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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한·미·일 3국 협력 제도화 가능하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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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31면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동북아시아의 전략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지도자들이 3자 정상회담을 갖고 전방위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해 심각했던 북한의 미사일 위협,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 심화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세 가지 사건에 기인한다.

이 같은 국제정치 상황변화는 바이든 행정부로 하여금 고민거리였던 한·미·일 3각 협력의 약한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각국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영향받지 않고 협력이 지속되도록 제도화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두 동맹, 한국과 일본이 서로 갈등하는 것을 전략상의 이점으로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점이 사라지는 상황이 왔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강한 톤으로 반발했다.

국내외 변수 많아 예측 어렵지만
3국협력사무소 한국에 유치하고
경제·기술 협력 가시적 성과 필요
내년 11월 미 대선 결과 지켜봐야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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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이 같은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3월,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해 찬성이 30% 반대가 60%였다고 한다. 그러한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고 이것이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한·미·일 3자 협력 제도화의 계기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3자 협력의 제도화 시도가 과연 앞으로 성공할 것인가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성공 여부를 결정할 두 가지 변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국제정치 변수다. 무엇보다 중국, 북한,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 것이고 거기에 한·미·일 3국이 얼마나 잘 협력하면서 대처할 것인가가 문제다. 중국 당국은 현재 한·중 관계에 대해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혹시라도 중국이 과거 사드배치 당시처럼 한국에 대해 경제적 보복으로 나왔을 때 미국이나 일본이 나 몰라라 하고 방관한다면, 많은 우리 국민들은 한·미·일 3자 협력이 실체 없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이나 반도체법안의 시행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에 불리한 차별 조치를 취했던 것과 비슷한 행태가 또 반복된다면, 그것도 우리 국민들의 3자 협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강화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 요로에 확실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일본의 기시다 정부도 한국의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에 상응하는 협력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호적인 양국 간 정치적 분위기를 볼 때 그럴 일은 없겠으나, 혹시라도 일본 측 일부 정치지도자의 입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잘못된 발언이 나온다면 그것도 한·미·일 3자 협력의 제도화를 가로막는 큰 장애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다.

둘째, 한·미·일 3국 각국의 국내 정치가 어떻게 변화하느냐도 3자 협력 제도화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국내 정치가 가장 큰 변수일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낮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과 3자 협력 강화라는 정책적 선택에 대한 반대도 그만큼 높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을 윤 정부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3국 협력 목표를 이루려면 국민들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들어진 포괄적인 합의의 효과를 최대한 빨리 가시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전문가들이 제안한 대로 한·미·일 3국협력 상설사무소를 한국에 만들어 3국 협력 실천의 구심점 역할을 한국이 담당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3국 간 합의 사항들 중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 효과를 우리 국민들이 체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경제 및 기술협력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거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핵심 공급망 교란에 대한 정보의 신속한 공유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에 대한 공동대처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한·미·일 국립연구소들 간의 인공지능을 포함한 핵심 신흥 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대대적으로 펼쳐 나가고, 신흥 기술 개발과 기술 표준 협력을 내실 있게 진행해 간다면 한국의 미래 국력 신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도 윤 정부의 외교정책이 미래 지향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합의사항 중 하나인 3국 여성 권한 신장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국 여성의 권한이 실제로 신장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확대된다면 3국 협력의 효과를 한국 여성들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초 부산에서 개최되는 1차 한·미·일 청년서밋과 같은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확대 발전한다면 우리 청년들도 3국 협력의 효과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사실 3국 협력의 제도화가 가장 최초로 심각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게 될 사건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다. 한국의 경우 내년 봄 총선이 있지만, 외교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정책의 지속성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한·미·일 3자협력 문제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바이든 팀이 추구해 온 모든 외교 전략이 블랙홀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절체절명의 판도라의 상자, 아니 신(神)의 영역에 해당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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