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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화려한 수입차 옵션 폼은 나지만 값 비싸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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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입차 판매 가격이 미국에 비해 최고 두 배까지 비싼 데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옵션 기능을 잔뜩 집어넣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 옵션은 수입차 10대 중 9대는 기본으로 다는 정속주행장치(오토크루즈컨트롤)다. 이 장치는 직선 고속도로가 많은 미국에선 꼭 필요하지만 국내에선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정체를 빚는 시내 구간이나 구불구불한 고속도로에서 잘못 사용했다가는 사고날 위험도 있다. 그래서 국내 업체들은 고급차에도 이 장치를 달지 않는다.

선 루프도 마찬가지다. 수입차업체들은 들여오는 차종마다 최고급 옵션을 적용하다 보니 선 루프가 기본으로 달려 있다. 하지만 사계절이 뚜렷하고 햇빛이 좋은 우리나라에선 굳이 달 이유가 없다. 흡연가 등 필요한 경우만 달면 된다.

도요타코리아가 최근 내놓은 대형 세단 LS460L엔 적외선 체온 감지 센서가 달려 있다. 뒷좌석 탑승자의 신체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풍량을 조절해 준다. 하지만 탑승자의 건강 상태와는 무관하게 센서 작동에 따라 기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늘 만족스럽지는 못하다는 지적이다. 또 비행기 1등석처럼 좌석 형태를 조절하고, 마사지를 하는 기능이 있지만 길어야 두세 시간 주행하는 국내 여건에선 효용성이 떨어진다. 이런 옵션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이 차량 가격은 기존 모델보다 30% 이상 올랐다.

국내에서 2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는 벤츠의 최고급차 S클래스 S600L엔 미국 수출품에 장착하는 '나이트 뷰 어시스트'가 그대로 달려있다. 야간 주행 때 적외선을 이용해 물체 식별 능력을 향상시키는 장치다. 이 장치는 미국의 시골 고속도로에서 야생 동물이 튀어나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유용하지만 국내에선 그럴 일이 별로 없어 사족인 셈이다.

시판가 6780만원인 혼다 레전드 세단의 중앙 모니터엔 현재 위치의 위도.경도가 영어로 표기된다. 미국 수출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다 보니 모든 장치가 영어로 돼 있을 뿐 아니라 음성 안내도 영어로 나온다.

폴크스바겐의 대형 세단 페이톤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아렉 고급형엔 실내를 네 구역으로 나눠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4존 클리마트로닉' 기능이 달려 있다. 이 기능 역시 거의 쓸 일이 없다. BMW 5, 7시리즈 신형엔 운전석 유리창에 속도계가 표시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지만 장거리 운전에나 필요한 기능이어서 국내에선 효용성이 떨어진다.

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 소장은 "수입차엔 한국의 지정학적 요건이나 기후.문화에 맞지 않는 옵션을 기본으로 다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유럽의 경우 소형차는 파워 윈도우(모터로 창문을 여닫는 장치)를 거의 달지 않을 정도로 편의장치를 최소화한다"며 "옵션을 많이 단 차를 선호하는 차 문화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평론가 황순하씨도 "수입차 구매자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특이한 편의장치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며 "자동차의 주행.제동 성능이나 안전도를 높이는 기능 이외의 첨단 장치는 실제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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