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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거래소 책임론'에 꼬였다...검찰의 '상장뒷돈 재판'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일 서울남부지법 형사7단독 김정기 판사 심리로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전 코인원 최고영업이사(CGO) 전모(41)씨에 징역 4년과 추징금 19억3000만원, 상장팀장 김모(31)씨에 징역 4년과 추징금 8억원, 브로커 황모(38)·고모(44)씨에겐 각각 징역 3년과 1년6월을 구형했다. 5차례의 공판기일만으로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건 전씨를 포함한 피고인 4명이 모두 코인 상장과 관련한 뒷돈을 주고받았다는 혐의(배임증재·배임수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쟁점이 여전히 첨예한 상태로 남아있다. 검찰이 전씨·김씨에게 추가로 적용한 업무방해 혐의다. 혐의 일체를 자백한 전씨와 달리 김씨는 업무방해만은 끝까지 부인했다. 검찰은 이날 구형 의견에서 “김씨가 전씨보다 먼저 브로커와 공생관계를 맺으며 적극적으로 거래소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밝혔으나, 김씨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공소사실과 수사기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정말 억울해서 부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업계에선 이번 사건의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가 향후 또 다른 코인 상장 관련 사건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원의 판단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검찰은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공소장을 통해 가상자산거래소 내 정상적 유동성 공급(LP)과 코인 MM업자의 시세조종 행위를 구분하고, 자전거래를 통한 MM 행위는 일반 투자자에 거래량과 시세에 대한 오인·착각을 일으키는 불법 시세조종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공소장을 통해 가상자산거래소 내 정상적 유동성 공급(LP)과 코인 MM업자의 시세조종 행위를 구분하고, 자전거래를 통한 MM 행위는 일반 투자자에 거래량과 시세에 대한 오인·착각을 일으키는 불법 시세조종이라고 규정했다.

앞서 검찰은 코인원 임직원이던 전씨·김씨가 “상장을 앞둔 코인 재단(발행사)에 특정 MM(Market Making·시장조성)업체를 소개해 계약을 맺도록 하고, 이 업체가 코인 시세를 불법적으로 조작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회사를 속여 상장 보증금(5000만원)까지 면제해줬다”며 이 같은 행위가 코인원의 정상적인 상장심사·시장관리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씨는 일찌감치 혐의를 인정하고 “김씨가 주도한 것”(전씨 변호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는 달랐다. 그는 자신에게 상장 결정권이 없었고, 차명훈 대표와 전씨 등 코인원 경영진의 방침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을 뿐 재단에 알선한 MM 업체의 시세조종 사실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김씨는 지난 7일 피고인신문에서도 “재단에 MM업체를 소개해준 건 재단이 별도로 MM팀을 꾸릴 경우 이를 다 감시할 수 없으니 신뢰할 수 있는 MM업체를 소개해주자는 전씨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보증금 면제 정책 역시 기획 단계에서 관여한 적도, 들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행위가 거래소의 업무를 방해할 목적으로 이뤄진 건 아니라는 취지다.

김씨 측은 업무방해의 피해자에 해당하는 경영진이 실제론 상장 이후 시세조종 등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거래소의 상장피(fee·수수료) 관행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 7일 피고인신문에서 변호인이 “전씨가 종목을 찍어서 상장해도 되는지 검토해보라고 하면 재단으로부터 서류를 받아 올리는 것이냐”고 묻자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2020년) 코인원이 상장비용을 많이 받기 위해 일주일에 2, 3개씩 무리하게 상장했기 때문에 위에서 찍어서 검토하라고 한 것만 했다”고 답했다.

반면, 코인원 측은 상장피에 관해 “공격적인 상장 정책을 편 건 투자 환경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었지 상장비용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은 업무방해의 피해자일 뿐, 이런 일을 예견하거나 김씨에게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7월 26일 오후 서울남부지검에서 열린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 현판식 후 합수단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7월 26일 오후 서울남부지검에서 열린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 현판식 후 합수단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의 업무방해 혐의를 두고 이처럼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검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재판 내내 제기되어 온 ‘거래소 책임론’과 향후 수사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검찰은 그동안 코인 상장피나 불법 시세조종 행위 등을 거래소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해 왔다. 거래소를 사실상 피해자로 봐 온 것이다. 거래소의 관리·감독상 책임에 대해선 죄를 물을 법적 근거도 없었다. 관련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내년 7월에야 시행된다.

하지만 지난 7월 말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을 신설한 뒤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래소에도 엄정한 상장 심사, 시세조종 방지 의무가 있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검찰 고위 간부)는 주장이 내부에서 나왔다.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도 검찰 측은 “증권시장의 한국거래소 직원은 특가법상 공무원으로 의제된다”며 “정보의 비대칭성이 뚜렷한 가상자산 시장에서 거래소는 철저한 감시와 관리가 요구되는 공공의 영역으로서 거래소 직원은 단순한 사기업 직원과 같이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존에 검찰이 적용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될 경우, 거래소가 피해자로 굳어져 향후 책임을 묻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이미 기소한 사건이 성공적으로 수사를 마치게 되면 미래에 있을 수사는 일정 부분 발목을 잡히게 되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진 셈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거래소도 문제 삼기 시작하면 이미 기소한 혐의와 상충하고, 또 앞으로 가상자산범죄 수사 과정에서 거래소의 협조를 끌어내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씨 등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오는 26일 선고기일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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