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짜 이력' 믿고 놀러다녔다…'이안' 그 회사가 몰락한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파트 브랜드 ‘이안’‘엑소디움’의 대우산업개발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75위, 매출 5000억원의 중견 건설사다. 하지만 지난 2일 회생절차에 들어가며 1년 새 눈에 띄게 몰락했다. 회사 소유주와 경영진이 서로 폭로전을 벌였고, 분식회계와 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옛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이었던 대우산업개발은 2011년 GM대우가 자체 판매망을 구축하며 대우자동차판매가 공중분해하자 매물로 나왔고, 그해 중국 펑화(豊華)그룹에 인수됐다. 옛 대우그룹에 속한 기간도 2년 남짓해 이름만 ‘대우’인 셈이다.

회사 맡기고 신경 안 쓴 오너, 전권 휘두른 대표 

그 대우산업개발의 몰락이 떠들썩한 건 이상영(42) 회장과 한재준(53) 전 대표의 브로맨스와 그 파국의 스토리 때문이다.

이 회장은 중국 부동산 개발회사 펑화그룹 루간보 회장의 사위다. 미국 유학 시절 루 회장의 딸을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전 대표는 2015년부터 지난 3월까지 대표이사로 일했다.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 10년 넘게 ‘실세 대표’였다. 두 사람이 만난 건 2008년. 당시 이 회장은 ‘사업 미팅에 대동할 중국어 통역’을 찾았고 한 전 대표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한재준 전 대우산업개발 대표이사. 중앙포토

한재준 전 대우산업개발 대표이사. 중앙포토

한 전 대표가 2015년 취임 당시 밝힌 이력. 당시 보도자료 캡처

한 전 대표가 2015년 취임 당시 밝힌 이력. 당시 보도자료 캡처

한 전 대표는 미국 UCLA 기업경제학 석사, 맥킨지 컨설턴트, 코카콜라 브랜드 아시아 담당 등의 이력을 내세웠다. 대표 취임 때 낸 보도자료에도 이런 경력이 빼곡히 적혔다. 이 가운데 상당수 경력이 최근 거짓으로 드러났다. 중국어 능력도 부족해 통역 업무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둘의 관계를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한 전 대표가 중졸이라는 실제 학력 대신 UCLA를 나왔다고 속이고 다녔다”며 “허술한 성격의 이 회장이 한 전 대표의 충성심을 높게 사서 회사 대표로 앉힌 뒤, 본인은 사업에 신경쓰지 않고 놀러만 다녔다”고 말했다.

대우산업개발 전직 임원도 “한 대표가 비서실 직원들을 몇 개월마다 계속 바꿨고, 대원외고 출신이라고 했는데 동문 명부에 없는 등 수상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파트너에서 원수가 된 관계

파국은 지난해 4월부터였다. 경찰이 분식회계 의혹으로 대우산업개발 사옥을 압수수색 했는데, 한 전 대표가 회삿돈으로 서울 한남동 빌라를 구입하는 등 공금 횡령 정황이 나왔다. 한 전 대표가 회사의 실제 주인처럼 행세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이 회장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 전 대표는 유흥업소 출신의 여성에게 법인카드를 주고 슈퍼카를 선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8월엔 이 여성을 ‘마케팅 전문가’라며 채용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전 대표 측은 “이 회장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 회장도 횡령·배임·분식회계 혐의로 수사를 받는 처지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 민경호)는 올해 4월 이 회장과 한 전 대표가 1000억여원대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회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도 받는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의 분식회계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담당 경찰관과 친분이 있는 김모 경무관에게 3억원을 약속하고, 실제로 1억2000만원을 건넨 의혹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는 지난 4월 이 회장과 한 전 대표 등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는 지난 4월 이 회장과 한 전 대표 등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했다. 연합뉴스

한 전 대표는 올해 3월 해임됐다. 이 회장은 회사 경영에 직접 나섰지만 분양경기 침체와 신사업 실패, 경영권 다툼이 겹치며 법정관리행을 피하지 못했다. 올해 1분기 부채비율은 363%로 치솟았고 직원수도 1년 새 80명 줄어 344명 수준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미국 고급버거 체인 ‘굿 스터프 이터리' 국내 1호점을 서울 강남에 냈지만 5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은 지금도 언론 등을 통해 서로를 비방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만큼 상대의 약점도 잘 안다. 한 전 대표가 자신의 제보로 이 회장의 공수처 수사가 시작됐다고 인정할 정도다. 회사 임직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 촛불 같다”, “망해가는 중”이라는 글을 올리며 허탈감을 드러내고 있다.

2020년 두산건설 인수 시도는 두 사람의 브로맨스에 마지막 불꽃이 튀던 시기다. 업계에선 자사보다 규모가 훨씬 큰 회사를 사들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이 회장과 한 전 대표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당시 둘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은 서로에 대한 신뢰로 가득했다.

이 회장=두산 인수합니다. 마음 정했습니다. 이번 인수로 한 대표는 은퇴 없습니다.
한 전 대표=회장님. 아직 판만 벌인 거고,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이 회장=목표가 분명해야 더 좋은 딜이 나오지요.
한 전 대표=네, 일단 큰 기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0년 주기로 계속 커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회장=제 곁에 있어주셔서, 지켜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한 대표의) 은퇴 없습니다. 끝.

두 사람은 2년 만에 ‘너 죽고 나 살자’는 난투극을 벌이는 사이가 돼 지난 14일(한 전 대표)과 16일(이 회장) 나란히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구속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