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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70) 죽음으로 주인을 지킨 장임, 사욕으로 주인을 판 법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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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 엄안을 은의(恩義)로 항복시킨 후, 서천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책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엄안은 패전한 장수가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화살 한 대 쏘지 않고 곧장 진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낙성까지 가는 도중의 관애(關隘)는 모두 노부(老夫)가 관할하는 곳이라 관군들이 나가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노부가 전군(前軍)이 되어 가는 곳마다 모두 불러내어 항복하게 하겠습니다.

엄안은 이르는 곳마다 모두 투항시켰습니다. 그러자 소문만 듣고도 귀순하여 한 차례의 싸움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장비는 힘들이지 않고 낙성을 공략 중인 유비에게 왔습니다. 유비도 장비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험한 산길을 군사들의 저항도 받지 않고 제갈량보다 먼저 왔기 때문입니다. 장비가 으쓱대며 말했습니다.

오는 길에 관애가 마흔다섯 곳이나 있었는데 모두 노장 엄안의 공으로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는 길 내내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장비가 엄안의 의기(義氣)를 높이 사 준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인사를 시켰습니다. 유비는 즉시 자신이 입고 있던 황금쇄자갑(黃金鎖子甲)을 벗어 엄안에게 주었습니다. 엄안은 유비에게 절하며 사례했습니다. 나관중본에는 장비가 낙성까지 오는 동안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는 말 뒤에 한 문장이 더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술이나 마시고 고기나 먹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엄안이 앞에서 군사들을 투항시키자 장비는 그다운 행동으로 아무 걱정 없이 낙성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종강은 이 문장이 장비가 지혜로 엄안을 항복시킨 내용에 먹칠을 할 것으로 판단하고 빼버린 것입니다.

엄안을 지혜로 항복시키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엄안을 지혜로 항복시키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는 제갈량이 도착할 시점에 맞춰 장임이 지키고 있는 낙성을 공략했습니다. 하지만 장임은 대단한 맹장이어서 쉽게 점령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임의 역공에 위태로울 지경이었습니다. 장비가 합류하고 나서야 전세가 유리해졌습니다. 제갈량과 조운이 도착하자 전세는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갈량은 낙성의 금안교(金雁橋) 부근에 갈대밭이 있는 것을 보고는 군사를 매복시킨 후, 자신이 장임을 유인하여 사로잡았습니다. 유비가 장임에게 투항을 권했지만 장임은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외치며 저항했습니다. 유비가 다시 타일렀습니다.

네가 천시(天時)를 모르는 것뿐이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오늘 설령 항복한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끝내 항복하지 않을 터이니 빨리 나를 죽여야 할 것이오!

유비는 차마 죽일 수 없었습니다. 장임은 목청을 돋우며 유비에게 욕을 했습니다. 제갈량이 장임을 죽여 그의 명예를 지켜주라고 명령했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장임을 기리는 시를 남겼습니다.

열사가 어찌 두 주인을 섬기는가 烈士豈甘從二主
장임의 충용은 죽어서 오히려 빛나노라 張君忠勇死猶生
고명함은 하늘가의 달과 같아서 高明正似天邊月
밤마다 빛을 뿌려 낙성을 비추노라 夜夜流光照雒城

모종강은 유비가 사로잡은 장임을 죽여 방통의 원수를 갚지 않은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유비가 장임을 잡았으면 바로 방통의 원수를 갚아야 할 텐데 어째서 차마 죽이지 못하고 항복시키려고 했을까? 바로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이용하려고 한 것뿐이다. 천하를 평정하지 못했을 때는 감히 원한을 품고 사람을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옛이야기는 들출 것도 없다. 조조는 큰아들과 조카, 전위를 죽인 원한을 잊고 장수를 받아들였고, 손권은 능조를 죽인 원한을 덮고 감녕을 받아들였으니 이런 것이 모두 그러한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유비 역시 장임을 항복시키려 한 것인데 장임은 끝내 항복하기를 원치 않았다. 장임 같은 사람은 참으로 단두장군(斷頭將軍)이라고 할 만하다.’

제갈량은 낙성이 함락되자 성도의 코앞에 있는 면죽관을 진격할 방안을 상의했습니다. 법정이 인의(仁義)로 굴복시키는 것이 좋으니 먼저 편지 한 통을 써서 유장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제갈량은 법정의 편지를 성도의 유장에게 보냈습니다. 유장이 법정의 편지를 열어보았습니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인 법정.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인 법정. 출처=예슝(葉雄) 화백

‘전에는 파견해 주심을 입어 형주(유비)와 우호관계를 맺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주공의 옆에는 있어야 할 만한 사람이 없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형주께서는 옛정을 그리워하고 일가 간의 정의를 잊지 않고 계십니다. 주공께서 만약 깨끗이 귀순하신다면 박대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곱새겨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정은 주인을 팔아 영화를 사려는 배은망덕한 놈이다.

유장은 크게 노해서 편지를 찢어버리고 편지를 가져온 사자는 성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처남인 비관에게 군사를 주어 면죽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익주태수(益州太守) 동화가 한중(漢中)으로 사람을 보내 군사를 빌리라고 했습니다.

장로와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원수인데 어찌 구원해 주겠느냐?

비록 우리와 원수이기는 하지만 유비의 군사가 낙성까지 들어와 있어 형편이 매우 위급합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도 시릴 터이니 만일 이해(利害)를 들어 달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입니다.

한편 마초는 조조와의 싸움에서 지고 강족(羌族)의 땅으로 들어가 2년 남짓 보내다가 강병과 손잡고 농서(隴西)의 주군을 공격해서 모두 항복을 받았습니다. 오직 기성(冀城)만 함락할 수 없었습니다. 양주자사(涼州刺史) 위강은 여러 번 하후연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조조의 허락을 받지 못해 감히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위강은 마초에게 투항하고자 했습니다. 참군(參軍) 양부가 반대했지만 위강은 마초에게 항복했습니다. 마초는 다급해지니까 항복한 것이라며 위강 등 40여 명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하지만 양부만큼은 ‘의(義)를 지킨 것’이라며 살려주었습니다.

양부는 아내의 장례를 핑계로 휴가를 얻어 고종사촌이 있는 역성(歷城)의 무이장군(撫夷將軍) 강서를 만났습니다. 고모를 만나 주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참고 있다면서 강서가 군사를 일으켜 마초를 공격하기를 바랐습니다. 강서의 모친이자 양부의 고모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너는 빨리 도모하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충의를 위하다 죽는다면 마땅히 죽을 자리에 죽는 것이니, 나 때문에 걱정은 하지 마라. 네가 만일 양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죽어 너의 걱정을 덜어주겠다.

양부를 도와 마초를 공격하라고 말하는 강서의 모친. 출처=예슝(葉雄) 화백

양부를 도와 마초를 공격하라고 말하는 강서의 모친.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서는 즉시 마초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마초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후연이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자 마초는 방덕, 마대와 함께 장로에게 의탁했습니다. 이때 유장의 참모인 황권이 장로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장로는 처음에는 유장의 구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무 고을을 사례로 주겠다고 하자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장로가 유장을 지원하기로 맘먹자 한 장수가 나서서 유비를 사로잡아오겠다고 나섰습니다. 호언장담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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