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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만 고통 견디란 말이냐"…새마을·무궁화호 줄줄이 연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틀 걸러 한 번씩 타고 다니는 기차인데 오늘은 입석이야. 우리 같이 나이 먹은 사람은 인터넷이다 휴대폰(앱)이다 이런 거로 예매도 못 하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지…”
14일 오전 10시20분 대전역 승강장에서 만난 김모(78·여)씨는 손에 든 기차표를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김씨는 장사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 대전과 서울 영등포역으로 오간다. KTX를 타도 되지만 가격이 비싼 데다 영등포역은 무궁화나 새마을호만 정차하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한국철도공사 본사가 있는 대전역 동광장에 파업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진호 기자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한국철도공사 본사가 있는 대전역 동광장에 파업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진호 기자

전국철도노조가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하면서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중소 도시를 연결하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 고통이 가중됐다. 김씨처럼 역에 나와서 기차표를 사는 승객은 입석을 구매해야 했다. 더구나 파업으로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으면서 KTX는 물론 새마을호·무궁화 열차가 줄줄이 연착했다. 무궁화호 운행은 평시 대비 63%로 줄었다. 수출화물이나 시멘트 등 건설 관련 자재를 운송하는 화물열차도 평소 대비 20% 이하로 운행률이 떨어지면서 관련 업계 손실도 불가피해졌다.

파업으로 열차 줄줄이 연착…승객들 큰 불편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대전역에서 한 승객이 기차표를 보며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신진호 기자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대전역에서 한 승객이 기차표를 보며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신진호 기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파업에 따라 고속철도(KTX)와 새마을호·무궁화호 등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20~60% 감축 운행에 들어갔다. 철도노조 파업은 2019년 11월 이후 약 4년 만이다. 철도노조는 공공철도 확대와 4조 2교대 전면 시행,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고있다. 지난달 28~30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찬성률 64.4%로 가결됐다.

철도노조, 공공철도 확대 등 요구하며 파업 

코레일은 파업 기간 수도권 전철은 평시 대비 70%(출퇴근 시간대 90%), KTX는 68%를 유지하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각각 58%, 63% 수준으로 운행할 방침이다. 다만 화물열차는 내부 기관사를 투입, 평시 대비 27% 정도 유지하기로 했다. 화물열차는 수출입 화물과 산업 필수품 등 긴급 화물 위주로 수송한다.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호 1206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해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노조 파업으로 열차 운행이 줄면서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신진호 기자

철도노조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호 1206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해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노조 파업으로 열차 운행이 줄면서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신진호 기자

열차 물류 운송이 많은 부산에선 여러 업체가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이날 부산신항역과 경기 의왕 오봉역을 오가는 화물열차 운행은 평상시 13회에서 5회로 급감했다. 부산신항역 하루 운송량은 평균 1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이었지만 이날은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부산신항역 화물열차 13회→5회로 급감 

부산역도 운행률이 평소보다 줄면서 KTX는 기존 106회에서 74회, 새마을호는 20회에서 16회로 감소했다. 무궁화호는 기존 36회에서 25회(운행률 70%)로 축소됐고, 동해선도 기존 104회에서 78회(운행률 75%)로 줄었다. 열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나 학생 피해가 크다는 게 관계 당국 설명이다.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14일 오전 부산역에 열차 운행 중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14일 오전 부산역에 열차 운행 중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사업 때문에 주 1~2회 부산에서 수도권을 오가는 우모(53)씨는 “철도 파업 소식을 듣고 앱을 확인해보니 14~18일까지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는 기차 편 상당수가 운행 중지됐거나 매진됐다”며 “원하는 시간대에 좌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항공편 등 다른 이동수단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승객들 "국민 볼모로 파업, 이해 못 해" 

대구와 부산보다 상대적으로 열차 운행이 적은 울산에서도 승객이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반 열차와 광역전철이 운행하는 태화강역도 형편은 비슷했다. 일반 열차는 하루 30회에서 22회로 줄었고 누리로 열차는 태화강~동대구간 왕복 6대가 운행하지 않는다. 태화강역과 부산을 오가는 광역전철 운행 횟수도 평소 92∼104회에서 65∼81회로 줄었다. 이 바람에 열차 대기 시간이 늘어났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14일 부산역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14일 부산역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시멘트 업체 몰려 있는 강원·충북도 피해

화물열차 운행이 줄면서 시멘트 공장이 몰려 있는 강원과 충북지역 업체도 납품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강원 지역 A시멘트 제조사는 파업으로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 회사는 하루 평균 5000t을 경북·충북 등지로 수송해왔다. 시멘트 제조사 관계자는 “노조 파업으로 출하가 줄어든 물량은 다른 운송 수단으로 대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가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대전역에 열차 운행 중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신진호 기자

철도노조가 파업 첫날인 14일 오전 대전역에 열차 운행 중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신진호 기자

코레일은 노조가 주장하는 수서행 KTX 운행 등은 정부 정책 사항으로 노사교섭이나 파업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파업이 정당성과 명분이 없다고 판단,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게 코레일 방침이다.

코레일 "노조 일방적 교섭 결렬, 원칙대로" 

코레일 관계자는 “노조가 일방적으로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며 “국민을 생각한다면 당장 파업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철도 노조 파업 관련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선 시멘트와 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품목별 수출에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파업이 수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다른 부처와 협력해 비상 수송 대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철도 노조 파업으로 3개월 연속 무역흑자를 보여온 긍정적인 수출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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