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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이엔드] 도도새, 세르펜티 만났다...불가리와 협업 가방 만든 한국 작가 김선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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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불가리의 2023년은 대형 프로젝트로 가득하다. 상반기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해 니키 드 생팔과 대표적인 한국 여성화가들의 대형 기획전을 열더니, 이번엔 한국 아티스트 김선우와 함께 협업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예술에 대한 불가리의 집념과 철학은 김선우와의 협업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멸종된 새 도도새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선우 작가가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와 협업해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가방을 만들었다. 장진영 기자

멸종된 새 도도새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선우 작가가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와 협업해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가방을 만들었다. 장진영 기자

김선우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 중 한 명이다. 모리셔스 섬에서 서식하다 멸종한 도도새(dodo)를 주인공으로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35세의 젊은 작가인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다.
2021년 9월 서울옥션에 출품한 작품 ‘모리셔스 섬의 일요일 오후’가 1억1500만원이라는 거액에 낙찰됐다. 신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오마주한 그림으로, 쇠라의 그림을 단순화시키고 그림 속 사람들의 머리를 도도새 머리로 바꿔 그렸다. 이 그림은 이후 프린트 에디션도 1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PBG 소속 작가인 그는 이번 키아프 서울엔 가나아트센터를 통해 작품을 출품한다.

불가리와 함께한 ‘세르펜티 인 아트’

불가리와 김선우가 만들어낸 것은 도도새 세르펜티 포에버 백이다. 김선우의 도도새가 탑핸들이 달린 미디움 사이즈의 세르펜티 포에버 백을 캔버스 삼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협업 작품은 두 가지 타입으로 진행됐는데, 가방이 매장에 정식으로 입고되기도 전이지만 사전 예약 문의가 많다.

올해 불가리가 진행한 '세르펜티 인 아트' 프로젝트의 가방들. 왼쪽에 있는 초록색, 남색 가방이 김선우와의 협업 제품이다. [사진 불가리]

올해 불가리가 진행한 '세르펜티 인 아트' 프로젝트의 가방들. 왼쪽에 있는 초록색, 남색 가방이 김선우와의 협업 제품이다. [사진 불가리]

이번 김선우와의 협업은 불가리 코리아팀에게도 뜻깊다. 럭셔리 브랜드가 협업 제품을 내려면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글로벌 본사에서 올해 아티스트와의 협업 제품을 위해 여러 국가에서 자국 작가들을 추천했는데, 그중 중국미국한국 작가 단 3명이 선정됐다. 그중 하나가 김선우다. 세 작가의 협업 작품 중 가장 인기 높은 것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니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지난 8월 7일 아침.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산비탈에 조성된 주택가답게 작업실 통창으로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난 나뭇가지와 초록색 잎들이 작업실 통창을 가득 메웠다. 그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초록 잎사귀 가득한 모습이 그의 작업실 창 풍경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현대인의 자화상, 새

김선우는 대학 시절부터 새를 그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새의 머리를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은 왜 모두 똑같이 살아갈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며 만들어낸 새로운 종(種)이었다. 그의 새 머리 인간은 우연한 계기에 도도새라는 멸종된 새로 바뀌었다.

김선우의 도도새를 입은 불가리 세르펜티 포에버 백. [사진 불가리]

김선우의 도도새를 입은 불가리 세르펜티 포에버 백. [사진 불가리]

‘김선우의 도도새’는 어떻게 태어났나요.

“2015년부터예요. 대학 시절엔 새의 머리를 가진 사람들을 그렸어요. 개체화, 몰개성화된 현대인의 모습을 날개를 잃어버리고 갇혀 있는 모습에 비유한 거였어요. 그러다 일현미술관이 주최한 공모전에 응모하면서 도도새를 제안했죠. 날지 못하는 새 인간을 멸종된 새 도도새로 발전시켰고, 새의 서식지였던 모리셔스 섬으로 떠나 작업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이었어요. 운 좋게 당선됐고 이후 도도새는 제 작업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모리셔스 섬의 일요일 오후’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놀라운 가격에 팔렸을 땐 소감이 어땠나요.

“예술은 어렵다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랄까요. 공감되는 주제였던 거 아닐까 생각해요. 갑자기 쏟아진 관심이 두렵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재탄생한 사라진 유산들

소비재업계에서 작가와의 협업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작가의 철학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거금을 준다 해도 협업을 하지 않는 게 작가의 고집이다. 이번 김선우와 불가리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을까.

많은 브랜드에서 러브콜이 왔을 것 같아요. 그중 불가리와 함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가리가 가진 주제와 가치가 제게 와 닿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불가리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계보를 이어 고대 문화를 현대에 맞게 다시 재해석하고, 재탄생시켜 온 브랜드잖아요. 제 작업의 주인공인 도도새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맥락이 맞아 떨어져요. 과거의 유산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지점에 많이 공감했어요.”

'낮'을 표현한 협업 작품. [사진 불가리]

'낮'을 표현한 협업 작품. [사진 불가리]

'밤'을 표현한 세르펜티 포에버 백. [사진 불가리]

'밤'을 표현한 세르펜티 포에버 백. [사진 불가리]

협업엔 기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 사이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제가 주로 작업하는 낮과 밤의 풍경을 컨셉으로 두 가지 종류의 가방을 디자인했죠. 블루톤이 밤이고, 그린톤이 낮이에요.”

밤을 파란색으로 표현한 이유가 있나요.

“주관적인 해석이긴 한데, 저는 푸른빛이 밤의 색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작업에 등장하는 밤은 새벽에 가깝거든요.”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성실함으로 그린 그림

그는 이 작업실에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꼬박 12시간 동안 작업한다. 옆에서 도와주는 어시스트도, 문하생도 없다. 오로지 자기 혼자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천재가 아니라서 성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김선우는 성실함과 철저한 루틴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그림을 그려나간다. 장진영 기자

"천재가 아니라서 성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김선우는 성실함과 철저한 루틴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그림을 그려나간다. 장진영 기자

왜 새벽에 나오세요.  

“새벽이라는 시간이 참 좋아요. 특유의 분위기도 분위기이지만,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이기도 하고 조금만 인내하면 밝아지는 시간이기도 한, 그 의미 자체가 좋더라고요. 실제로 작업도 새벽에 잘 돼서 새벽에 나오고 있어요.”

모든 작가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성실하게 작업하진 않을 텐데요.

“제 경우엔 철저한 루틴이 주는 탄력회복성이 있더라고요. 잠도 밤 10시엔 자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충분히 잠을 자고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작업하려고 해요. 제가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을, 최상의 상태에서 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데, 그 역시 건강한 생활을 통해 집중도 있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해요.”

상당히 건강한 삶으로 보여요.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요. 사실 저는 스스로를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족한 재능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력밖에 없어요. 예술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자아도취형과 자기 비관형이요. 저는 후자 쪽이에요. 새벽에 작업실 문을 여는 것 자체가 혼자만의 작은 승리예요. 인체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 새벽 5시라고 하거든요. 그 한계를 깨는 것이죠. 저는 천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해야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철저하게 루틴을 지켜요. 그 과정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실제로 발전도 해요.”

여행은 나의 동력

최근 김선우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 가서 한달살이를 하고 왔다. 바닷가에 묵으며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고. 그래도 아침 6시30분 기상하기를 멈추진 않았단다. 그 흔적들은 지금 작업실에 가득 붙어 있다.

크레타 섬에서 그린 스케치들과 준비 중인 전시에 내놓을 작품들, 불가리 협업 가방을 한 데 모았다. 장진영 기자

크레타 섬에서 그린 스케치들과 준비 중인 전시에 내놓을 작품들, 불가리 협업 가방을 한 데 모았다. 장진영 기자

왜 크레타 섬이었나요.

“이카로스 신화 때문에요. 하반기 전시 주제를 이카로스로 하려고 하거든요.”

도도새 창조의 동력이 됐던 모리셔스 여행처럼, 여행이 다음 작업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아까워요. 여행에서 느꼈던 모든 것이 휘발될까 봐요. 여행을 통해 주변의 모든 환경을 환기해요. 혼자 낯선 곳에 있으면 제 날것이 꺼내놓아 지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계속 그리고 써요. 내년 초엔 에세이를 한 권 낼 계획이라 크레타에서 글도 계속 썼어요. 벌써 원고지 500매(10만자)쯤 썼더라고요.”

김선우는 올해 연말까지 이번 불가리와의 협업 외에도 많은 프로젝트를 보여줄 예정이다. 가장 직관적으로 눈에 띄는 건 지난 8월 말부터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외관을 장식한 도도새 설치작업이다. 백화점 내에는 곳곳에 도도새 작품을 건다. 또 10월엔 이번 불가리 세르펜티 협업 가방을 정식으로 국내에 출시하고, 11월엔 더현대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어요. 힘들진 않으세요. 

“좋아하는 일이라 괜찮아요. 그리고 아직은 혼자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몸이 안 좋아지면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건강 관리도 열심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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