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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상장 브로커 "대형거래소? 입장료 30억+α면 뚫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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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코인 상장 브로커들이 법정에 섰다. 암호화폐거래소 코인원에 최소 46개에 달하는 코인의 상장 청탁 대가로 거래소 임직원에 십수차례에 걸쳐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십수억원을 건넨 혐의(배임증재)를 받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7단독 김정기 판사는 25일 브로커 고모(44)·황모(38)씨와 코인원 전 최고영업이사(CGO) 전모(41)씨, 전 상장팀장 김모(31)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그간 업계 관행으로 여겨지던 코인 상장피(fee)와 이를 알선하는 브로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 뒤 열린 첫 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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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상장 브로커는 주로 음지에서 활동하며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업계에선 이미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만 외부에는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상장 브로커들이 법정에 선 뒤부턴 더더욱 노출을 꺼리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을 어렵게 접촉해,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모처에서 만났다. 자신을 ‘김실장’이라고 소개한 30대 A씨다. 그는 “검찰 수사로 사회 이슈가 된 뒤에도 브로커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한다”며 “거래소가 뚫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한 코인 상장 브로커 A씨는 "코인 상장의 목적은 MM(시세조종)이고, 거액의 입장료(상장피)를 들이는 것도 MM으로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시세 현황판의 모습. 연합뉴스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한 코인 상장 브로커 A씨는 "코인 상장의 목적은 MM(시세조종)이고, 거액의 입장료(상장피)를 들이는 것도 MM으로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시세 현황판의 모습. 연합뉴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거래소를 ‘피해자 회사’로 봤다.
“거래소도 불법적인 상장피의 존재를 200% 알고 있다고 본다. 코인 발행 재단이 브로커를 통해 거래소 상장을 의뢰하고 돈을 지불할 때 거래소 관계자 한 사람의 말만 믿고 하지 않는다. 그 직원이 퇴사해버리면 그만이잖나. 재단 등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가짜 브로커도 많다. 재단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국내 거래소에 상장 된 코인 중 상장피와 관련 있는 건 어느 정도라고 보나.
“짐작이지만, 80~90%는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A씨는 ‘상장피’ 대신 ‘입장료’라는 업계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영업할 때 재단에 제시하는 시세표를 꺼내 보였다. 시세표 안에는 국내·외 거래소별 입장료 시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군소 거래소의 경우 입장료는 1500만원,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중소 거래소로 급이 올라가면 5000만원까지 뛰었다. 그는 “영업비밀이라 표를 줄 수는 없다. 사진 촬영도 안된다”며 잠시 보여주기만 했다.

이름도 생소한 해외 거래소엔 왜 상장하려는 건가.
“그거라도 하고 싶어하는 재단이 있으니까 한다.”
국내 대형 거래소 입장료는.
“원금만 30억~50억원이다. 여기에 거래소 목록 상위 노출 등 옵션이 붙으면 ‘플러스 알파(+α)’가 된다.”
믿기 어렵다.
“거액 같아도 재단 입장에서는 상장 이후 MM(유가증권시장의 시세조종과 같은 의미로 사용) 작업으로 전부 회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아끼지 않는다. 거래소에 상장하려는 이유는 오직 MM이다.”
코인 상장 대가로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는 코인원 전 상장팀장 김모(31)씨가 지난달 1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씨는 브로커 두 명으로부터 총 10억4000만원의 현금과 가상자산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1

코인 상장 대가로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는 코인원 전 상장팀장 김모(31)씨가 지난달 1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씨는 브로커 두 명으로부터 총 10억4000만원의 현금과 가상자산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1

브로커는 혼자 일하나.
“혼자 움직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팀으로 움직인다. 거래소 상장, MM, 세일즈(다단계 또는 텔레마케팅 식 투자자 유치) 등으로 구성된 종합 컨설팅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재단의 의뢰를 받으면 MM팀·세일즈팀과 개별 미팅을 진행한다. 이렇게 각 조직을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면 얼마나 버나.
“재단 1개당 2~3억원 정도다.”
액수가 커서 분쟁도 많겠다.
“상장피를 거래소 측에 전달한다고 하면 나 뿐만 아니라 지인, 지인의 측근 등 여러 명을 끼고 거래소 관계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든다. 혼자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 몫의 수수료가 적어지더라도 앞에 누구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배달사고 우려는 없나.
“비공식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재단과 MM팀이 서로 물량을 던지고 받치고 하면 돈 10억~20억원은 쉽게 오간다. 이 과정에서 결제를 제때 못 받는 등 사고가 나면 서로 용역을 동원해 감금·협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브로커들은 원래 무슨 일을 했나.
“상당수가 과거 주식시장에서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에 관여하던 사람들이다. 제도권에서는 브로커 활동이 까다로우니 별다른 규제 없이 큰 돈을 벌 수 있는 코인 시장으로 많이 진출했다. 특히 상장 관련해 거래소 측 지인과 소통하면서 소개·알선 명목으로 자신의 몫을 챙기는 과정에서 브로커가 생겨 났다.”
서울남부지검은 암호화폐거래소와 코인 상장 브로커, 코인 발행 재단, MM업체 등의 유착비리 등을 수사하고 있다. 사진은 남부지검 가상자산 비리 수사팀이 지난달 11일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브리핑하는 모습. 오른쪽부터 허정 2차장검사, 이승형 금융조사1부장(현 대검 반부패2과장), 기노성 부부장검사. 뉴스1

서울남부지검은 암호화폐거래소와 코인 상장 브로커, 코인 발행 재단, MM업체 등의 유착비리 등을 수사하고 있다. 사진은 남부지검 가상자산 비리 수사팀이 지난달 11일 코인원 상장 비리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브리핑하는 모습. 오른쪽부터 허정 2차장검사, 이승형 금융조사1부장(현 대검 반부패2과장), 기노성 부부장검사. 뉴스1

국내 5대(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암호화폐거래소는 불법적인 상장피 수수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상장 시스템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직 임직원이 기소된 코인원도 차명훈 대표 명의로 “일부 담당자의 불법 행위를 인지하지 못해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흔들리게 됐다”는 정도로 입장을 낸 게 전부다. 그러나 A씨는 “상장피는 분명 존재하며, 합법적인 상장피라는 건 없다”며 “지금의 코인판이 사기판으로 전락한 건 거래소·브로커·MM·세일즈 등 모든 관련자들의 공동 책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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