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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홍범도 논란 이렇게 풀라…이종찬이 수긍한 '尹의 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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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진영간 역사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최근 논란의 한복판에 선 인물은 정율성(1914~1976년, 본명 정부은)이다. 광주시는 48억원을 들여 광주 태생의 ‘정율성 역사공원’(878㎡)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일제시대 김원봉 의열단에 참여했으나,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으며 해방 이후엔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군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정율성은 한국 전쟁 후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국적으로 생을 마쳤다.

이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22일 “‘중국 영웅’ 또는 ‘북한 영웅’인 정율성을 위한 기념 공원이라니,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정율성. 사진 광주광역시 홈페이지

정율성. 사진 광주광역시 홈페이지

그러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정율성 선생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꼽은 인물이다.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맞섰다. 이후 여야는 “왜 침략의 부역자를 기리나”(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공산주의자 낙인은 매카시즘적 행태”(이병훈 민주당 의원)라며 충돌하고 있다.

또다른 논란은 육사의 흉상 이전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 이외 장소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교 육성이라는 육사 정체성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등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그러자 재임 시절 5인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27일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국권을 잃고 풍찬노숙했던 항일무장독립운동 영웅의 흉상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야겠느냐”며 “여론을 듣고 재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숙고해달라”고 썼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도 이날 이종섭 장관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흉상 이전 추진을 “반역사적 결정”이라고 규정한 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며 이 장관 사퇴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하려는 것은 너무 오버”(홍준표 대구시장), “윤석열 정권의 이념 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유승민 전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홍범도(1868~1943년) 장군은 봉오동 전투(1920년)를 이끈 후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광복 전 소련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1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흉상 제막식에서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김완태 육군사관학교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 사관생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흉상은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사진 육군사관학교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1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흉상 제막식에서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김완태 육군사관학교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 사관생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흉상은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사진 육군사관학교

이처럼 진영 간 역사 전쟁의 핵심은 역사의 어느 시기를 더 높이 평가하느냐는 인식차에서 기인한다. 보수 진영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어도 광복후 북한 김일성 정권에 부역했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율성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박민식 장관)는 것이다.

반면 진보 진영은 이념과 관계없이 항일 독립운동에 어느정도 기여했는가를 중심에 둔다. 민주당이 육사의 흉상 이전에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를 지우고, 우리 군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역사적·반헌법적 처사”(권칠승 수석대변인)라고 반발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70여 년 전 행적을 두고 나라를 반쪽으로 쪼개는 역사 전쟁에 대해선 "현시점의 단편적 시각으로 과거를 단칼에 재단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진한 고려대 한국사학 교수는 “역사가 진영의 입맛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게 반복되면 사회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모전을 끝내려면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건국을 두고 1919년(임시정부)이냐 1948년(대한민국)이냐 다투기보다 일본강점기부터 정부수립까지의 시간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이분법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기념관 사업에 “1948년이 건국이라는 취지로 기념관을 만든다면 반대한다”던 이종찬 광복회장은 윤 대통령의 경축사 후 “적극 돕겠다”고 선회했다.

반복된 역사전쟁…‘백년전쟁’ 다큐는 “이승만 갱스터”로 묘사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은 특히 교과서를 두고 정치권에서 반복돼왔다.

갈등이 본격화한 건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국사’를 배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과 달리 고등학교 2·3학년은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편성했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 과목에서 교과서 검정 체제가 도입되면서 일부 교과서의 이념 편향성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에 대해 “북한을 미화하는 등 좌편향됐다”고 했고, 여당이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철 지난 색깔론”이라고 맞섰다.

이명박 정부에선 공수가 교대됐다. 이명박 정부는 금성출판사에 내용 수정을 지시하면서 ‘남한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내용을 담도록 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규정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추진회’를 설립하자 당시 진보 진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주장하며 강하게 맞섰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민족문제 연구소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뉴스1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민족문제 연구소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뉴스1

2012년 대선 직전이던 11월엔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공개하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해당 영상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았고, ‘두 얼굴의 이승만’ 편에선 이 전 대통령을 ‘하와이 갱스터(폭력배)’로 지칭하며 도덕적 파렴치범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취임 직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역사학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에게 영상의 심각성을 전해 들은 뒤 “잘 살펴보겠다” 답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방송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선 역사 교과서 갈등이 더욱 커졌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보수 성향 학자가 참여했다며 일부 학교가 교과서 채택을 철회하는 등 좌파 진영의 공세가 강화됐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0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균형 잡힌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며 역사 교과서 제도 개선을 지시했지만, 획일화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지면서 동력을 잃고 말았다. 이후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두 번째 업무지시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결정했고, 관련자 처벌로 이어졌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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