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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일삼는 성격장애자들, 상응하는 불이익 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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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28면

러브에이징

대한민국은 2022년 세계 국력평가 순위 종합 6위(64.7점) 국가다. 세계 국력평가(Most Powerful Country)는 미국 뉴스 앤 월드 리포트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이 전 세계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수출, 경제, 정치, 군사력, 외교, 리더십 등의 항목을 기준으로 평가해 순위를 정한다. 이처럼 빛나는 국제적 위상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갑질의 대중화’로 범사회적 분노와 불안이 일상화되고 있다.

긴장과 불안, 분노가 가득한 사회는 불행하다. 최근 갤럽세계여론조사(GWP)가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에서도 한국인의 행복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35위로 최하위권이다.

우월한 국력을 가진 나라의 행복하지 않은 국민. 이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21세기 한국의 자화상이다. 통상 부자 나라는 가난한 나라보다 행복지수가 높다. 그런데 이 단순한 상식이 우리 사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최근 사회 문제로 부각된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갑질’이 큰 몫을 차지한다.

갑질의 대중화 시대

갑질(Gapjil)은 신분이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이 권한을 앞세워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위다. 2013년 인터넷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행태는 언어폭력, 정신적·신체적 폭력, 상대를 괴롭히는 환경 조성 등 다양하다.

민주공화국은 신분사회와 달리 사회 질서나 인간관계가 계약에 의해 유지되며 가변적이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설사 지금 우월한 지위에 있더라도 권력을 오남용하다간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 상대로부터 보복성 역풍을 맞을 위험이 상존한다. 게다가 갑질을 상징하는 오만하고 안하무인격인 언행은 천박한 인격의 표현이라, 갑질 행위가 밝혀지면 사회적 평판은 추락한다. 선진 문화를 가진 국가라면 갑질이 개인의 일탈 행위로는 존재해도 사회적 현상이 되기는 어려운 셈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선지 갑질에 상응하는 외국어는 찾기 어렵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도 한국의 갑질 관련 기사를 쓸 때 ‘Gapjil(갑질)’로 명기한 뒤 ‘중세시대 봉건 영주(feudal lord)처럼 부하(underling)를 학대(abuse)하는 행위’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피해자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초기에는 분노로 시작해 우울, 불면, 불안 등을 느끼다 결국 무력감에 빠진다. 갑질이 반복될 경우, 피해자는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갑질이 이슈화되던 초기에는 오너형(기업체 대표의 직원 갑질), 밀어내기형(대리점에 물건 강매), 열정페이형(업주의 노동 착취) 등으로 분류할 정도로(이코노믹리뷰, 2016년 1월12일자) 사회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체였다. 자연 강자의 횡포를 막기 위한 불매운동, 갑질피해신고센터 개설, 갑질 실태조사, 국민신문고 등 다양한 갑질 방지 대응책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오너형 갑질에 대해서는 폭행죄, 밀어내기형 갑질은 협박죄를 적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갑질 문제에 대한 전 국민의 공감대가 커질수록 갑질의 주체와 방법도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 전반으로 확산했다. 갑질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한 교사에 대한 학부모 갑질, 의료진에 대한 환자·보호자 갑질, 자영업자에 대한 고객 갑질 등 대면 접촉이 일어나는 곳에는 예외 없이 갑질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상대적 약자인 을이 갑에게 갑질 프레임을 부당하게 씌우는 ‘을(乙)질’도 신조어로 등장했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지속하면 갑질은 한국인 특유의 K문화로 정착할 판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전 국민이 겸허한 마음으로 갑질 행위를 비천한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가해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갑질 빈도를 줄일 수 있다. 또 갑질 피해자는 분노와 불안이 나타나는 트라우마 증상 초기부터 조속한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전문가도 성격장애자 대응 어려워

정신의학적으로 갑질은 인간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권력 콤플렉스가 병적으로 표출된 상태다. 갑질을 즐기는 사람은 성격(인격)장애자일 가능성이 높다. 성격장애는 인구의 10~20%에서 나타나며 수십 년 이상 지속하는 만성적인 경과를 밟는다. 우울증·불안증 등 신경증 환자와 달리 본인의 고약한 언행이 문제라는 생각을 안 하고 고칠 마음도 없다. 타인의 고통에도 무관심하다〈표 참조〉.

천성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일단 형성된 성격은 고치기 어렵다. 성격장애자에 대한 치료도 성격 개조가 아니라 타인과의 갈등을 줄이는 말과 행동을 배우도록 하는 게 목표다. 성격장애자는 전문가도 대응하기 힘들다. 일본의 정신과의사인 니시다 마사키 박사는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자 치료에 실패한 자신의 사례를 들면서 ‘치료진은 환자의 자기중심적 태도에 농락당해 무력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서술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일반인도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성격장애자와 공유하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이라고 조언한다. 하물며 갑질 피해자가 갑질 가해자로부터 신속하게 분리돼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최근 불거진 학부모 갑질에서 보듯 갑질은 피해자의 삶을 짓밟는 범죄 행위다. 보다 촘촘하고 실효적인 대책으로 성격장애자들이 한국을 갑질공화국으로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황세희 연세암병원·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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