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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7) 조조! 당신이 죽지 않아 내가 발 뻗고 잘 수가 없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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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드디어 서천으로 들어왔습니다. 방통과 법정은 유비에게 마중 나온 유장을 처치하면 힘 안 들이고 서천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거부했습니다. 두 사람이 재삼 권했지만 유비는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제 막 촉(蜀)으로 들어와서 은덕을 베풀지도 못했고 신의를 세우지도 못했으니 그런 일은 결코 할 수가 없소.

민심을 중시하는 유비의 노련한 정치술이 그대로 느껴지는 말입니다. 이튿날, 유장은 유비를 위해 잔치를 베풀고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매우 정답고 친밀한 분위기였습니다. 술잔이 돌고 거나하게 취기가 올랐습니다. 방통과 법정은 유비의 허락을 기대할 수 없자 위연에게 칼춤을 추게 합니다. 칼춤을 추다가 유장을 처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연회에서 칼춤을 추다 유장을 죽이려는 위연. 허우범 작가

연회에서 칼춤을 추다 유장을 죽이려는 위연. 허우범 작가

잔치 자리에 즐기실 만한 것이 없으니 원하옵건대 놀이 삼아 칼춤을 추어보겠습니다.

칼춤은 반드시 짝이 있어야 하니 원하옵건대 제가 위장군과 함께 칼춤을 추어올리겠습니다.

우리가 군무(群舞)를 추어 좌중을 한바탕 웃기겠습니다.

위연이 칼춤을 추자 유장의 부장인 장임이 분위기를 간파하고 위연 앞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유봉이 위연을 도와 칼춤을 추었습니다. 유장 쪽에서는 유괴, 냉포, 등현이 칼을 빼 들고 나섰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금방 폭풍이 몰아칠 듯했습니다. 유비가 매우 놀라 부하가 차고 있던 검을 빼 들고 벌떡 일어나 꾸짖었습니다.

우리 형제가 만나 즐겁게 마시고 있고 조금의 의혹도 없다. 또한 홍문(鴻門)의 연회 자리도 아닌데 칼춤을 어디다 쓰겠느냐? 칼을 버리지 않는 자는 당장 목을 치겠다.

칼춤을 추는 부하들을 꾸짖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칼춤을 추는 부하들을 꾸짖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두 사람은 다시 즐겁게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방통은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이 못내 아쉬워 탄식했습니다. 하지만 유비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방통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지금 나와 조조의 관계는 마치 물과 불처럼 맞서고 있소. 조조가 빨리하면 나는 늦게 하고, 조조가 사납게 굴면 나는 자애롭게 나가고, 조조가 거짓말을 하면 나는 정직하게 행동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조조와 반대로 하면 일은 달성될 것이오. 아주 작은 이익을 좇아 천하의 대의를 잃는다면 나는 하지 않겠소.

지금 나와 조조의 관계는 마치 물과 불처럼 맞서고 있소. 조조가 빨리하면 나는 늦게 하고, 조조가 사납게 굴면 나는 자애롭게 나가고, 조조가 거짓말을 하면 나는 정직하게 행동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조조와 반대로 하면 일은 달성될 것이오. 아주 작은 이익을 좇아 천하의 대의를 잃는다면 나는 하지 않겠소.”

유장은 날마다 유비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로가 가맹관으로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유장의 부탁을 받은 유비는 흔쾌히 가맹관으로 향했습니다. 가맹관에 주둔한 유비는 방통을 비롯한 참모들의 속전속결 제안을 자제하고 주민들의 신망을 얻는 일에 집중합니다. 대외적인 신의를 중시하며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는 유비의 전략인 것입니다.

한편, 손권은 유비가 촉으로 들어간 것을 알고 참모들과 형주를 빼앗을 궁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국태가 여동생의 목숨까지 빼앗으려 하냐고 반대하자 손권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원로대신인 장소가 제안했습니다.

심복 장수 한 사람에게 5백 명의 군사를 데리고 형주로 잠입해서 군주(郡主)를 모시고 밤을 도와 돌아오게 하십시오. ‘국태께서 병환이 위독하여 따님을 보고 싶어 하신다.’는 밀서를 보내면 될 것입니다. 유비는 평생 아들을 하나밖에 두지 못했으니 오시는 길에 데려오게 하면 유비는 틀림없이 형주와 아두를 맞바꾸려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간다고 다시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손건은 반색을 하며 즉시 주선을 시켜 추진토록 하였습니다. 주선과 군사들은 장사꾼으로 변장하여 형주에 잠입했습니다. 밀서를 읽은 손부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유비는 멀리 있고 마음은 급했습니다.

국태께서 병이 위급하시어 애타게 부인만 찾으십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살아계신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아두(阿斗)도 보고 싶다고 하시었으니 오실 때 함께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속히 출발하셔야 합니다.

손부인에게서 아두를 빼앗은 조운과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부인에게서 아두를 빼앗은 조운과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부인은 7살 난 아두를 데리고 배에 올랐습니다. 배가 막 출발하려고 할 때 조운이 달려왔습니다. 주선은 곧장 배를 출발시키고 무기를 꺼내 조운에게 대항했습니다. 하지만 장판파의 영웅을 어찌 당할 수 있겠습니까. 곧이어 장비도 뒤쫓아 왔습니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손부인도 아두는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손부인은 혼자서 동오로 돌아갔고 장소의 계책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운과 장비는 장판파에 이어 또다시 공을 세웠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칭송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예전에는 당양에서 주인을 구했고 昔年救主在當陽
오늘은 장강에서 몸을 날리네. 今日飛身向大江
배 위의 오나라 병사들 기겁해 자빠지니 船上吳兵皆膽裂
조자룡의 용맹함 세상에 으뜸이네. 子龍英勇世無雙

지난날 장판교에서 노기가 펄펄 끓어 長坂橋邊怒氣騰
범처럼 포효하여 조조 군사 물리쳤고 一聲虎嘯退曹兵
오늘은 강 위에서 위험천만 주인 구하니 今朝江上扶危主
청사에 실린 이름 만세에 알리리라. 靑史應傳萬載名

손권은 누이동생이 돌아오자 본격적으로 형주를 빼앗기 위해 문무관리들과 상의했습니다. 그런데 조조가 40만 대군을 이끌고 적벽의 원수를 갚으러 쳐들어온다는 첩보가 왔습니다. 형주 공략은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손권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조조에게 대항했습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그사이 해가 바뀌어 정월이 되었습니다. 봄비가 내려 조조의 영채는 엉망이었습니다. 조조는 손권이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알고 군사를 물리고 싶었지만 오나라의 손권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마음은 철군하고 싶지만 몸은 그럴 수 없으니 조조도 답답했습니다.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데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손권도 형주 차지가 급했습니다. 이러한 때 조조와 대치하는 것은 도움될 것이 없었습니다. 손권도 적당한 타협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조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나나 승상이나 모두 한나라의 신하거늘 어째서 승상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편히 할 방편은 생각지 않고 함부로 전쟁을 일으켜 살아있는 것들을 못살게 하니 어찌 어진 자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소. 며칠 안으로 물이 차오를 테니 속히 물러가시오. 만약 내 말을 믿지 않고 있다가는 적벽에서의 재앙을 다시 맞게 될 것이니, 알아서 잘 판단하시리라 믿소.

그리고 편지 뒤쪽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족하가 죽지 않으니 나는 정말 편안하게 잠잘 수가 없소.(足下不死 孤不得安)

조조도 돌아가고 싶었던 터에 손권이 체면을 세워주자 껄껄껄 웃었습니다. 그리고 양군은 나란히 철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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