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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고진 암살' 무게 둔 美..."미사일 아닌 기내폭탄 터져 사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 민간 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전용기 추락 사망 사건이 사고가 아닌 암살 가능성이 높다는 미국 당국의 초기 평가가 나왔다. 다만 당초 일부에서 주장한 것과 달리 그의 전용기가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된 게 아니라 기내에 설치된 폭탄 폭발에 의해 추락한 것으로 분석했다.

24일(현지시간) 패트릭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프리고진이 탑승했던 비행기 추락을 언급하며 "지대공 미사일이 항공기를 격추했다는 믿을 만한 정보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비행기가 어떻게, 왜 추락했는지 더는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블룸버그통신 등은 미국과 영국 정보·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 기내에 설치된 폭탄 폭발로 인한 암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 매체는 익명을 요청한 수사관들의 말을 인용해 "항공기 뒤쪽 화장실 근처에서 미리 설치된 1~2개의 폭탄이 터졌을 것"이라 추정했다.

지대공 미사일 아닌 기내 폭발 원인으로 꼽는 이유는 

NYT는 비행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 레이더 24'와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기내 폭발 원인을 분석했다. 비행 데이터와 영상을 분석한 결과 프리고진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기 몇 분 전에 적어도 한 차례 '치명적인 (공중) 사건'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프리고진의 전용기는 23일 오후 6시 19분께 고도가 갑자기 떨어졌다. 추락 현장과 잔해가 널브러져 있는 영상을 분석한 결과 항공기가 한 동안 공중에 머물다 약 48km 떨어진 하늘에서 자유 낙하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낙하와 잔해를 봤을 때 기계적 결함보다는 폭발이나 그로 인한 항공기의 갑작스러운 파손이 사고 원인이 됐을 거라고 지적한다. 이안 윌리엄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 담당 부국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항공기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어떤 구조적 손상을 입지 않았다면, 이렇게 잔해가 널브러져 있는 범위가 넓기는 매우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원인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항공기의 결함과 기계 오작동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쿠젠키노 마을 인근에 전날 추락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탄 전용기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AF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쿠젠키노 마을 인근에 전날 추락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탄 전용기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AFP=연합뉴스

비행기 격추 명령 배후는 쇼이구 러 국방부 장관 추측도 무성

기내 폭발로 인한 항공기 추락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가운데, 프리고진을 사망에 이르게 한 배후에 대해서도 각종 추측이 무성하다. 일각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직접적인 명령이 있기 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스스로 움직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러시아 내 대표적 반(反)푸틴 인사인 일리야 포노마레프 전 러시아 의원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새 공군 사령관을 임명한 직후 프리고진이 탄 항공기가 추락했다"고 지적하며 "푸틴이 보복하도록 직접 명령하지는 않았지만, 쇼이구가 (알아서) 보복에 나선 것"이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프리고진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군이 아닌 연방보안국(FSB)를 활용했고, 러시아 영내에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푸틴은 프리고진에게 신변 보장을 약속했고, 그를 활용할 생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러 “크렘린궁 배후설은 거짓말” 반박

이 같은 ‘크렘린궁 배후설’에 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25일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날 자국 취재진의 질의를 받고 “물론 이번 재앙과 프리고진의 비극적 죽음을 둘러싼 많은 추측이 있다”면서 “특히 서방에서 이 모든 추측들이 특정 시각에서 취급되고 있지만 모든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사건을 다룰 때는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면서 “관련 수사에 따라 밝혀지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최근 프리고진을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프리고진의 장례식장에 대통령이 참여할 수도 있느냐’는 질의에는 “대통령은 보통 매우 바쁘다”며 일축했다.

프리고진 전용기 추락 사건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자체 판단이든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것이든, 결과적으로 프리고진의 사망으로 최종 승자가 되는 건 푸틴 대통령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베스 새너 전 미 국가정보국(DNI) 부국장은 블룸버그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프리고진에 대한 암살 명령을 내렸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면서 "모두는 푸틴이 그렇게 했다고 믿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으로 러시아군 내부의 불복종 위험이 사라졌다는 게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학자로 활동 중인 에릭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러시아 중앙아시아 담당 선임 국장도 "프리고진의 반란은 푸틴을 약하게 보이게 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직의 '대부'(godfather)로서 푸틴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용기 추락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영정 사진 주변에 조화가 놓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용기 추락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영정 사진 주변에 조화가 놓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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