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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천년고도 폐허로…지진 사망 2000명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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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알 하우즈주 고산지대인 물라이 브라힘 마을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주택 잔해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모로코군은 전날 밤 발생한 최소 규모 6.8(미국 지질조사국)의 지진으로 이날까지 최소 2012명이 숨지고 205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모로코 알 하우즈주 고산지대인 물라이 브라힘 마을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주택 잔해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모로코군은 전날 밤 발생한 최소 규모 6.8(미국 지질조사국)의 지진으로 이날까지 최소 2012명이 숨지고 205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 북동부 ‘하이 아틀라스’ 산맥에서 8일 밤(현지시간) 강진이 발생해 최소 2000여 명이 숨졌다고 AFP통신·BBC 등이 보도했다.

이날 오후 11시11분쯤 모로코 북부 중세 고도(古都)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71㎞ 떨어진 알 하우즈주 서남부 아틀라스 산맥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규모 6.8로 측정했고, 모로코 국립지구물리학연구소는 규모 7.2라고 발표했다.

첫 지진 발생 후 규모 4.9를 비롯한 여진이 수백 차례 뒤따랐다. 모로코군은 지난 9일 “현재까지 최소 2012명이 숨지고 205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1404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군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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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승곤씨는 1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진이 난 직후 가족과 집 밖으로 뛰쳐나와 차 안에서 잤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갔더니 내벽에 금이 가 있었다”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많은 이가 집이 내려앉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공원에서 노숙하며 밤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 라바트에 거주하는 박재용 모로코 한인회장은 “8일 밤 11시쯤 지진이 발생했을 땐 가재도구가 떨어질 정도로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며 “경찰이 긴급하게 건물 밖으로 나오라고 안내해 모두 뛰어나와 긴장 속에 밤을 지새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다행히 여진을 거의 느끼지 못해 카사블랑카나 라바트 등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모로코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360여 명이다. 10일 현재까지 교민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다.

올 초 튀르키예 강진과 닮은꼴“…모로코 GDP의 8% 날아갔다”

모로코 왕립 군대가 9일(현지시간) 마라케시 남서부 산골 마을 타페가흐테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주택 잔해에서 시신 한 구를 수습하고 있다. 당국은 전날 밤 발생한 지진으로 최소 2000여 명이 숨지고, 200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AFP=연합뉴스

모로코 왕립 군대가 9일(현지시간) 마라케시 남서부 산골 마을 타페가흐테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주택 잔해에서 시신 한 구를 수습하고 있다. 당국은 전날 밤 발생한 지진으로 최소 2000여 명이 숨지고, 200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AFP=연합뉴스

외교부 당국자는 “교민들은 주로 카사블랑카 등에 거주하고 있어 현재까지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BBC는 “이번 지진은 이 지역에서 1900년 이후 10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고 전했다. 진앙지인 알 하우즈주를 비롯해 치차우아, 타루단트 등 험준한 고산지대 산골마을의 인명피해가 컸다. AFP통신에 따르면 물라이 브라힘 마을에 사는 라센(40)은 아내와 네 자녀를 잃고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며 망연자실해했다. 같은 마을 여성 부크라는 “아이들이 많이 죽어 온 마을이 슬퍼하고 있다. 아직도 몸이 떨린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모로코는 지난 9일부터 3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구조작업에 군을 투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재민과 부상자가 최소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이번 지진은 여러 면에서 사망자가 6만 명에 육박한 올 초 튀르키예·시리아 강진(규모 7.8)과 닮은꼴이다. USGS와 모로코 국립연구소를 종합하면 이번 지진의 진원은 지표면에서 18.5㎞ 아래로 비교적 ‘얕은 지진’이었다. 지난 2월 튀르키예 강진 때는 첫 지진 진원은 지하 18㎞였고, 곧 이은 여진(규모 7.5)은 10㎞에서 비롯됐다. 지표면과 가까울수록 흔들림이 커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8일 지진은 북부 해안도시 카사블랑카와 수도 라바트에서도 느껴졌으며, 대서양 건너 포르투갈에서까지 진동이 감지됐다.

마라케시 랜드마크인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 사진=X 캡처

마라케시 랜드마크인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 사진=X 캡처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점도 비슷했다. 마라케시에 거주하는 영국인 마틴 제이는 BBC 라디오에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내 비명이 들렸다”면서 “눈 뜨니 침대와 바닥, 네 개 벽까지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적 스테판 귀린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TV와 꽃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지는 동안 건물 벽에 밀착해 있었다”면서 “내 인생의 가장 긴 15초가 지난 뒤 맨발로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관광 명소인 메디나의 제마엘프나 광장과 공원에서 담요 등을 깔고 노숙했다.

모로코 국영 매체 2M에 따르면 알 하우즈주 산골마을은 구불구불하고 좁은 도로로 연결돼 있어 구조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최고봉이 약 3962m에 이르는 험준한 산간 지대다. 중장비가 아직 닿지 않은 산골마을 주민들은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헤쳐 가며 가족과 이웃을 찾고 있다. 아스니 마을에 사는 하야트 부차마는 WSJ에 “잔해 밑에서 비명이 계속 들리는데 꺼낼 수 있는 장비가 없다”면서 “마을 주민들이 맨손으로 구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총회에 참석차 모로코를 방문한 제주 대표단과 관광객들이 이불 등을 덮고 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총회에 참석차 모로코를 방문한 제주 대표단과 관광객들이 이불 등을 덮고 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주민 대다수가 내진 설계는커녕 벽돌과 진흙으로 지어진 전통가옥에 살고 있다. 현지 언론은 지진에 취약한 붉은 진흙 벽돌집이 많아 ‘붉은 도시’로 불리는 마라케시 지역 특징이 피해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USGS는 “지진에 매우 취약한 가옥들로 인해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USGS는 이번 지진으로 모로코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8%인 약 100억 달러(약 13조원)에 이르는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을 지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아틀라스 산맥 자체가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의 충돌로 융기한 지형이다. 다만 아프리카판은 유럽 방향으로 연간 4㎜씩 이동하는데, 미 캘리포니아주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연간 50㎜씩 이동하는 데 비해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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