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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5) 교마어(交馬語)와 편지 한 통으로 한수와 마초를 이간한 조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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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 마초는 위수(渭水)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습니다. 승부가 나지 않자 전투는 시일이 오래 걸렸습니다. 조조는 매번 마초의 공격을 받아 영채를 세우지 못하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몽매거사(夢梅居士)라는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조조는 노인을 손님의 예로 대접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조조에게 방책을 알려주었습니다.

승상께서는 귀신같이 군사를 쓰시면서 어찌 천시(天時)는 모르십니까? 연일 짙은 구름이 잔뜩 뒤덮고 있으니 삭풍(朔風)이 불기 시작할 것이고, 곧 큰 추위가 닥칠 것입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거든 군사를 동원하여 흙을 운반하여 물을 뿌리면서 쌓아 올리면 날이 샐 무렵이면 토성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날 밤 북풍이 세차게 불자 조조는 병사를 총동원하여 토성을 쌓게 했습니다. 물을 길어올 그릇이 없자 합사비단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물을 날랐습니다. 날이 샐 무렵에는 모래흙이 꽁꽁 얼어 노인의 말처럼 토성이 완성되었습니다. 마초는 하룻밤 사이에 토성이 세워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조조를 호위하는 허저였습니다. 마초는 허저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확인했습니다.

너의 군중에 호후(虎侯)가 있다던데 어디 있느냐?

내가 바로 초군의 허저다!

호랑이처럼 힘센 허저. 출처=예슝(葉雄) 화백

호랑이처럼 힘센 허저. 출처=예슝(葉雄) 화백

마초가 허저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눈에서는 광채가 번뜩이고 몸에서는 기력이 넘쳐났습니다. 마초는 허저를 보자 말머리를 돌려 돌아갔습니다. 조조 역시 허저를 데리고 영채로 돌아왔습니다. 양쪽 군사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해괴하게 생각했습니다. 조조가 장수들에게 말했습니다.

도적들 역시 허저가 바로 호후인 줄을 알더구나!

원래 허저는 힘이 호랑이처럼 세지만 겉보기에는 멍청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멍청한 호랑이’라는 뜻의 ‘호치(虎癡)’였습니다. 마초가 허저를 존경하는 뜻으로 ‘호후(虎侯)’라고 높여 불렀고 그 별칭이 굳어져 모든 사람이 허저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허저가 마초에게 도전장을 보냈습니다. 마초도 바라던 터였습니다.

‘호후는 단기(單騎)로 마초에게 도전한다. 내일 싸워 생사를 결판내자.’

‘내일은 맹세코 호치를 죽이겠다.’

드디어 마초와 허저가 생사를 가르는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조조는 마초의 용맹한 모습을 보고 여포에 못지않다고 평했습니다. 두 장수는 2백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허저는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싸웠습니다. 마초는 영채로 돌아와 한수에게 말했습니다.

알몸으로 마초와 싸우는 허저. 출처=예슝(葉雄) 화백

알몸으로 마초와 싸우는 허저.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가 격전을 벌인 사람 중에 허저같은 자는 없었습니다. 정말로 호치였습니다.

마초와 한수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조조는 앞뒤에서 협공을 펴기로 했습니다. 서황과 주령에게 하서로 건너가 영채를 세우고 협공할 준비를 시켰습니다. 이에 마초는 조조에게 휴전을 제안했습니다. 조조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마초와 한수를 정벌해야만 했습니다. 휴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조조가 참모인 가후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전쟁에는 속임수도 마다치 않는 것이니 거짓으로 허락하신 다음 반간계(反間計)를 써서 한수와 마초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면 한 번에 쳐부술 수 있을 것입니다.

천하의 높은 견해는 서로 같은 경우가 많다더니 그대의 계책이 바로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세.

조조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말을 타고 한수를 만났습니다. 조조는 말머리가 교차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고삐를 당겨 멈추고 말했습니다.

나는 장군의 부친과 함께 효렴에 천거되었는데, 일찍이 장군의 아버지를 아저씨로 섬겼었소. 나는 또 공과 함께 벼슬길에 올랐지만 몇 년이나 되었는지 모르겠구려. 장군! 올해의 나이가 몇이오?

마흔 살입니다.

지난날 서울에 있을 때는 모두 청춘이었는데 어느덧 중년이 되었으니 언제나 천하를 깨끗이 평정하고 함께 즐기겠소?

조조는 옛날의 일들만 시시콜콜 이야기할 뿐 군정(軍情)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초가 달려와 한수에게 내용을 물었습니다.

오늘 진 앞에서 조조와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다만 옛날 서울에 있을 때의 일을 이야기했을 뿐이네.

어찌 군사에 관한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조조가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 혼자 말하겠는가?

마초는 한수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조가 돌아와 흡족해하자 가후는 보다 확실하게 2단계 작전에 돌입합니다.

마초는 용감한 사내일 뿐 비밀은 살펴볼 줄 모릅니다. 승상께서 친필로 편지 한 통을 써서 한수에게 보내십시오. 다만 중간중간 글자를 알아볼 수 없도록 쓰고 중요한 곳은 일부로 지우고 그 옆에 고쳐 쓰십시오. 그리고 일부로 마초가 알도록 하면 그는 반드시 승상이 보낸 편지를 보려고 할 것입니다. 중요한 곳마다 고쳐 쓴 것을 보면 한수가 자신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고쳤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 둘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도 의심하던 차에 더욱 의심은 커질 것이고, 결국은 분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때 다시 한수의 부하 장수들을 매수해 둘 사이를 이간시키면 손쉽게 마초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가후의 계략은 성공하여 한수는 마초를 죽이고 조조에게 귀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리 간파한 마초에 의해 도리어 한수의 왼쪽 팔이 잘렸습니다. 이때 조조의 군사가 들이닥쳐 마초는 결국 농서(隴西)로 달아났습니다. 조조는 장안성을 정비하고 하후연에게 지킬 것을 명령하고 허도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장수가 지난날 서량군이 모여들 때마다 조조가 웃은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한수의 왼쪽 팔을 자르는 마초. 출처=예슝(葉雄) 화백

한수의 왼쪽 팔을 자르는 마초. 출처=예슝(葉雄) 화백

관중(關中)은 멀리 떨어져 있는 변경지대라서 만약 수많은 도적 떼가 제각기 험한 지형을 이용해 항거한다면 1~2년 정벌로는 평정할 수 없다. 이제 모두 한곳에 모였으니 그 무리가 비록 많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마음은 모두가 제각각이니 이간시키기 쉬울 것이고, 이때 한꺼번에 쳐부술 수 있지 않겠느냐? 나는 그래서 기뻐한 것이다.

승상의 귀신같은 계략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역시 너희들 문무에 힘입은 것이다.

모종강은 조조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손권은 전술전략을 대도독에게 맡겼고, 유비는 군사에게 맡겼다. 오직 조조만이 직접 지휘권을 거머쥐고 혼자 전략을 운용했다. 비록 많은 모사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은 여러 부하 이상이었다. 유비나 손권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가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여러 장수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데, 뒤에 가면 언제나 깨닫고 탄복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당태종(唐太宗)은 조조의 무덤에 ‘한 장수의 지혜로는 남음이 있다더니 과연 그렇도다! 과연 그렇도다!’라고 썼다.

조조는 서량의 군사가 늘어날 때마다 대단히 기뻐했다. 군사가 많으면 군량을 조달할 수 없게 될 터이니 그것이 기뻐하는 첫째 이유이고, 군사가 많으면 마음도 제각각일 터이니 그것이 기뻐하는 둘째 이유다. 오소(烏巢) 싸움에서는 적은 병력으로 이겼고, 적벽(赤壁) 싸움에서는 많은 병력으로 졌다. 조조가 사람을 가늠하는 것 역시 자기의 득실을 거울삼아 가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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