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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희 칼럼] '불쾌한' 오르가슴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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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를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 지금은 비뇨기과 의사들은 다양한 검사를 시행하고 효과적인 약제들을 처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분명 금세기 초 시작된 성의학 연구의 공로다.

1903년 러시아의 생리학자 베히테레프는 암수 두 마리 개를 교미시키면서 성적 흥분의 고저에 따라 변화하는 혈압을 측정하고, 뇌에 분포한 혈관계의 충혈과 그 수축 및 확장을 관찰했다. 이 실험에서 그는 섹스로 인해 발생하는 순간적 고혈압이 성행위 종료와 더불어 원상으로 돌아가 다시 낮아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그 후 이 같은 실험이 인간을 대상으로 미국에서 딕킨슨 박사에 의해 실시됐다. 그는 지금까지 몰랐던 섹스에서의 인간의 생리, 즉 성행위 때 혈액순환이 급격히 빨라지고, 동맥은 강하게 박동하고, 모세혈관까지도 급속히 확장함으로써 눈의 결막이 붉게 충혈되며, 발기조직의 탄력적 팽창이 일어나는 등 오늘날 비아그라 등을 복용했을 때 보게 되는 신체적 변화가 출현함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분이 유쾌할 때는 호흡은 얕고 빨라지며, 그와 반대로 불쾌한 경우 숨소리가 깊고 느리게 되는 일반 생리와는 달리 섹스에서는 얕아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는 등 불규칙한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경부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들의 경련성 수축으로 간혹 호흡이 중단되는 긴급한 사태도 잠시 생길 수 있으며, 더 심한 경우는 의식이 찰나적으로 꺼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두고 일찍이 히포크라테스는 오르가슴을 '작은 죽음'이라고 불렀고, 그 후 일단의 생리학자들은 오르가슴이 간질 발작과 매우 유사한 반응인 것을 발견하고, 뇌에서 벌어진 혼돈이 그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성 심리학자 하벨록 엘리스는 성행위 때의 쾌감은 긴장 해소의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성 생리를 좀 더 확실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지금까지 심리학적 입장에서 오르가슴의 표정을 연구.발표한 논문은 별로 없고, 아직 무엇 하나 분명하게 가려진 것이 없다. 그런 학문적 답보 상태는 오르가슴이 유쾌.불쾌.고민.황홀.공포.환희.비애 중에서 어느 하나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르가슴의 표정은 보통 유쾌하다는 표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며, 오히려 불쾌해서 못 견디겠다는 모습에 더 가깝다.

그래서 하벨록 엘리스는 오르가슴에 대해 '사나운 표정으로 변화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확실히 맹렬.잔인.지독함.흉포함 등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몸을 부들부들 떨고 호흡이 빨라지고 눈썹을 찌푸리는 쾌락의 표정이 과연 성립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확실히 쾌락과는 상반된 고통의 모습이다.

동물의 흥분 생리에 관해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표정론'에서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은 감각중추가 흥분하면 신체의 근육이 격렬하게 수축하고, 평소 내지 않던 발성, 즉 토끼처럼 소리없는 동물도 특별한 의미가 없는 소리를 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고통이나 공포 또는 성교시에 나오는 소리를 열거했다. 오르가슴 때 나오는 소리는 확실히 경련에 의해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발성으로 언어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다른 동물의 것과는 좀 달라서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발전해 온 것이기 때문에 오르가슴에 달했을 때 내는 소리가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또 성적으로 흥분하면 전신의 분비선이 활발하게 활동해 침.눈물.위액.땀.점액이 크게 늘어난다. 그런데 공포.고통.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동안에는 눈물.땀.오줌 이외의 모든 분비물이 대개 감소한다. 오르가슴에 가까워지는데 따라 오히려 입안이 마르게 되는 반면 땀은 늘어난다. 특히 턱.겨드랑이.무릎 뒤쪽 같은 곳이 땀으로 젖는 것을 본다.

이런 발한은 운동 후 체온의 상승으로 나오는 땀과는 성질이 다르다. 이를 성적 흥분의 결과 성 중추가 과열되고 체온조절 중추를 자극하는 공명 효과를 초래함으로써 나타나는 발한이라고 생리학에서는 설명되고 있다. 오르가슴과 점액성 분비물의 배출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것도 없다는 뜻에서 선인들은 '흠뻑 젖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orgo'에서 'orgasm'이란 말을 지어냈다. 오르가슴에 여성이 도달하면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이 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면 운우라는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곽대희피부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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