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 능력 충분하지만 비핵 3원칙 지켜나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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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일본 전 총리가 22일 핵문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권철(재일 사진작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들여오지도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비핵 3원칙'에도 불구하고 핵무장 문제가 일본 정치권의 새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정계의 원로로 '원자력 대국' 일본을 만든 주역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88) 전 총리를 22일 도쿄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나 핵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80%가 비핵 3원칙 준수를 원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노력이 실패로 끝나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될 경우 일본 여론이 바뀔 가능성은 없나.

"미국과 상의해 방향을 정하겠지만 '우리를 지켜 주는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한다'는 것이 일본의 대응 원칙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40t 분량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3개월 내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비핵 3원칙을 장래에도 엄수한다'는 것이 일본의 기본 입장이다. 일본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되고, 세계 정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일본은 냉정히 판단해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귀하는 세계평화연구소의 9월 5일 세미나에서 '장래 국제사회의 대변동에 대비해 핵 무장화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재앙' 때문에 일본 국민은 핵 알레르기가 매우 심하다. 그러나 정치.사회 지도자는 핵 문제를 냉정하게 받아들여 (일본에) 핵이 사용되는 경우 북한의 행동과 그에 대한 미국의 행동 등을 생각해 보고, 일본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를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비핵 3원칙과 NPT를 준수해야 한다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다."

-일본은 핵무기 보유국이 아니면서 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이러한 특권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과 귀하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평화를 위한 원자력 정책'을 제시한 것이 1954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일본도 원자력 정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원자력위원회를 만들고 여러 가지 장기 계획을 세우게 했다. 경수로, 개량형 경수로, 신형 전환로, 고속 증식로 건설은 물론이고, 농축 우라늄과 핵폐기물 처리에 따른 플루토늄 생산까지 모든 것이 그 계획에 들어 있었다. 이를 위해 미국.영국.프랑스와 긴밀하게 협의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완벽하게 이뤄지도록 했고, 비핵 3원칙을 엄수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신뢰가 쌓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핵 3원칙 준수 방침을 밝히면서도 핵무장에 대한 논의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태도는 모순이 아닌가.

"아베 총리의 말은 정부 차원의 논의는 안 되지만 당이나 민간이 논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논의라는 것도 앞서 말한 것처럼 핵이 사용되는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일본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이런 것들을 얘기해 보자는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 때문에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보는가.

"일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NPT 체제가 붕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더라도 동북아 '핵 도미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뜻인가.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매우 불확실하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모든 참가국이 북한의 핵무장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중국이 식량과 석유 지원을 중단하면 북한 경제는 붕괴된다. 그런 위험을 안고 북한이 핵무장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 될 것이다."

-다음달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이 실패로 끝나고,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게 되면 중국과 미국이 손잡고 북한의 체제붕괴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

"추가 핵실험을 하게 되면 5개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고, 5개국은 추가 조치를 강구하게 될 것이다. 열쇠는 북한에 석유와 식량을 공급하는 중국이 쥐고 있다."

정리=예영준 도쿄특파원

◆ 나카소네=1982년 11월부터 5년간 총리를 지냈다. 도쿄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중위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47년 국회의원(중의원)에 첫 당선된 이후 20선. 59년 과학기술청 장관으로 입각해 방위청 장관, 통상산업상, 자민당 간사장.총무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은퇴해 현재 세계평화연구소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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