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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억 부탁"…코인거래소 '상장피' 받았다, 얼떨결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당시 피카(PICA)코인 상장피가 얼만지 아세요?

지난 22일 서울남부지법 형사7단독 김정기 판사 심리로 열린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재판에서 전직 코인원(암호화폐거래소) 상장팀장 김모(31)씨의 변호인이 증인석에 앉은 코인 상장 브로커 고모(44)씨에게 한 말이다. 고씨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자, 김씨 변호인은 “상장피가 2억원이었다. 상장피를 낮추는 대신 MM(시장조성) 업체를 쓰도록 했던 것이잖느냐”고 물었다. 고씨는 “정해진 MM 업체를 쓰면 1억원만 상장피로 내고, 나머지 1억원은 법인 계정에 입금하도록 한 제도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코인원 상장 비리에 연루된 전직 코인원 상장팀장 김모(31)씨가 지난 4월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코인원 상장 비리에 연루된 전직 코인원 상장팀장 김모(31)씨가 지난 4월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다소 난해한 이들의 문답은 김씨 측이 신규 코인을 상장하려는 재단에 불법 MM 업체를 소개해 코인원의 상장심사·시장관리 업무를 방해했단 혐의를 벗기 위한 논리를 쌓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다 그간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암호화폐거래소의 상장피 관행이 갑작스럽게 공개된 것이다. 앞서 김씨와 고씨는 전직 코인원 최고영업이사(CGO) 전모(41)씨, 또 다른 브로커 황모(38)씨와 함께 코인원에 코인을 상장해주는 대가로 뒷돈을 주고받은 혐의(배임수·증재, 업무방해 등)로 구속기소됐다. 재단(발행사) 경영진이 불법 MM으로 코인 시세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피카는 이들이 뒷돈을 주고받았다는 최소 46개 코인 중 하나다.

상장피(fee)란 문자 그대로 상장 수수료를 뜻한다. 특정 거래소에 코인을 상장하려는 재단이 해당 거래소에 건네는 일종의 입장료다. 국내 5대(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거래소는 그간 이러한 상장피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해 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상장피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고, 수면 아래에서 암암리에 오갔다고 주장해 왔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상장피는 거래소가 코인 재단과 상장 계약을 맺을 때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남구 납치·살인 사건의 발단이 된 퓨리에버(PURE)코인도 그랬다. 중앙일보가 23일 입수한 퓨리에버 상장 직전(2020년 11월께) 재단 측과 코인원 측 사이의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코인원 측이 계약금을 비트코인 11.489개(당시 시세 기준 약 2억원)로 하겠다는 내용, 코인원의 KDB산업은행 계좌번호와 함께 “이 계좌로 2억 부탁드립니다”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대화방에는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재판을 받고 있는 김씨와 브로커 황씨도 참여했다.

코인원이 재단 측인 유니네트워크에 제시한 상장동의서(계약서)를 보면, 코인원은 은행 계좌에 송금하도록 한 2억원을 보증금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보증금은 프로젝트팀(재단)에게 반환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퓨리에버 재단이 상장 계약을 맺으면서 코인원에 지급한 금액은, 돌려주지 않는 보증금까지 포함해 당시 기준 총 4억원가량인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액으로 보여도 재단 입장에선 코인이 상장된 뒤 MM 작업으로 그 이상 회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장피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코인원 측은 “과거 시행됐던 거래지원 규정에서는 기술지원 및 마케팅 등 거래지원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진행하고 그 서비스의 대가를 받은 경우는 있다”면서도 “거래지원(상장) 서비스는 거래지원이 확정된 이후에 진행된 것으로, 본격적으로 해당 코인이 거래소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인적·물적 제반 작업에 소요되는 기술지원 비용이다. 이외에 상장을 대가로 한 상장피는 일체 관여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공소장을 통해 가상자산거래소 내 정상적 유동성 공급(LP)과 코인 MM업자의 시세조종 행위를 구분하고, 자전거래를 통한 MM 행위는 일반 투자자에 거래량과 시세에 대한 오인·착각을 일으키는 불법 시세조종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공소장을 통해 가상자산거래소 내 정상적 유동성 공급(LP)과 코인 MM업자의 시세조종 행위를 구분하고, 자전거래를 통한 MM 행위는 일반 투자자에 거래량과 시세에 대한 오인·착각을 일으키는 불법 시세조종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코인원 상장 비리로 구속기소된 4명 중 김씨를 제외한 3명은 재판이 시작된 이후 혐의 일체를 자백하고 있다. 다만, 김씨의 경우 ▶상장 담당 실무자였을 뿐 코인 상장 관련 결정권이 없었고 ▶전씨 등 수뇌부가 정한 방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것이며 ▶시세조작 등 불법 MM 사실을 몰랐다는 등의 이유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재판부는 다음달 6일 증인신문을 한 차례 더 가진 뒤 이들에 대한 결심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단장 이정렬)은 거래소가 수수한 상장피 등을 포함해 코인원 상장 비리에 관한 남은 의혹을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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