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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냄새 난다…10년 내다보는 마윈이 찍은 스타트업 어디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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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중국 기업 정보 플랫폼 톈옌차(天眼查)에 회사 한 곳이 등록됐다. 저장성 항저우에 설립된 이 회사의 사명은 1.8미터해양기술(一米八海洋科技, 중국명: 이미바하이양커지), 등록 자본금은 1억 1000만 위안(약 200억 원)이다. 평범한 해양 관련 회사처럼 보이는 이 신생 기업의 주주 이력을 들여다보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냄새가 짙게 난다. 특히 2대 주주(지분 10%)로 등록된 항저우 다징터우 212 문화 예술 주식회사의 경우 마윈이 지분 99.9%를 소유한 회사다. 기타 주주 및 경영진도 알리바바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사진은 2016년 홍콩에서 열린 핀테크 컨퍼런스에 참석한 마윈의 모습. 블룸버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사진은 2016년 홍콩에서 열린 핀테크 컨퍼런스에 참석한 마윈의 모습. 블룸버그

이 회사는 사명에서 정체성을 알 수 있듯 해양·어업과 관련이 깊다. 양식업, 식품 판매, 수산물 냉동 가공 및 연안 풍력 발전 시스템 연구 개발을 다룬다. 관련 업계는 이미바하이양커지가 스마트 농업, 스마트 어업 등을 지향하는 알리 산하의 새로운 사업 부문이 될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마윈은 은퇴 후 농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2020년 10월 중국 당국의 핀테크 규제를 비판하고 약 2여년간 행적을 감췄던 마윈의 소식이 가장 먼저 들려왔던 곳도 ‘농업’ 현장에서였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마윈은 올해 5월 일본 도쿄대의 도쿄 칼리지에 객원교수로 초빙됐다. 신문은 “마윈이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량 생산을 중심으로 연구에 조언하고 참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마윈은 앞서 7월 홍콩대 경영대학의 명예교수로 임명됐다. 그는 홍콩대에서 금융, 농업, 기업 혁신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전자상거래로 중국을 제패한 마윈이 찜한 다음 먹거리는 ‘농업’이라는 시그널이 다양하게 포착된 가운데, 마윈은 농업의 가능성을 어떻게 점치고 있을까.

공백기에도 쉬지 않고 세계 농업 현장 시찰한 마윈

2021년 10월, 마윈은 네덜란드에서 농업 관련 회사들을 시찰했다. 알루미늄 압출 및 온실 지붕 전문업체인 BOAL그룹을 포함해 대부분 농업 및 현대 온실 기술과 관련된 회사였다. 당시 마윈은 네덜란드에서 농업이 젊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방법과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 방법을 주제로 한 토론에도 참여했다.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 홈페이지에 실린 마윈의 모습. 홈페이지 캡처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 홈페이지에 실린 마윈의 모습. 홈페이지 캡처

2022년에는 일본 와카야마현 긴키대학교 양식연구소 오시마 스테이션에서 그의 행보가 포착됐다. 그는 이곳에 머무르며 일본 양어 기술 조사 및 연구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에는 태국 재계 1위 기업인 짜른포카판그룹(CP그룹)이 소유한 홍콩의 치아타이 그룹 일가와 두 차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윈 접촉설이 돌 무렵 치아타이 주가가 800%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다. 치아타이는 ‘세계의 부엌’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세계 최대 종합농업기업이다. 종자, 비료, 농업 장비 등을 공급하며 최근에는 농산물 배송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중국 체류 중 보여준 행보 역시 농업을 향해 있었다. 그는 저장성 핑후(平湖), 자싱(嘉興)에 위치한 알리바바의 디지털 농업 기지를 방문하거나 더저우, 지난, 산둥에 있는 스마트 농업 프로젝트 현장을 시찰하며 농업에 대한 강한 관심을 여러 차례 입증했다. 올해 2월 알리바바는 중국의 분자육종*을 연구하는 보루이디바이오테크놀로지(博瑞迪生物技術有限公司, MolBreeding Biotech)에 대한 투자를 주도했다.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보루이디는 중국 내 분자육종 분야의 스타 기업이다. 중국 최초로 농업용 액상 포획 염기서열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자마커를 통해 각 개체의 유전적 특성을 확인하여, 효율적으로 우수한 개체를 판별하는 육종 기술

빅 테크 기업들도 ‘대세’ 농업에 합류

중국정보통신기술학회(CICT)가 발표한 '2021년 중국 디지털 경제 발전 백서'에 따르면 2020년 중국 디지털 경제 규모는 39조 2000억 위안(약 7137조 원)으로 GDP의 38.6%를 차지했지만, 농업 분야의 디지털 경제 보급률은 8.9%에 불과해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농업 경제의 디지털화는 성장 여력이 크다.

빅테크 기업 가운데 마윈과 알리바바만 농업에서 가능성을 읽은 것은 아니다. ‘넷이즈 돼지농장’은 출범 당시 업계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2009년 넷이즈(網易)의 설립자 딩레이(丁磊)가 직접 팀을 이끌어 돼지 양육부터 판매까지의 전과정을 고급화했던 프로젝트다. 2011년 3월 저장성 안지에 넷이즈 최초의 돼지 사육 농장이 문을 열었고 넷이즈표 흑돼지 브랜드인 '왕이웨이양(網易味央)'는 프리미엄 흑돼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넷이즈(網易)의 설립자 딩레이(丁磊)의 양돈 사업. 공식 홈페이지

넷이즈(網易)의 설립자 딩레이(丁磊)의 양돈 사업. 공식 홈페이지

몇 년 사이 다른 빅테크 기업도 자체 농업 개발 계획을 전면적으로 공개했다. 핀둬둬의 설립자인 황정은 내부 연설에서 향후 핀둬둬가 농업 분야에 많은 투자와 심층적인 혁신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텐센트 또한 농업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업체인 아이커눙(愛科農)과 펑장스마트농업과학기술(豐疆智能科技)과 같은 농업 과학 기술 회사에 잇달아 투자했으며, 더 많은 틈새 분야를 개척하고 농업 현대화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변혁 단계에 있는 많은 기업에 농업은 매우 매력적인 큰 시장이기도 하다. 2021년 신둥팡 창업자인 유민훙은 라이브 방송을 통해 "향후 신둥팡은 대규모 농업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완커(萬科)와 비구이위안(碧桂園) 등 부동산 기업도 농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왔다.

빅테크 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이 농업 분야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뭘까? 우선 시장의 성장 공간이 아직 충분하다는 판단과 함께 대세의 흐름에 따르는 측면도 없지 않다. 몇 년 사이 규제 및 환경의 변화로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위험도 증가하는 데다, 언제든지 사업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을 목도한 기업들이 안정성, 특수성을 지닌 농업 분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에 농업 분야는 장기적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분야가 됐다.

‘전자상거래의 제왕’ 마윈, 농업에서도 1등 될까?

알리바바는 2019년에 디지털 농업 부서를 설립했다. 농업과 유관한 전자상거래 플랫폼에도 투자를 이어왔고 농산물 유통에도 깊이 관여했다. 알리바바의 소매 브랜드인 허마셴셩(盒馬鮮生)도 농업과 맞닿아 있는 사업이다. 올해 5월 기준 중국에는 185개의 허마촌(盒馬村)이 있으며 이 허마촌은 300여 개의 허마셴셩의 중요한 공급원이다. 장융(張勇)이 이끄는 알리바바 클라우드도 2018년 농업 디지털 솔루션인 알리클라우드 ET 농업대뇌(農業大腦)를 출시한 바 있다. 암퇘지의 임신 여부, 새끼 돼지 관리 등에 알고리즘, 영상 분석 기술을 도입해 생산량을 늘리는 시스템이다.

마윈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농업 분야에서 미래를 보고 역량을 모으고 있으나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농업 분야는 타 분야와 달리 국가 경제, 민생과 관련돼 이 분야에서 신뢰를 잃으면 기업 전체의 존망이 흔들릴 수도 있다. 10년 사이 공유 자전거, 커뮤니티 공동구매 등 트렌드에 맞춰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라진 기업의 전례만 봐도 그렇다. 대세라는 바람을 잘 타면 좋지만, 이 바람이 역풍으로 작용해 본체를 위협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마윈의 등장이 중국 경제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한다. 마윈이 이번 농업 분야 사업을 계기로 다시 경영 일선으로 복귀할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마윈의 복귀는 민영 경제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환경에서 매우 효과적인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임서영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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