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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차에 타" 그 뒤 돌변…'가출 청소년 사냥' 들끓은 이곳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돌아다니기엔 추운 날씨 아냐? 차에 타.”
2020년 9월 28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 외제 차를 몰던 A씨(당시 21)가 B게임랜드 앞 이면도로를 거니는 C양(13) 등 10대 여성 2명에게 “드라이브나 가자”며 건넨 말이다. 가출한 채 거리를 떠돌던 두 사람이 차에 오르자 A씨는 북구 만덕산으로 향했다.

지난 22일 밤 10시쯤 방문한 부산 서면 B게임랜드. 평일 밤인데도 오락실 안팎에 사람이 많았다. 김민주 기자

지난 22일 밤 10시쯤 방문한 부산 서면 B게임랜드. 평일 밤인데도 오락실 안팎에 사람이 많았다. 김민주 기자

전망대에 다다르자 A씨 본색이 드러났다. 이들이 가출청소년인 걸 한눈에 알아보고 접근했던 A씨는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겠다. 아니면 (소년원에) 바로 위탁기관에 보낼 수도 있다”며 압박했다. 결국 A씨는 해운대구에 있는 모텔로 이들을 끌고 갔다. 방 두 곳을 잡아 C양을 강간했고, 친구는 강간 미수에 그쳤다.

C양은 “다른 방에 가서 씻겠다”고 말한 뒤 친구와 모텔을 도망쳐 나왔다. 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이 머물던 기장군 한 모텔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A씨는 SNS 등을 이용해 두 사람을 수배했고, 곧 피신한 곳을 찾아냈다. “기장군 모텔에서 10대 청소년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신고한 그는 경찰이 들이닥치기 직전 B양 등 5명을 먼저 데리고 나왔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A씨는 이들 중 다른 가출청소년(14)을 인근 숙박업소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가출 10대 사냥꾼’ 그놈, 결국 감옥 갔다

A씨는 부산 가출청소년 사이에선 ‘사냥꾼’으로 불렸다. B게임랜드 일대가 주요 사냥터였다. 전국에서 규모가 손꼽히게 큰 오락실인 이곳은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 한복판에 있다. 청소년도 쉽게 ‘뚫을’ 수 있는 술ㆍ담뱃가게와 모텔 등이 즐비해 이 일대는 최근 5, 6년 사이 전국에서 가출청소년이 몰려드는 플랫폼으로 변질됐다.

A씨는 B게임랜드 일대에서 만난 가출청소년에게 밥이나 술·숙소 제공 등을 빌미로 접근해 성범죄를 일삼았다. 그는 2020년 11월 10대 청소년 12명을 강간ㆍ간음ㆍ추행ㆍ협박ㆍ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A씨는 앞선 절도 범죄로 인한 집행유예 기간 중 사건을 저지르는 등 법을 경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피해자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점 등으로 보아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또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함께 명령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A씨 형량이 10년으로 낮아졌다.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은 파기됐다. 부산고법은 A씨 측이 일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들어 이같이 판단했다. A씨가 상고하지 않아 형은 확정됐다.

10대 성매매 강요 의혹… 오락실 일대 범죄는 여전  

경찰과 청소년 기관 등에 따르면 가출 플랫폼이 된 B게임랜드 일대에선 여전히 비슷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10시쯤 방문한 B게임랜드는 평일 늦은 시간인데도 적지 않은 손님이 몰렸다.

지난 22일 밤 10시쯤 방문한 부산 서면 B게임랜드. 실내 디스코팡팡 앞에 앉아 대화하던 10대 추정 여성들 중 1명이 내부를 기웃거리는 기자에게 "담배를 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민주 기자

지난 22일 밤 10시쯤 방문한 부산 서면 B게임랜드. 실내 디스코팡팡 앞에 앉아 대화하던 10대 추정 여성들 중 1명이 내부를 기웃거리는 기자에게 "담배를 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민주 기자

오락실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놀이기구인 ‘디스코팡팡’ 앞 벤치에 앉아 잡담하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외모만으로 나잇대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코인노래방 등 오락실 내부를 기웃거리는 기자에게 이들 중 1명이 따라붙어 “담배를 사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내부 곳곳엔 ‘22시 이후 청소년 출입 제한’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큰 효과는 없어 보였다.

경찰 이미지그래픽

경찰 이미지그래픽

가출 등을 이유로 이곳에 모여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은 범죄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부산진경찰서는 실종 아동 등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0대 후반 남여 2명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출한 청소년을 ‘보호’ 명목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관할 경찰서장 보고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현재까지 경찰은 이들이 무단으로 가출 청소년을 적어도 3명을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은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만간 강제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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