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아파트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보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거, 표현 한번 쫄깃하다, 순살 아파트. 그런데 건물에서 전혀 뼈가 없을 리는 없고 갈비뼈 하나가 빠졌다. 그래서 과장 표현이기는 하다. 물론 건물 구조체는 전체가 묶여 작동한다. 그래서 빠진 뼈 하나가 전체 안전을 위협한다. 순살 아파트 소동은 국민의 건축 지식을 확연히 증가시키는 순기능도 했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설명하려 해도 어려운 무량판 구조가 국민 상식이 되었다. 문제라면 무량판 구조가 억울하게 기피 구조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량판 구조가 인격체라면 인격모독으로 분쟁을 벌일 일이다.

또다시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조사대상 무량판 구조 아파트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들의 위치를 검색하면 공통점이 보인다. 일사불란하게 반듯한 기하학적 모양 필지에 얹혀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도시거나 신규택지개발지구라는 걸 의미한다. 논밭이나 임야가 도시로 바뀐 것이다. 무량판 구조 시비에 앞서야 할 질문은 왜 여기에 아파트를 짓게 되었냐는 것이다.

쇠락하는 지방도시 옆 신도시
비효율과 자원 낭비의 자충수
도시와 건물도 순환 이용 필요
무량판 구조는 리모델링 용이

한국의 인구는 한 세대마다 반 토막도 아닌 반의반 토막이 될 거라고 추측한다. 거기 더해 찬바람이 불면 들리는 단어가 ‘인 서울’이다. 대학입학의 순간에 청년인구가 대거 수도권으로 이주한다. 이들이 졸업 후 귀향하지 않는다. 결국 지방 중소도시 소멸론은 초등학교 산술로도 설명된다. 그런데 그런 위기 도시 주변에도 부지런히 신도시를 만든다.

인구가 토막토막 줄어간다는 도시 옆에 신도시는 왜 더 필요할까. 국토의 합리적 이용방침이 아니라 개발 주체들의 생존에 사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기업 사기업이 섞여 있는 그 공급시장에서 가장 큰 회사는 LH다. 직원 수가 만 명에 이르는 공기업은 사장과 경영진이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그냥 굴러갈 따름이고 거기에는 계속 굴러가기 위한 사업이 필요하다. 사업 단계마다 담당 부서가 달라지니 절차는 복잡하여 누구도 전체 구도를 모른다. 내부에서도 헛갈리는데 외부에서는 더욱 알 길이 없으니 사업에 끼어들려면 그나마 내부경험자가 필요해진다. 전관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소득증가에 따라 서비스 수준 높은 주거 수요가 있고, 이 수요에 기대 표를 얻는 정치도 있다. 새 아파트 들어선 신도시를 지으면 분양과 입주는 순조로웠다. 남는 문제는 택지다. 기존 시가지에 비해 싸게 사고 쉽게 지을 수 있는 논밭과 임야가 신도시가 된다. 그런데 토지는 생산할 수도, 소비할 수도 없다. 전체 규모는 일정하고 점유와 이용방식만 달라진다. 제한된 국토 면적 안에 신도시가 여기저기 점유면적을 늘렸다. 신도시를 채울 인구들이 어디서 오냐고 물으면 답은 그간 항상 낙관적이었다. 인근 도시에서 인구 유입. 지금 소멸론에 시달리는 그 도시들이다. 인구감소율보다 더 바쁘게 원도심들은 쇠락했다. 도시재생 논의도 수입되었다. 인구는 주는데 신도시도 채우고 원도심도 살려내려면 마법분신술이 필요하다. 마법 능력 없이 원도심과 신도시를 다 살리겠다는 건 산술실력 부족이거나 거짓말이다.

국토는 좁은데 산지가 많아 가용면적은 더 좁다고 우리 교과서는 서술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국에 다 똑같은 신도시를 ‘널널한’ 미국식 도시계획 따라 만들었고, 필요에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들처럼 사용해왔다. 각 세대의 승용차 소유를 전제하지 않으면 작동할 수 없는 도시다. 그런 신도시가 받쳐주는 내수시장 덕에 자동차 제조산업은 성장했지만, 보행과 대중교통에 기반을 둔 원도심이 몰락했다. 신도시를 만들면 기존 도시들과 연결될 교통망도 추가로 필요해진다. 국토는 더욱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이고 더 많은 화석연료를 불살라야 작동한다. 신도시 뒤에는 쓰다 버린 원도심이 남는다. 도시가 공산품이라면 용도폐기 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던질 수도 있다. 그런데 토지도 도시도 공산품이 아니다. 쓰고 버린 도시는 담을 종량제 봉투도 없다.

우리는 1980년대에 만든 아파트들도 헐고 새로 짓기 시작했다. 이들은 벽 하나만 움직여도 전체가 붕괴하는 구조체로 지었기 때문이다. 통칭 30평형대 아파트 한 가구를 철거해서 콘크리트 순살만 추려 담으면 10L 종량제 봉투 5000개 정도가 필요하다. 1000가구 단지면 500만 개다. 마감재와 부속 가구는 별도다. 그만큼의 석회암 산과 강모래를 파헤쳐 생산과정의 석유를 탄소로 바꾼 후 결국 폐기물로 바뀐다. 신규 소비억제가 아니라면 최고의 재활용 방안이 필요하다. 사회조건이 바뀌어도 아파트 구조 손상 없이 리모델링이 가능한 구조체가 필요하다. 그래서 무량판 구조가 선택되었다. 지탄받을 건 무량판 구조가 아니라 갈비뼈 누락이다.

쓰레기 양산하는 도시와 건물의 구조라면 시민들의 재활용 계몽은 덧없다. 우리는 더 작은 국토 면적을 점유하고, 대중교통이 전제된 도시를 만들고, 유연하게 변화에 대응 작동하는 건물을 지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무량판 구조는 계속되어야 한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