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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89) 이별하던 날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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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이별하던 날에
홍서봉(1572∼1645)

이별하던 날에 피눈물이 난지 만지
압록강 나린 물이 푸른 빛이 전혀 없네
배 위에 허여 센 사공이 처음 본다 하더라
-병와가곡집

전쟁은 없어야 한다

병자호란 패전 후 사후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금의 수도 심양으로 가던 우의정 홍서봉(洪瑞鳳)이 당시의 다급하고 처참했던 상황을 그린 드문 작품이다. 임금께 허둥지둥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나던 날, 피눈물이 났는지 어땠는지 경황이 없다. 압록강 굽이쳐 흐르는 물도 푸르지 않다. 머리가 허옇게 센 뱃사공이 평생 이런 변고는 처음 본다고 하네.

전쟁은 인류 최악의 살인 행위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만일 겪어야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인조가 홍타이지 아래 무릎 꿇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는 항복 의식 뒤, 왕세자를 비롯한 수십만 명이 포로로 끌려 갔다. 몸을 더럽힌 채 살아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도 그때 생긴 말이다. 그러니 압록강 늙은 뱃사공도 자기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불과 70년 전에 전쟁의 참극을 겪은 바 있다. 오늘날에는 우크라이나에서 그 실상을 본다. 핵 무장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