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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뜨거운 감자 연금개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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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걸고 밀어붙인 연금개혁안이 지난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핵심은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2년 연장하고, 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납입기간도 43년으로 1년 늘렸다. 프랑스는 연금 재정이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섰고, 2050년이면 적자폭이 연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 고령화로 몸살을 앓는 모습, 남의 일이 아니다.

90년대생 ‘국가공인 폰지사기’ 불신
세대갈등 봉합할 정치권 결단 필요

같은 날 우리나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현재 9%인 보험료를 12~18%로 올리는 등의 시나리오 18가지를 제시했다. 위원장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보험료 15%, 수급개시연령 68세, 기금운용수익률 0.6%포인트 상향’을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 정도는 돼야 기금 고갈을 2055년에서 2093년으로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1300조원을 거둬 300조원을 연금으로 지급했다. 현재 적립된 기금은 1000조원 정도다. 이 기금은 2040년 1755조원까지 늘어난다. 앞으로 20여년 동안은 매년 걷는 보험료가 지급하는 연금보다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올해 2200만 명인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2060년이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현재 530만 명인 수급자는 최대치인 1569만 명까지 급증한다. 실제로 매년 100만 명에 달하는 신생아가 태어난 1차 베이비붐(1955~63년) 세대가 연금을 받고 있고, 중간세대인 64~67년생은 은퇴를 시작했다. 10년 후 2차 베이비붐(68~74년) 세대까지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 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난다. 그 결과 2040년까지 모은 기금이 불과 15년 뒤면 바닥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기대수명이 83세인 점을 감안하면 베이비부머들이 세상을 떠나는 시점과 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이 비슷하다. 기금이 떨어지면 매년 거둬서 나눠 주는 부과방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2060년은 1990년생이 연금을 받기 시작할 때다.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90년 이후 출생자들이 소득의 30%를 보험료로 내거나, 90년 이전 태어난 수급자들이 연금을 기존의 3분의 1만 받아야 한다. 결국 연금은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예정된 파국에 대한 반응도 다르다. 베이비부머는 “우리가 평생 부은 돈으로 우리가 연금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 이후 태어난 세대는 “평생 보험료를 내도 연금 한 푼 못 받을 수 있다”고 분개한다. 특히 30대 이하 젊은층에서는 국민연금을 ‘국가 공인 폰지 사기’로 여긴다. 재정계산위에서 기금 고갈시기를 2093년까지 늦추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소한 2010년에 태어난 사람들까지는 연금을 못 받을까 걱정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세대라도 연금에 대한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국민연금은 복지제도의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년간 보험료를 납부했을 때 월 소득 100만원일 경우 보험료의 4.3배인 39만원을 받는다. 300만원은 2.2배인 59만원, 500만원은 1.8배인 79만원이 된다. 실제로 현재 소득계층별 수익비(낸 보험금 대비 받는 연금의 비율)는 저소득층이 4.5배, 중산층이 1.8배, 고소득층이 1.3배 정도로 추산된다. 상대적으로 많은 보험료를 내는 고소득층일수록 국민연금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뜨거운 감자다. 올해 초 마크롱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이 지난 3월 프랑스 하원 심의에 들어가자 전국에서 반대시위가 이어졌다. 집권당 지지율은 22%로 5%P 떨어졌다. 특히 35세 이하의 지지율은 12%에 그쳤다. 우리나라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연금 개혁을 정부가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 20여년 뒤에나 올 파국이라고 외면하는 동안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마크롱의 결단이 부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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