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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8) 빈 합을 보고 자결한 순욱, 가맹관에서 야망을 키운 유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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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손권에게 쳐들어가기 전에 위공(魏公)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구석(九錫)을 더하여 위세와 영화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모든 신하가 반겼지만 최측근인 순욱은 반대했습니다.

아니 됩니다. 승상께서는 본래 한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마땅히 충정한 뜻을 잃지 마시고 겸손하게 물러서는 절조를 지키셔야 합니다. ‘군자는 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은 합당치가 않습니다.

조조는 순욱의 말을 듣자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제 순욱도 자신의 측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치러가면서 순욱을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순욱은 병을 핑계로 수춘(壽春)에 머물렀습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음식 한 합(盒)을 순욱에게 보냈습니다. 순욱이 합을 열어보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순욱은 그 뜻을 알고 독약을 먹고 자결했습니다. 나이 50세였습니다.

순욱의 재주 천하에 소문났는데 文若才華天下聞
가엽다, 발 잘못 담가 권세가에 있었구나. 可憐失足在權門
후세 사람들이여 멋대로 장량에 비하지 마시라. 後人休把留侯比
죽음을 앞두고 한 황제들 뵐 낯이 없으리니. 臨沒無顔見漢君

모종강은 순욱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조조의 참모 순욱.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의 참모 순욱. 출처=예슝(葉雄) 화백

‘순욱의 죽음을 두고 어떤 사람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하여 아름답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처음 조조에게 연주(兗州)를 빼앗으라고 권할 때는 한고조와 광무제에 비교했고, 계속하여 조조에게 관도(官渡)에서 싸우기를 권할 때는 항우와 한패공에 비교했다. 그가 계획하고 펼친 모든 전략이 조조의 참역(僭逆)을 돕지 않은 것이 없다. “그는 벽에 구멍을 뚫고 돈궤를 훔쳐 가도록 가르친 사람이다.”라는 두목의 비방이 꼭 맞는 지론(至論)이다. 이미 도적질을 가르쳐 놓고 뒤에 와서 갑자기 군자론(君子論)을 펼치며 말리고 있는 셈이다. 순욱의 실족은 조조를 따르면서 시작된 것인데, 그것을 모두 만절(晩節)로 감싸 덮으려 하니 어찌 식자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는가?’

조조가 돌아가자 손권은 다시 형주를 빼앗기로 하였습니다. 장소가 계책을 내었습니다. 유장에게 편지를 보내 유비를 의심하게 하고, 장로에게 편지를 보내 형주를 공격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손권은 장소의 계책을 즉시 실행에 옮겼습니다.

유비는 가맹관에 주둔하며 많은 민심을 얻었습니다. 제갈량이 편지를 보내 손부인이 동오로 돌아갔고, 조조가 손권을 공격한 것을 알렸습니다. 유비는 방통에게 편지를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조조가 손권을 쳐 이기면 반드시 형주를 뺏으려 할 것이고, 손권이 이겨도 반드시 형주를 뺏으려 들 터이니 어찌해야 되겠소?

걱정하지 마소서. 제갈량이 그곳에 있으니 동오가 감히 형주를 침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유장에게 편지를 보내 ‘조조가 손권을 공격하여 순치(脣齒) 관계인 손권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장로는 자신을 지키는 도적이라 결코 감히 경계를 침범하지 못할 터이니, 이제 군사를 정돈하여 형주로 돌아가 손권과 힘을 합쳐 조조를 치려 하오. 하지만 군사는 적고 군량을 모자라니 동기간의 정의를 생각해서 정예병 3-4만 명과 군량 10만 섬을 도와주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만일 군마와 전량을 얻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의논드리겠습니다.

유장은 참모들의 말에 따라 늙고 약한 군사 4천 명과 쌀 1만 섬만 보냈습니다. 이를 본 유비는 크게 노하며 편지를 찢어버렸습니다. 방통은 유비에게 세 개의 계책을 말했습니다. 유비는 그 중 중책을 택했습니다. 전별연 자리에서 양회와 고패를 죽이고 부성(涪城)을 빼앗기로 한 것입니다. 유비의 서천(西川)에 대한 야심이 이제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유비가 유장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조조가 부하 장수 악진을 시켜 군사를 이끌고 청니진으로 왔소. 여러 장수가 막고 있으나 막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직접 가서 막아야겠소. 그래서 뵙지 못하고 특별히 편지로 작별을 고하오.’

장송은 유비가 형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진심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비에게 몰래 편지를 썼습니다. 즉시 서천을 공격하면 당연히 내통하여 함락시킬 수 있으니 형주로 돌아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친형인 광한태수(廣漢太守) 장숙이 보고는 유장에게 알렸습니다. 아우 장송 일가는 모두 저잣거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유비는 방통의 계책대로 양회와 고패를 죽이고 부수관을 차지했습니다. 유장은 더욱 놀라서 유괴, 냉포, 장임, 등현 등 네 장수와 5만 명의 대군을 보내어 낙성(雒城)에서 유비를 막도록 했습니다. 유괴가 금병산에 이르자 자허상인을 찾아가 자신들의 운수를 알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자허상인이 다음과 같이 써주었습니다.

좌우의 용과 봉이 左龍右鳳
서천으로 날아드네 飛入西川
봉의 새끼는 땅에 떨어지고 鳳雛墜地
누운 용은 하늘로 오르네 臥龍升天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으니 一得一失
당연한 하늘의 이치로구나 天數當然
기회를 엿보고 잘 움직여 見機而行
죽음을 자초하지 마시게 勿喪九泉

유장의 장수들을 무찌르는 노장 황충.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장의 장수들을 무찌르는 노장 황충.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들은 낙성으로 갔습니다. 유괴와 장임은 낙성을 지키고, 냉포와 등현은 성에서 60리 떨어진 곳으로 나와 영채를 세웠습니다. 유비는 황충과 위연으로 하여금 냉포와 등현의 영채를 공격하여 빼앗도록 했습니다. 유장은 등현이 죽었다는 소식에 아들 유순과 처남 오일이 낙성을 지원토록 했습니다. 유비도 맹달과 곽준에게 가맹관을 지키게 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이제 유비의 본격적인 서천 공략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모종강은 유비와 유장이 사이가 벌어지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연.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권과 유비의 사이가 벌어지더니 이제는 유비와 유장이 서로를 미워한다. 누이를 데려가고 아들을 빼앗아가려는 것은 손권과 유비의 사이가 벌어졌기 때문이고, 양식을 아끼고 편지를 찢는 것은 유장과 유비가 서로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권과 유비는 다시 화합할 수 있지만, 유장과 유비는 다시 좋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장이 유비를 맞아들였으니 이미 다시 내보낼 수 없는 형편에 놓인 것이다. 불러들였다가 다시 쫓으려 한다면 분쟁이 일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비가 서천으로 들어왔다면 이미 빼앗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놓인 것이다. 그 경내로 들어와서 차마 그 땅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나가나 물러가나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자신이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를 불러들이기는 쉽지만 쫓아내기는 어렵고,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기는 쉽지만 위험한 곳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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