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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하나당 3초면 OK…마약 반입 ‘매의 눈’으로 살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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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인천공항본부세관 직원들이 엑스레이 판독기를 통해 수하물에 마약 등이 있는지 판독하고 있다. [사진 인천공항본부세관]

인천공항본부세관 직원들이 엑스레이 판독기를 통해 수하물에 마약 등이 있는지 판독하고 있다. [사진 인천공항본부세관]

지난달 31일 인천국제공항 제2정부합동청사 4층. 중앙 복도를 따라가니 좌우에 수십 개 모니터로 가득 찬 방이 나왔다. 이곳은 인천공항본부세관(공항세관)의 엑스레이 판독실이다.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들어오는 여행객의 모든 화물(기탁 화물)은 여기서 판독된다. 마약이나 총기, 도검처럼 반입이 금지된 물품을 잡아내는 게 임무다. 이미라 공항세관 주무관은 조이스틱처럼 생긴 손잡이를 바쁘게 조작하면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니터 속 가방은 속이 훤히 보였다.

‘마약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대부분의 마약은 국경을 넘어온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을 지키는 공항세관에는 약 140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이날 찾은 판독실은 에어컨이 가동 중임에도 열기가 느껴졌다. 수십 대의 모니터와 각종 판독 기기들이 내뿜는 열기가 쏟아져 나온 탓이다. 제1·2여객터미널을 합쳐 130여 명의 판독 담당 직원이 일한다. 가방 하나를 판독하는 데 드는 시간은 3~7초. 빠르고 정확하게 판독하는 게 핵심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판독실은 요즘 ‘긴장 모드’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어느 항공편에서나 마약이 발견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한 선진국 발 비행기를 탄 여행객의 짐에서 메스암페타민(필로폰) 14㎏이 발견된 일도 있다. 검찰과 공동으로 ‘클럽 마약’으로 통하는 케타민 1만7200g(약 34만 명 분) 등을 밀수하고, 이를 유통한 마약 조직원 27명을 적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마약을 숨겨오는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골프백뿐 아니라 전자담배를 통해 합성 대마를 밀반입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이미라 주무관은 “새로운 형태로 약을 들여오는 시도가 계속 늘고 있다”며 “‘창과 방패’가 끊임없이 겨루는 셈”이라고 했다. 어려움도 있다. 판독실의 경우 3~4시간 연속 근무는 기본이다. 직원 대부분 목과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을 갖고 있다. 안구건조증 등으로 고생하는 이도 다수다. 이들은 ‘국경을 지키는 이의 숙명’이라고 했다.

마약탐지견이 제2여객터미널에서 여행객들의 짐을 살피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본부세관]

마약탐지견이 제2여객터미널에서 여행객들의 짐을 살피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본부세관]

엑스레이 판독을 거친 짐들은 수하물 구역에서 마약 탐지견에 의해 다시 한번 샅샅이 검사를 받는다. 현재 인천공항에는 20여 마리의 탐지견이 담당 주무관(핸들러)과 짝을 지어 근무 중이다. 탐지견 한 마리가 하루 평균 1000개 이상의 가방을 점검한다.

이날은 안희찬 주무관과 탐지견 ‘듀크’가 근무 중이었다. 탐지견들은 마약을 발견하면 해당 화물 앞에서 핸들러에게 몸짓으로 알린다. 향정신성 의약품처럼 캡슐로 포장된 약까지 잡아낸다. 안 주무관은 “최근에는 네덜란드나 태국처럼 대마초를 합법화한 나라가 늘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마약이나 도검 같은 이상 물품이 나온다고 해서 짐 주인이 그 결과에 순응하는 건 아니다. 가방이나 여권 등을 던지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기 일쑤다. 일부는 탐지견이 다가오면 카트로 밀어내기도 한다. 탐지견 외에도 공항세관은 내부 시스템을 통해 ‘우범 여행자’를 선별해 이들을 감시한다. 운 좋게 엑스레이 판독과 마약 탐지견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거동 수상자 등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걸러내기 위함이다.

마약 운반 관련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재식 공항세관 팀장은 “최근 마약 반입을 용돈 벌이처럼 쉽게 생각하고 들여오는 이들이 있어 안타깝다”며 “국경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로서 마약류의 국내반입 단속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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