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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화음도 이 ‘힘’이 빚어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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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23면

물리적 힘

물리적 힘

물리적 힘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이충호 옮김
서해문집

힘은 질량·속도·가속도와 함께 고전물리학의 기본이다. 한데 토목공학과 역사학을 아우르는 통섭의 학자인 지은이는 힘이 물리학의 범주를 넘어 인간 삶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은 물론 사회·문화의 진보와 혁신도 힘과 관련이 크다고 강조하며 힘을 매개로 도전과 극복의 인류사를 두루 섭렵한다.

지은이가 내놓는 힘과 인간의 상호작용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오케스트라도 그 하나. 단원들은 활이나 손으로 현을 밀고 당기고 뜯으며, 입으로 관에 바람을 불어넣고, 가죽이나 금속을 두들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는 힘을 움직임으로, 움직임을 울림으로, 울림을 웅장한 소리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렇게 나온 화음은 가슴을 울리고 머릿속에서 맴돈다. 힘으로 대변되는 과학과 예술 사이에 경계가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너머로 이달 초 평소보다 훨씬 큰 달이 뜬 모습. [AFP=연합뉴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너머로 이달 초 평소보다 훨씬 큰 달이 뜬 모습. [AFP=연합뉴스]

지은이에 따르면, 밀거나 당기거나 하는 물리적 접촉 없이 작용하는 ‘중력’은 힘 가운데 가장 불가사의하고 독특하다. 뉴턴조차 서로 닿아있지 않은 물체 사이에 힘이 전달되는 방식을 이해하느라 한동안 골머리를 썩였으니 말이다.

그런 중력을 우리는 흔하게 이용한다. 무거운 망치를 중력의 손아귀에서 떼어내 위로 든 뒤 중력에 의지해 내려놓는 망치질도 그 중 하나. 썰매와 미끄럼틀, 야구의 투구도 중력을 이용한다. 그네를 당기면 높이 올라갔다가 우아한 호를 그리며 내려오는 것도 중력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다. 탄도미사일도 마찬가지다.

우주 탐사도 빼놓을 수 없다. 1971년 아폴로 14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 셰퍼드는 6번 아이언 골프채를 가져가서 휘둘렀다. 비거리가 무려 수 마일이었다고 한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 골프공 무게가 그만큼 가벼워졌는데 사람의 근력은 그대로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지은이는 아폴로 11호 착륙선의 무게를 가볍게 설계한 것이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주장한다.

힘을 오해해 옆으로 새는 경우도 있었다. 공학을 공부한 경영 이론가 뱁슨은 독특하게도 뉴턴이 제시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활용해 29년 주식시장 붕괴를 예측하면서 거액을 벌었다. 그는 여동생과 손자가 수영장에서 사고를 당하자, 이를 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1949년 거액의 상금을 걸고 반중력 논문 경진대회를 열었다.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원의 박사후 연구원 두 명이 상을 받자 당시 소장이던 오펜하이머는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소용없었다. 훗날까지 이어진 대회에서 호킹 같은 저명한 물리학자들도 논문을 투고했다.

건축물도 힘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산물이다. 로마의 판테온과 성베드로 대성당,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를 비롯한 돔 건축물은 미학과 공학의 접합점이다. 거대한 돔과 멋진 아치형 아케이드에는 다양한 힘과 무게가 균형을 이루도록 과학적·공학적으로 설계해 내구성을 확보한 지혜가 자리한다.

반면 1981년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갓 준공한 호텔의 로비가 무너져 1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는 편의만 생각하다 화를 부른 사례다. 원래 설계는 로비 위에 설치한 통로의 무게, 즉 누르는 힘을 견딜 수 있게 긴 강철 막대를 설치하게 했지만, 건설 과정에서 ‘편의상’ 한 쌍의 짧은 막대로 교체한 것이 붕괴 원인이었다고 한다.

전화기와 라디오에서 소리를 나게 해주는 건 밀고 당기는 힘을 가진 전자석이었다. 머스크는 자기장을 이용한 교통수단 하이퍼루프를 제안했고, 브랜슨은 2020년 그 시제품까지 내놨다. 진정한 혁신과 진보는 기본적 과학 원리를 인간의 필요에 맞게 현실화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원제 Force: What It Means to Push and Pull, Slip and Grip, Start and Stop.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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