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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수업 안 와도 A" 마광수 홀린 히트가수…그뒤 반전의 2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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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는 30일 퇴임을 앞둔 조진원(65)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라이너스의 '연' 작사·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다시 음악을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오는 30일 퇴임을 앞둔 조진원(65)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라이너스의 '연' 작사·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다시 음악을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7080 히트곡 작사·작곡가, 대학교수, 세계적 학술지 논문 게재자. 언뜻 연관 없어 보이는 이 수식어들을 어우르는 건 조진원(65)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다. 20대엔 라이너스가 부른 '연'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아' '얼굴 빨개졌다네' 등 인기곡을 다수 만들었고, 30대부턴 모교 연세대에서 생물학 강의를 했다. 40대엔 당(糖)의 한 종류인 '오글루낵(O-GluNAc)'을 주제로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에 논문을 실었다. 신입생들과 노래방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동문이 참여하는 야외 콘서트를 기획하는 등 제자들과도 음악으로 진하게 소통했던 그는 오는 30일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8일 만난 그는 인생 새 막(幕) 계획에 대해 "음악을 다시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마음마저 날아라"란 후렴으로 유명한 라이너스의 '연'은 그가 대학 신입생 시절 직접 부르려고 만든 곡이었다. 1978년 그는 고(故) 마광수 국어국문학 교수의 수업에 기타를 메고 들어갔다가 "노래 한 번 불러보라"는 말에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 노래를 들은 마 교수는 "앞으로 수업에 안 들어와도 A 학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 이 곡으로 교내 가요제에 참가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라이너스의 베이시스트 문영삼씨가 듣고는 "팀에 곡을 달라"고 요청했고, 얼마 뒤 라이너스는 동양방송(TBC)의 '젊은이의 가요제'에 참가해 금상을 받았다.

조진원 교수의 대학 시절 모습. 사진 조진원 교수 제공

조진원 교수의 대학 시절 모습. 사진 조진원 교수 제공

그의 가수 데뷔곡은 홍종임과 함께 부른 '사랑하는 사람아'다. TBC의 음악 프로그램 '사랑의 듀엣 쇼' 출전곡 등을 모은 앨범이 제작되던 중, 곡이 모자라자 프로듀서가 그에게 작사·작곡을 의뢰했다. 가수는 따로 정해져 있었지만, 듀엣 간 목소리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커지면서 그가 부르게 됐다. 노래는 큰 인기를 끌었고, 신랑·신부가 직접 부르는 결혼식 대표 축가로 통했다. 약 2년 뒤 배우 한진희·정윤희 주연의 동명의 영화도 개봉했다. 그는 "영화사가 마땅한 제목을 못 찾던 차에 여대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이 노래에서 제목을 따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음악 생활을 접고 학업에 몰두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96년 연세대에 교수로 돌아왔다. 전공은 당 생물학. 그는 특히 분자 하나로 이루어진 당인 오글루낵에 천착했고, 2006년 그의 연구팀은 암 유발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 'p53'과 오글루낵의 결합이 당뇨 합병증 발병에 관여하는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해당 내용은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에도 발표됐다. 이 성과로 그는 2013년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 교수, 2017년 국제복합당질학회의 회장이 됐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노래방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열기도 했던 그는 "20년 가까이 옆을 보지 못하고 달려온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신입생을 대상으로 노래방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열기도 했던 그는 "20년 가까이 옆을 보지 못하고 달려온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교정에서 그는 유쾌하고 별난 스승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약 10년 간 신입생을 대상으로 노래방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열었다. 과목명은 '대중음악과 함께하는 대학생활'.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선배들과 교류하게 하려는 목표로 연 강의다. 인천 송도에 국제캠퍼스가 세워진 이후, 기숙사 백양하우스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화 제작, 춤, 노래 만들기 등 소모임을 열었다. 그는 "약 20년 동안 옆을 보지 못하고 철길 위만 달려온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2010·2012·2013년 연세대 백양로 가요제를, 2014·2015년 동문 야외 콘서트 '오월의 별 헤는 밤'을 기획하기도 했다.

퇴임 다음 날인 오는 31일, 그는 '조진원의 노스탤직 콘서트'를 연다. 어떤 일을 끝내고 다음 일을 이어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신곡 '종이부시(終而復始)'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에게 응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퇴임 다음 날인 31일 제자들과 함께 준비한 '노스탤직 콘서트'를 연다. 사진 조진원 교수 제공

조 교수는 퇴임 다음 날인 31일 제자들과 함께 준비한 '노스탤직 콘서트'를 연다. 사진 조진원 교수 제공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에게 조언해달라는 질문에 그의 답은 명료했다.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하라"는 것. 그는 "잘하지 못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취미를 즐길 여유도 없어진다"며 "주어진 일을 잘하면 두 가지를 다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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