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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4인방vs진보 2인조…이런 헌재, 2명 빼고 재판관 다 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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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3면

대법원에 이어 헌법재판소 인적 구성도 줄줄이 변화를 앞두고 있다. 당장 유남석 헌재 소장의 임기가 오는 11월 10일 끝난다.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유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앞으로 2년 안에 재판관 9명 중 7명이 교체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김형두‧정정미 빼고 2년 내 다 바뀐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3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올해 3월 헌재에 입성한 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이들은 중도 성향으로 알려져있다. 남은 대법원장 몫은 이은애(중도) 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 새 대법원장이 지명하게 된다. 이균용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된다면 그가 지명하는 재판관은 보수 또는 중도보수 성향일 가능성이 크다.

또 국회 몫 3명 중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김기영 재판관이 내년 10월 물러난다. 법원 내 진보 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지낸 김 재판관은 2015년 판사 재직시 대법원 판례를 거스르고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도 내후년 4월에 임기가 끝난다.

문형배 재판관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이미선 재판관도 교원의 정치단체 가입 금지 위헌, 형법상 국기모독죄 위헌 등 진보 성향의 결정을 내려왔다. 이밖에 올해 4월 물러난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멤버로 회장을 지냈다.

이렇게 되면 2025년 4월 시점엔 윤석열 대통령 임명, 국민의힘 추천, 보수 성향 새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들로 헌재가 채워지게 된다. 진보 재판관은 여야 합의 또는 야당 추천 1~2명 정도가 남는다.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에 출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뉴스1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에 출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뉴스1

헌법재판관 지명권이 있는 새 대법원장 취임을 앞두고, 유남석 헌재소장 시기 헌재의 주요 결정 111건을 살펴봤다.

2018년 9월 21일 유남석 소장 취임 이후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한 결정은 2139건이다. 이 가운데 헌재가 주요사건으로 분류한 93건과 올해 3월 이후 있었던 주요 결정 18건을 분석했다.

보수 ‘이씨 4인방’, 진보 ‘이석태-김기영조’ 눈길

모든 사건에서 각 재판관의 성향을 짐작해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반대 또는 별개의견을 남긴 결정문에서 재판관들의 성향이 드러났다. 가장 뚜렷하게 진보-보수로 갈렸던 사건은 올해 3월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과 2020년 국회 필리버스터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이었다. 두 사건 모두 ‘기각’ 결정이 나왔지만,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 등 ‘4인방’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선애 재판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이은애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 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현재 여당에서 각각 지명했다.

4인방은 2012년 청구돼 10년 만에 결론이 난 쌍용차 파업 업무방해죄 위헌소원 사건에서도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고 해서 단체행동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4인방은 ▶로톡 규제 변협 규정은 합헌 ▶교원 정치단체 가입 불허 ▶성년후견을 받아야 할 형편이 된 공무원의 당연퇴직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합헌 등에서도 2~3인 조합으로 의견을 함께 했다. 특히 사유재산권 보호에 있어 한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냈다. 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2019년 12·16 부동산 대책은 재산권 및 계약의 자유 침해,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는 재산권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헌재는 이들 사건을 기각 또는 합헌 결정했지만 4인방은 꿋꿋이 반대의견을 낸 것이다.

반면 ‘진보 짝꿍’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과거사‧노동‧국가권력과 관련된 사건에서 반대의견이 두드러졌다.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한 공직선거법 사건은 지난 3월 헌재에서 각하됐지만, 두 재판관은 ‘과잉금지, 선거권 침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긴급조치 발령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2015년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재판소원 금지 원칙의 예외로, 다시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4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제한, 노동위원회 구제절차 등에서 예외로 보는 조항들에 대한 사건에서도 “과도한 부담 전가가 아니고, 4인 이하 사업장에도 적정한 법적 규율이 필요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새로운 헌재, 보수화 당연? 우려 목소리도

대법원장 교체를 앞두고 법조계에선 헌재의 보수화도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정권마다 헌재 재판관 구성이 싹 바뀌는 건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분명 긍정적이지 않다”며 “헌재 결정의 권위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헌재 사건을 다수 맡았던 한 변호사는 “모든 헌재 결정이 정치적인 것은 아니니 보수화를 우려할 것은 아니지만, 사회를 보는 시각이 고루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고위 법관은 “대통령·대법원장 추천보다는 국회 지명 3석이 그나마 보수 성향이 덜한 재판관이 들어갈만한 가변적인 자리”라며 “진보 성향의 재판관을 얼마나 포함시킬 수 있을지는 정당의 협상력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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