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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도, 비정상도 만들어진 개념일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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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23면

나는 정상인가

나는 정상인가

나는 정상인가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와이즈베리

의학·보건학에선 ‘정상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예로 수많은 사람의 혈압을 재면 중간 수치가 가장 많고, 높거나 낮아질수록 빈도가 적어진다. 이를 그래프로 표시하면 가운데가 높고 양극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를 이룬다. 정규분포는 1801년 독일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고안해 ‘가우스 분포’로도 불린다.

이른바 ‘정상혈압’이라고 하는 ‘120-80’은 사실 수많은 사람의 혈압을 잰 뒤 통계적으로 특정범위(대개 95%) 안에 들어가는 수치일 뿐이다. 보건통계학자들은 “혈압은 개인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며, 정상혈압은 참조용”이라며 도그마를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1945년 평균적인 미국 여성의 전형으로 여겨진 조각상 ‘노르마’와 이에 가장 흡사한 사람을 찾는 대회에서 우승한 마사 스키드모어. [사진 와이즈베리]

1945년 평균적인 미국 여성의 전형으로 여겨진 조각상 ‘노르마’와 이에 가장 흡사한 사람을 찾는 대회에서 우승한 마사 스키드모어. [사진 와이즈베리]

문제는 사회 조사에서 평균이나 이에 근접하면 ‘정상’으로, 특정 범위에서 벗어나면 ‘이상’이라고 단정하는 오류다. 영국에서 의사학(醫史學) 박사 학위를 마치고 연구 활동을 하는 지은이는 이 모든 오류가 19~20세기 의사·과학자·사회학자들이 실시한 조사 연구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학자들은 질문지를 이용해 인간의 ‘정상적인’ 신체는 물론 정신과 감정, 그리고 성생활까지 조사해 통계를 내고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다. 지은이는 ‘정상성’이 19세기 벨기에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평균값에서 고안한 것으로, 생긴 지 200년밖에 되지 않은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더 큰 문제는 정상성을 찾으려는 작업이 ‘표준’에 대한 강박관념을 불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영국 남녀의 평균 신장은 각각 175.3㎝와 161.3㎝이다. 성인 남녀의 95%가 각각 162.6~185.4㎝와 149.9~172.7㎝ 범위에 들어간다. 한데 이 범위 밖에 있는 인구도 300만 명이나 된다. 사람들의 키가 이렇게 다양한데 단지 평균값을 기준으로 이들을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균값을 바탕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무모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례다.

1835년 태어나 ‘백치 아동’을 위한 보호시설에서 자랐지만 배 모형 제작에 탁월해 유명해 진 제임스 헨리 풀런과 그가 만든 모형 배. [사진 와이즈베리]

1835년 태어나 ‘백치 아동’을 위한 보호시설에서 자랐지만 배 모형 제작에 탁월해 유명해 진 제임스 헨리 풀런과 그가 만든 모형 배. [사진 와이즈베리]

지은이는 현대사회에서 평균과 정상성 개념에 대한 오해와 집착이 연령과 젠더, 계급, 인종 문제와 결합하면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박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범위 밖에 있다고 간주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형’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예로 발이나 몸이 크거나 작은 사람은 시장이나 가게에서 차별을 경험하기 일쑤다. 맞는 치수의 신발이나 옷을 찾지 못해 실망하고 우울해지는 일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내 몸을,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면서 마음이 상처받고 심리적 흉터가 생기는 원인이 된다. 비만을 조롱 대상이나 나태한 흔적으로 여기면서 다이어트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정상성’에 집착한 차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개탄이다.

지은이는 인간과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지 고려하지 않고 평균이나 범위, 표준에 맞춰 세상을 재단하는 자세는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범위 밖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박해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위계질서를 내세워 식민지 지배와 젠더 차별을 정당화했던 암흑시대나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다.

정상성이란 개념은 지난 200년 동안 정신의학과 인종, 성생활과 젠더, 아동 교육과 행동심리학 등 폭넓은 분야에서 오류·편견·차별을 유발해 다양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해왔다. 지은이는 노동자·도시빈민·농촌지역사회·이주노동자 등 숱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상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규범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서로 다른 집단 간의 공존과 소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원제 Am I Normal?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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