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중국에 스며드는 재패니피케이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

김동호 경제에디터

아무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 얘기다. 중국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은 벌써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전부터 나왔다. 고도성장의 후유증으로 발생한 거품 때문에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중국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올림픽을 치르면서 수직 상승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와 경제전문가들은 망연자실했다. 중국은 결코 일본을 쫓아오지 못한다던 호언장담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다음엔 중국의 미국 경제 추월론이 급부상했다. 2030년엔 중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에 올라선다는 전망이 꼬리를 물었다.

디플레이션 차단 쉬워 보이지 않아
미국의 견제 계속되고 투자자 이탈
한국, 새 공급망에 빠르게 적응해야

최근 중국은 또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소비와 수출이 모두 내려앉고 있어서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돌발 상황이다. 중국에 몰려가던 외국인 투자자 열기도 급랭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외국인 직접투자는 통계 작성 이래 2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중국에서 발을 뺀 외국인은 인도·베트남 등으로 투자처를 바꾸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중국 경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 힌트는 재패니피케이션(일본식 장기침체)에서 엿보인다. 일본은 1990년을 정점으로 ‘잃어버린 30년’의 덫에 빠져들었다. 최근에야 가까스로 바닥을 치고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본격적 회복세인지는 불확실하다.

중국 경제가 재패니피케이션에 시달릴 몇 가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미국의 전방위적 견제다. 일본은 80년대 미국을 곧 따라잡을 것처럼 경제가 급성장했다. 『미국에 노(NO)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 나와 일본 열도가 들떠 있었다. 이때 미국은 플라자합의와 반도체협정을 통해 일본의 금융과 산업 성장을 견제했다. 그 반사이익으로 한국은 반도체 산업을 키웠다.

2018년 이후 미국은 여야가 초당적으로 중국의 추격을 억제하고 있다. 공화당 진영의 트럼프 대통령이 포문을 열어 관세장벽을 쌓았고, 민주당 진영의 바이든 대통령이 바통을 이어받아 반도체과학법·인플레이션감축법으로 중국의 반도체 기술 확보를 차단하고 나섰다. 이 틈에 일본은 천재일우의 어부지리를 챙기고 있다. 미국의 지원 아래 반도체 생산 체제를 되살리게 되면서다.

내부적으로는 거품 경제가 재패니피케이션을 가속할 수 있다. 중국의 내수 상황을 들여다보면 30년 전 일본과 너무 닮았다. 우선 부동산부터 휘청대고 있다. 헝다를 간신히 틀어막았더니 비구이위안이 휘청거리고 있다. 일본 경제는 부동산 시장의 하락과 함께 깊은 디플레이션의 심연에 빨려들어 갔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기업의 자산 가치와 함께 개인 재산도 줄어들게 된다.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또 기업이 고용을 줄이는 악순환의 블랙홀로 빠져든다.

중국의 청년실업률은 21.3%에 달한다. 경기부양책을 써도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청년실업률은 결정적으로 재패니피케이션의 만성적 증상이 될 수 있다. 일본은 한창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 때 프리타가 400만 명에 이르렀다. 취업할 일자리가 없어 정처 없이 알바 자리를 전전하는 청년 집단을 프리타라고 했다. 청년실업률 해소는 중국이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과제다.

수출에서 한국의 중국 의존도는 최근 19%대로 낮아졌다. 중국과의 무역수지도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에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제 더는 중국 성장에 편승해 한국 경제가 성장을 누리던 시대가 아니다. 그만큼 한국은 시장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그 최대 무기는 제품과 서비스의 초격차일 수밖에 없다. 마침 한·미·일 정상이 차세대 기술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고, 중국에는 재패니피케이션이 스며들고 있다. 이 거대한 공급망 지각변동의 후폭풍에 단단히 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