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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2병요? 1병만 드세요"…암 환자에도 금주 안 권하는 명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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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립샘암 전문의 이형래 교수

닥터 후(Dr. Who)

술 권하는 의사? 설마요, 싶겠지만 명의입니다. 술을 즐기던 환자에겐 금주로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절주를 권합니다. 전립샘암 명의 이형래 교수를 소개합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배뇨장애를 방치하다 전립샘암이 뼈까지 전이될 수 있습니다. 중년 남성이 꼭 챙겨야 할 검사도 소개합니다.

 이형래 교수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는 보타이다. “넥타이를 하면 끝이 환자에게 닿아 감염 원인이 될 수 있다” 며 “환자를 볼 땐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입는 게 신뢰를 준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이형래 교수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는 보타이다. “넥타이를 하면 끝이 환자에게 닿아 감염 원인이 될 수 있다” 며 “환자를 볼 땐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입는 게 신뢰를 준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일해도 될까요.”(환자)

“적극적으로 하세요. 하던 일상을 깨지 마세요.”(의사)

“술은 어떻게 할까요.”(환자)

“얼마나 드세요.”(의사)

“일주일에 세 번, 소주 두 병씩 먹습니다.”(환자)

“그럼 일주일에 세 번, 한 병만 드세요.”(의사)

전립샘암 환자에게 주치의가 금주 아닌 절주를 얘기하자 환자 부인이 펄쩍 뛴다. 의사는 덧붙인다. “술이 몸에 좋지 않지만 술보다 더 나쁜 게 스트레스입니다. 이분이 술을 좋아하면 그걸 절반으로 줄여서라도 스트레스 덜 받게 하는 게 면역력을 올려 암 예방에도 좋습니다.”

이형래(61) 강동경희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가 실제 환자와 주고받은 대화다. 이 교수는 “의사마다 술에 대한 견해는 다르고, 알코올은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1급 발암물질”이라면서도 “환자가 담배도, 술도, 일도 못 하면 도망갈 구멍이 없다. 이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면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식단에 대해서도 “너무 기름지지 않게만, 과하지 않다면 먹던 대로 편하게 드시라”고 말한다.

명의의 기준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했다. 이 교수가 보는 명의는 “환자와의 좋은 라포(신뢰관계)를 형성해 환자가 나를 신뢰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을 연장하는 사람”이다.

전립샘암은 전립샘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이다. 심하면 다른 암처럼 뼈나 폐 등으로 전이될 수 있다. 미국·유럽에선 가장 흔한 남성암 중 하나다. 국내에서 전립샘암은 1989년만 해도 전체 남성암 중 1.2%를 차지했다. 그런데 2005년 4.5%, 2011년 8.1%, 2019년 12.5%(10만 명당 65.6명)까지 가파르게 증가했다. 2020년 국가암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남성암 중 폐암, 위암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폐암, 위암은 감소하는 반면, 전립샘암은 계속 치고 올라가 조만간 남성암 중 1등이 될 것”이란 게 이 교수의 얘기다.

가파르게 느는 이유는.
“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며 암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고령 인구가 늘고 건강검진 인구가 많아지면서 초기 전립샘암을 발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전립샘암 중 10%는 유전적 영향이라고 한다. 아버지, 형제 중 전립샘암이 있다면 위험도는 2.5~3배로, 일란성 쌍둥이라면 4배가량 높아진다. 직계가족에게서 전립샘암 발병 연령이 70대라면 상대 위험도가 4배지만 60대라면 5배, 50대라면 7배까지 오른다.

60~70대 고령에서 환자가 많은 이유는.
“전립샘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남성호르몬과 노화다. 남성호르몬은 전립샘암을 만들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암을 억제하는 여러 유전자가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유전자 기능이 떨어진다.”

전립샘암은 3, 4기가 아니라면 대체로 아무 증상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건강검진에서 PSA(전립선 특이항원) 수치가 높게 나와서 온다. 골반, 허리가 아파 척추센터를 찾았다가 전립샘암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통상 50세 이상 환자가 비뇨기적 문제가 있어 병원을 찾으면 PSA, 전립샘 초음파를 동시에 하지만 국가암검진에는 PSA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교수는 “PSA는 전립샘암 진단에 매우 중요하고 정확한 종양표지자”라며 “50대 이후부터는 주기적으로 PSA 검사를 하고, 가족력이 있다면 40대부터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전립샘암은 조기 발견 때 완치율이 90~95%가 넘는다. 그러나 전이가 시작됐다면 완치율이 30%대로 급격하게 떨어진다.

전립샘암, 방광암을 동시에 앓는 환자가 왕왕 있다. 두 개 암을 진단받고 모든 걸 포기하겠다던 65세 환자는 “사는 동안 사람답게 살려면 치료받아야 한다”는 이 교수 말에 두 가지 수술을 받고 6년째 잘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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