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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북·러의 위험한 밀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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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석좌교수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석좌교수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세계 질서와 한반도에 새로운 변곡점이 발생했다. 우리는 강대국 지정학과 북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힘든 시대를 맞았다. ‘진영 대립의 시기’는 북핵 문제가 미·중 패권 경쟁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연결되면서 시작됐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관련 행동은 우리 실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북한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 이 대립의 시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정상회담 결과는 어떠할까.

북·러 정상회담은 위험한 변곡점
빅딜의 가능성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로선 스몰딜 확률 높아 보여
북, 범선처럼 운명을 바람에 걸어

북·러 간 빅딜의 가능성도 있다. 정상회담 합의문은 추상적인 언급으로 이를 숨기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실행 과정에서 그 구체적 내용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로켓뿐 아니라 단거리 미사일과 드론까지 공급하고 러시아는 현금과 에너지, 식량은 물론 첨단 무기 기술도 북한에 제공하는 것이다. 전조로 보이는 일도 있었다. 지난 7월 말 북한 전승절 행사 참석차 방북한 러시아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는 미사일과 무인기가 전시된 전람회에 참관했다. 김정은은 직접 나서서 신무기를 설명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또 얼마 후 그는 미사일 생산공장을 방문해 생산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라고 독려했다. 개당 수천 달러인 포탄보다 수백 배 더 비싼 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팔아 승부를 확실히 결정짓고 싶다는 바람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제 김정은과 푸틴이 직접 만나는 만큼 획기적인 결과가 나오리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북·러 관계에는 양국의 필요뿐 아니라 지정학과 관계국의 대응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보다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스몰딜’이다. 북한제 포탄과 로켓을 러시아가 수입하고 그 대가로 유류와 가스, 밀 등을 북한에 현물로 지급하는 거래가 한 예다. 무기의 대가를 루블로 지급한다면 북한이 받으려 하지 않고, 달러로 지급하는 것은 경화가 부족한 러시아가 원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여기에 더 많은 북한 근로자를 러시아가 받아들이는 조치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첨단 군사기술의 전수를 포함하는 거래를 가능한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저버렸다며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이는 한·미·일과 완전히 등을 지는 행위로서 그 영향은 우크라이나 전쟁 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일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낮은 수준의 딜을 통해 과연 김정은이 신뢰할만한 인물인지, 그리고 북한의 무기 생산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러시아의 엘리트 외교 관료는 대체로 신중하다. 제왕처럼 군림하는 푸틴은 의심이 많고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다. 따라서 북한과 깊은 군사적·외교적 관계를 맺기보다 경제적 거래라는 얕은 수준에서 출발하는 편을 택할 듯하다. 또한 원료와 장비, 부품과 전력 등 모든 것이 빈약한 북한이 대량의 무기를 적시에 생산해 공급할 수 있을지 그 역량도 점검해 보려 할 것이다.

김정은도 큰 부담을 안고 있다. 먼저 중국의 반응이 문제다. 북한을 자신의 영향권 내에 묶어 놓으려는 중국은 북·러의 밀착을 반길 수만은 없다. 특히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은 중국에 잠재적 부채다. 러시아라는 뒷배를 둔 데다 경제도 좀 나아졌고 핵 고도화도 이룬 북한이 중국 말을 고분고분 들으려 할까. 이를 염려하는 중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중국 부총리의 방북 때 이와 관련한 중국 입장이 전달됐을 수 있다. 또 러시아에 대한 대량의 무기 지원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북미 관계를 완전한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과 김정은의 존망이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에 달려 있게 된다. 러시아가 패전하거나 푸틴이 실각한다면 그도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북한 무기 생산의 초크 포인트(choke point)를 파악해 이를 집중적으로 막아야 한다. 예를 들어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질산암모늄을 북한이 비공식적 통로나 비료를 가장해 수입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둘째, 북·러의 위험한 군사적 밀착에 대해 한·미·일이 공동으로 러시아와 북한에 경고해야 한다. 러시아가 북한 무기를 실제 구매한다면 이에 상응해 한미일의 우크라이나 지원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릴 필요가 있다. 셋째,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활용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중정책이 대북정책을 고려해 재구성되도록 미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위험한 시대, 위험한 인물 간의 군사적 거래는 세계 질서에 닥쳐올 거센 격랑의 예고편 같다. 북·러의 밀착은 남북 모두에 큰 위협이다. 그러나 훨씬 더 위험한 쪽은 북한이다. 마치 변화무쌍한 폭풍우의 바다를 자체 동력 없는 범선으로 항해하려는 듯 김정은은 국운과 자신의 운명을 바람에 걸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