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알 없는' 마약 치료전사들…국내 대표 마약병원 문 닫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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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의 참사랑병원 전경. 병원은 올해 안으로 폐업할 에정이다. 참사랑병원

인천 서구의 참사랑병원 전경. 병원은 올해 안으로 폐업할 에정이다. 참사랑병원

수도권 최대(지정병상 수 기준)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인 인천 참사랑병원이 경영난 끝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천명한 가운데, 치료·재활 인프라에 구멍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영훈 참사랑병원장은 31일 중앙일보에 “올해 말까지 병원 문을 닫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천 원장은 10월 말쯤 기자회견을 열고 폐업 관련 소회를 밝히겠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마약류 중독 치료·재활 전문가인 천 원장은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초청을 받아 법무부 직원들에게 강의를 한 적도 있다.

 참사랑병원은 수도권에선 유일하게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으로써 제 기능을 하는 병원으로 평가돼 왔다. 대검찰청이 7월 발간한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참사랑병원은 지난해 전국의 치료보호기관 21곳 가운데 가장 많은 치료보호 실적(276명)을 기록했다. 경남 창녕에 있는 국립부곡병원(134명)이 그 뒤를 따랐다. 이밖에 대구의료원(4명), 서울 국립정신건강센터(2명), 경기 계요병원(2명), 대전 참다남병원(1명), 부산광역시의료원(1명), 전북 원광대학교병원(1명) 등은 실적이 미미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마약류 중독 환자 치료는 어렵지만 보상을 제고할 길이 없다는 점이 참사랑병원 폐업의 구조적 배경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선 ‘조현병 환자 10명 몫을 알코올 환자가 하고, 알코올 환자 10명 몫을 성격장애 환자가 하고, 성격장애 환자 10명 몫을 마약류 중독 환자 1명이 한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참사랑병원의 한 직원은 “치료비를 받긴커녕 돈을 들여가며 생고생을 해온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경제적 어려움도 참사랑병원이 결국 폐업으로 기울게 된 배경이다. 대통령령인 ‘마약중독자 치료보호규정’에 따르면 마약류 치료보호기관은 검사나 중독자 본인·가족의 치료보호 의뢰·신청을 받을 경우 심의를 거쳐 원칙적으로 최대 1년까지 무상 치료(입원치료·외래진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정부와 지자체의 치료보호기관 지원 예산은 지난해와 같은 8억2000만원으로, 환자 165명 정도가 한달 입원치료를 받는 데 드는 비용 정도다. 참사랑병원은 같은 해 정부 치료보호사업 대상 환자만 276명을 치료(종결 기준)했다. 치료가 종결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지난해 치료환자는 412명이다.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마약류 중독 외 증상의 환자들이 썰물 빠지듯 병원을 떠나며 상황은 더 악화했다. 참사랑병원 관계자는 “올해 들어 마약류 중독 환자가 많이 늘어나면서 알코올 중독, 조현병 환자 등 50명 정도가 빠져나갔다. 지난 두 달여 사이 간호팀 직원이 20명가량 그만뒀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도 병원에는 악재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등을 내리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자 건물 임대인(학교법인 연세대학교) 측은 참사랑병원에 “2023년 말까지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석면 제거 공사를 하지 않으면 임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석면 제거와 스프링클러 설치에는 수십억원이 소요된다. 천 원장은 “파격적인 지원이 없으면 더는 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른 민간 의료기관들이 제대로 된 지원 속에 마약류 중독 치료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이 지난해 6월 인천 가정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이 지난해 6월 인천 가정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참사랑병원 폐업 방침 소식에 전문가들은 치료 인프라 소멸을 우려하고 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앙중독재활센터장은 “참사랑병원은 수도권 마약중독 환자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며 “문을 닫는다면 치료·재활 시스템에 큰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부곡병원에서 약물중독소장을 지낸 장옥진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참사랑병원이 전체 마약류 치료보호기관 실적의 70% 가량을 차지했던 만큼, 국가의 치료·재활 인프라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다른 병원도 전문의·예산 부족으로 마약류 환자를 더 받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마약류 중독 환자를 받는 병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한 해 100건 안팎씩 마약 입원치료를 진행해오던 서울의 강남을지병원도 2021년 이후로는 마약 중독 환자 입원치료를 중단했다. 2015년 서울시는 이 병원을 마약치료전담병원으로 지정했지만, 2018년을 끝으로 병원 측은 운영난 등을 이유로 전담병원 지정 해제를 요청했다. 울산 마더스병원, 광주시립정신병원, 경기도의료원의정부병원, 국립춘천병원, 포항의료원, 양산병원, 국립나주병원, 제주 연강병원 등은 여전히 전담병원이지만 최근 3년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치료보호 실적은 전무한 상태다.

마약 사범 수는 증가일로다. 대검에 따르면 지난해 단속된 마약류 사범(투약·공급 등) 수는 1만 8395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가 계산한 국내 마약류 범죄의 평균 암수율(미검거인원을 포함해 총 사범 수를 계산하는 배수)인 28.57배를 곱하면 52만 5545명이 된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마약과 전쟁에 나선 정부가 수사 등 단속에 힘을 잘 싣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예방교육과 치료·재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라며 “획기적인 관련 시설과 인력 확충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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