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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4% 소시오패스 기질, 폭력 신호 빨리 대처해 막아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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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28면

러브에이징

라퐁텐 우화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다.

하루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은 헤엄을 못 치니 강을 건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개구리가 전갈의 독침이 두려워 망설이자 전갈은 “독침을 쏘면 나도 너와 함께 물에 빠져 죽는데 왜 그런 짓을 하겠냐”며 설득한다. 이 말에 수긍한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는데, 중간쯤 왔을 때 돌연 전갈은 독침으로 개구리를 찔렀다. 둘 다 죽게 된 상황에서 개구리가 전갈에게 약속을 어긴 이유를 묻자 전갈은 “미안해, 독침을 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어, 이게 내 본성이야”라고 답한다.

생명체의 태생적 본성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생태계 생명체는 먹이 사슬의 섭리에 따라 포식자나 피식자 역할을 하며 공존한다. 피식자 입장에서 포식자는 천적(天敵)이자 악마다. 안타깝게도 천적 관계는 동종 간에도 존재한다. 지구촌 최상위 포식자인 사피엔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상처받은 모습 보면 더 날뛰어

인류의 유구한 발자취는 선사시대부터 혹독한 자연재해, 전염병, 맹수의 위협 등을 극복하면서 의식주를 차지하려는 목숨 건 싸움의 연속이었다. 문명사회에서도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치열한 전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는 감정의 동요 없이 적을 신속하게 많이 해치는 사람이 승자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승자를 용맹한 능력자로 추앙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례로 미국의 7대 대통령(1829~1837 재임) 앤드루 잭슨은 무자비한 인디언 대학살로 전쟁 영웅이 된 뒤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는 1814년 크리크 부족과의 전투에서 800명의 인디언을 학살했는데 “여자가 생존하면 부족이 늘어난다”며 어린 소녀들도 모두 죽이라고 전군에 지시했다. 현대 의학의 기준으로는 감정도, 양심도 없는 냉혈한의 본성을 보여주는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모습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통 사람은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추구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전쟁은 발생한다. 교전 상황에서 적군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려면 공포감이나 죄의식, 두려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이 유리하다. 소시오패스 기질의 ‘타고난 전사들’이 필요한 셈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인구의 4% 정도를 차지하는 소시오패스의 본성이 인류의 생존에 해롭기만 했다면 벌써 도태됐을 것이다.

소시오패스적 기질 중 절반은 출생 시 타고난다. 유전적 요인이 큰 셈인데 천성이 50%, 양육 10%, 환경적 요인 40% 정도로 추정한다.

흔히 소시오패스 하면 강도·강간·살인·방화 등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떠올리지만 이는 오해다. 실제 심각한 폭력성을 보이는 경우는 소수이며 대부분은 현란한 말재주와 매력, 카리스마를 이용해 타인의 심리를 지배하고 조종해 불법, 사기, 착취 등의 희생물로 전락시킨다. 소시오패스가 가장 잘 사용하는 무기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불쌍한 척하는 ‘동정 연극(pity play)’이다. 동정심은 상대를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죄가 발각되면 처음에는 ‘내가 왜 했겠어?’라며 무죄를 주장하다가 증거가 드러나면 ‘안 그래도 죽고 싶었는데…’라는 식의 동정 연극을 한다. 그래도 안 통하면 자신을 고발한 사람을 협박하고 부적절한 분노를 폭발시킨다(『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 마사 스타우트 著).

소시오패스의 뇌는 감정적인 상황을 처리하는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 부위의 신경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책상, 의자 같은 단어보다 사랑, 미움 등 감정적 단어를 접하면 뇌가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하나 소시오패스는 차이가 없다. 단 그들도 신체적 고통과 쾌락, 눈앞의 성공이나 실패 같은 원초적 정서 반응은 잘한다. 남에게 피해를 줄 때는 환희를 느낀다.

소시오패스는 가족, 이웃, 직장, 학교 등 어디에나 있지만 피해자가 되기 전에는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피해자에게 소시오패스는 현존하는 악마다. 도처에 존재하는 소시오패스와 현명하게 공존하려면 우선 그들이 위험한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피해를 봤다면 겁먹거나 당황하지 말고 자신의 안전과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피해자가 분노하고 상처받는 모습은 그들을 기쁘게 할 뿐이다.

미국 전 대통령 잭슨도 소시오패스

도덕적·윤리적·합리적 설명으로는 사악한 행동을 고칠 수 없다. 대신 자신의 악행이 피해자를 괴롭힐 순 있지만 본인도 법적·경제적·사회적 피해를 볼 땐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21세기 한국에서 지속적인 악성 민원 때문에 최근 5년간 목숨을 끊은 교사가 100명에 달한다는 비극적 현실은 교육부가 장기간 가해자들의 소시오패스적 행동을 방치하고 조장한 결과다. 간혹 발생하는 정신질환자가 망상이나 조현병으로 죄 없는 사람을 해치는 불행한 사건은 전문가가 정신질환자를 제대로 파악해 적극적인 약물치료로 관리하면서, 폭력이 임박한 신호가〈표 참조〉 보일 때 신속하게 대응하면 막을 수 있다.

반면 전국 각지에 산재한 100만 명도 넘을 소시오패스에 대한 대책은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악행을 제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명언처럼 ‘세상이 위험한 이유는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악인을 구경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안 하는 사람들 때문’인 건 분명해 보인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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