달 아줌마와 집배원, 미용사, 종교시설 등까지 동원해 위기 가구를 찾는 이유다. 아무리 촘촘한 행정 망이라도 미세한 구멍이 있을 수 있다. 다시 한번 철저하게 점검해 생활고로 인한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