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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6) 장송을 내친 조조와 어부지리로 서천 지도를 얻은 유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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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마초를 무찌르고 허도(許都)로 돌아오자 헌제는 친히 나와 영접을 했습니다. 또한, 조서를 내려 그 공을 치하했습니다. 조서의 내용을 살펴볼까요? 조정으로 들어와 헌제를 배알할 때 이름은 부르지 말고 직함만 부르게 했습니다.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칼을 차고 신발을 신은 채 전상(殿上)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권한은 한나라 초기 재상을 지낸 소하의 고사에 따른 특전이었습니다. 이로부터 조조는 천하에 위세를 떨치게 되었습니다.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헌제.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헌제.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가 관중(關中)을 평정하자 한중(漢中)을 차지하고 있던 장로가 긴장했습니다. 장로는 오두미교를 이끈 장형(張衡)의 동생으로 형의 뒤를 이어 한중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조의 서량 점령에 위기의식을 느낀 장로는 유장이 다스리는 익주를 빼앗기로 결심합니다. 장로에게 있어서 유장은 어머니와 아우를 죽인 원수이니, 이제 그 원수를 갚고 익주를 차지하여 조조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로가 익주를 차지하려는 장면은 소설 삼국지의 후반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모종강은 나관중이 배치한 이야기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장각이 좌도(左道)로 대중을 호리는 이야기가 50여회 앞에 있었는데 이번 회에 갑자기 한 좌도의 장로를 등장시켜 짝을 이루고 있다. 장각이 3형제인데 비해 장로는 부자(父子)와 조손(祖孫)의 3대이고, 장각이 태평도인(太平道人), 대현량사(大賢良師)란 명칭을 쓴데 비해, 장로는 사군(師君), 제주(祭酒), 귀졸(鬼卒)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어째서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비슷한가? 유비가 장차 도원에서 의를 모으려고 황건적이 시작되더니, 유비가 장차 서촉(西蜀)으로 들어가려 하자 장로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나뉘는 분수령이다.’

익주목인 유장은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장로가 익주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자 크게 걱정하면서 관원들을 모아놓고 상의했습니다. 익주별가(益州別駕)인 장송이 계책을 내었습니다.

제가 듣자니 허도의 조조는 중원을 소탕하여 여포와 원소, 원술을 모두 멸망시켰으며, 최근에는 또 마초를 무찔러 천하에 맞설 사람이 없습니다. 주공께서는 진상할 물건을 준비해주십시오. 제가 직접 허도로 가서 조조에게 군사를 일으켜 한중(漢中)을 뺏으라고 달래겠습니다. 장로를 친다면 장로는 적을 막기에도 바쁠 터이니 어찌 감히 촉을 넘보겠습니까?

유장은 장송을 말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하지만 조조가 진짜로 장로를 공격해줄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나관중 본에는 유장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장송의 계책이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살펴보겠습니다.

한중을 다스리는 장로. 출처=예슝(葉雄) 화백

한중을 다스리는 장로. 출처=예슝(葉雄) 화백

마초는 저 옛날의 한신, 경포와 같은 용맹을 지녔는데 승상과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있습니다. 이제 비록 잠시 패했지만 뒤에는 반드시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한중의 장로는 군사가 정예롭고 식량이 넉넉하며 백성들이 그를 한왕(漢王)으로 높여 모시려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황제를 자칭할 것입니다. 황제가 되면 반드시 중원을 침범할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에게 모자라는 것은 대장뿐입니다. 만약 마초가 급히 복수하려고 서두른다면 반드시 농서의 군사를 모아 장로에게 갈 것입니다. 장로가 마초를 얻으면 호랑이에게 날개가 돋는 격입니다. 장로와 마초가 함께 나오면 승상께서 어떻게 당해내시겠습니까? 마초가 장로에게 가기 전에 한중에서 방비를 하지 않는 틈을 타서 들이치는 것이 좋으니, 북 한 번 쳐서 진격하는 것으로 단숨에 깨뜨릴 수 있습니다.

장송이 허도에 도착하여 조조를 뵙기를 청했지만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만났습니다. 장송의 생김새는 괴이했습니다. 머리는 뾰족하고 이마는 까졌으며 들창코에 뻐드렁니였습니다. 키는 다섯 자가 안 되었고 목소리는 쇠종소리 같았습니다. 조조는 장송을 보자마자 그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비위를 거스르는 말만 하자 조조는 아예 후당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장송은 조조에게 본론도 말하지 못한 채 쫓겨난 꼴이 되었습니다.

장송을 알아본 사람은 양수였습니다. 양수는 장송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조가 지은 〈맹덕신서(孟德新書)〉라는 13편으로 된 병법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양수가 신서에 대해 칭찬을 하자 장송이 한번 훑어보고는 말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촉에서는 삼척동자도 다 외는데 어째서 신서라고 하십니까? 이것은 전국시대 무명씨가 지은 것으로 조승상이 몰래 베껴 자기가 지은 것처럼 한 것인데 그대나 속일 수 있을 뿐이오.

말을 마친 장송은 증명이나 하듯이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줄줄 외었습니다. 양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얼굴만 보고 평해서는 안 되는 것이거늘 생김새만 보고 자신을 비하하고 평가하는 조조가 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굴이 고괴한 것이 느꺼웁구나 古怪形容異
마음은 청고하나 모습은 추하네. 淸高體貌疏
언변은 삼협수처럼 막힘이 없고 語傾三峽水
열 줄의 글을 한 번에 알아보네. 目視十行書

담력 또한 서촉에서 으뜸이요 膽量魁西蜀
문장 역시 하늘을 꿰뚫는도다. 文章貫太虛
제자백가 모두 머릿속에 있으니 百家幷諸子
한 번 보면 다시 볼 필요 없네. 一覽更無餘

유비에게 서천지도를 바치는 장송.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에게 서천지도를 바치는 장송.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송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유비는 장송이 형주를 지나는 길에 극진하게 대접을 했습니다. 장송은 유비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러자 유비에게 일급 기밀에 속하는 서천 지도를 넘겨주고 돌아왔습니다. 유장에게는 종친인 유비를 불러들여 장로를 무찌르도록 건의하고 법정과 맹달을 사자(使者)로 추천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나약한 주인인 유장을 배신하고 새로운 주인으로 유비를 모시려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비는 망설였습니다. 종친인 유장을 치는 것은 여태껏 인의를 중시한 자신의 전략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통이 유비에게 말했습니다.

주공 말씀이 천리(天理)에 맞지만 지금처럼 전란이 계속되는 때에는 군사를 써서 힘을 겨루는 일이 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지당한 이치만 세우시다가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임기응변을 따라 약한 것은 합치고, 우둔한 것은 쳐부수어 역리로 차지하고 순리로 다스리는 것이 탕무(湯武)의 도(道)입니다. 만약 천하를 안정시킨 뒤에 정의로써 베풀고 큰 나라에 이른다면 이것이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차지하지 못하면 결국 남이 차지하게 될 뿐입니다.

유비는 방통의 말에 크게 깨닫고 서천으로 향했습니다. 방통, 황충, 위연 등과 5만 명의 군사가 뒤따랐습니다. 유장은 유비를 영접하러 부성(涪城)까지 360리를 마중을 나왔습니다. 주부(主簿) 황권과 이회가 말렸으나 유장은 듣지 않았습니다. 종사(從事) 왕루도 죽을 각오로 간언했으나 유장이 듣지 않자 결국 자살을 했습니다. 충신들이 간언해도 유장은 듣지 않았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유비를 굳게 믿었습니다. 유비가 철저하게 발톱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리 분별이 어두운 유장 자신의 나약함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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