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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nchi의 힘' 한국계 미국인 작가 "미국 버리니 행복하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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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유니 홍 작가. 2015년 K팝 분석서를 낸 뒤 사인회를 하고 있다. [Photo credit Euny Hong official website]

한국계 미국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유니 홍 작가. 2015년 K팝 분석서를 낸 뒤 사인회를 하고 있다. [Photo credit Euny Hong official website]

2019년 11월 2일자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OP-ED) 면에 한국어 단어가 하나 등장했으니, '눈치(Nunchi)'였다. 게스트 칼럼니스트, 유니 홍이 한국 특유의 눈치 문화에 관해 쓴 글이었다. 유니 홍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뉴저지에서 태어난 뒤 서울로 12살에 역이민을 왔다가 대학 시절 미국으로 다시 이주한 인물. NYT 칼럼은 한국의 뿌리를 갖고 미국인으로 태어난 그가 한국 문화를 체득한 과정을 쓴 책, 『눈치의 힘(Power of Nunchi)』에 기반한 칼럼이었다. 위트가 있으면서도 뼈도 있는 이 글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책은 한국어 포함한 다수 언어로 번역됐다.

그런 그가 지난 8일(현지시간), NYT에 쓴 글은 이 매체의 주요 독자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은, 외려 펀치를 날리는 내용이다. 뉴욕에서 파리로 이주를 한 뒤 행복한 이유를 적었는데, 제목인즉, '파리에선 내 외모가 아니라 내 언어로 평가를 받는다'. 요지는 그가 미국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뒤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 NYT 칼럼의 자기소개도 '파리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이자 문화 비평가'라고 해뒀다. 그가 '문화 비평가'라는 소개를 해둔 이유는 그가 2014년 K팝 등 한국 대중 문화의 유행을 예상한 책을 쓰고 관련 칼럼을 NYT 등에 게재하는 등의 활동을 해온 경력에 기반한다.

유니 홍이 눈치 문화에 대해 쓴 책 표지.

유니 홍이 눈치 문화에 대해 쓴 책 표지.

미국인으로 태어난 그가 미국에서 불행했던 이유는 뭘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거세진 미국 내 아시아인 혐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NYT 칼럼에서 "2020년 여름, 백인 남자 두 명이 차를 타고 가다 내게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소리를 질렀다"며 "이전까지 아시아인 혐오를 참고 또 참았지만 이 에피소드가 내 참을성의 마지막이었다"고 적었다. 이후 그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미국판 시니어 칼럼니스트 등으로 일했던 경력도 있어 유럽과의 인연도 있었다. 그는 "미국이여, 나는 나름 노력했지만, 여기까지만 하고 짐을 싸기로 했다"고 적었다.

유럽이라고 아시아인 혐오에서 자유롭진 않다. 인종차별도 분명히 있다. 그도 그렇게 썼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를 구사하는 아시아계 여성인 나와, 영어만 구사하는 백인 미국인의 경우, 파리 레스토랑에서 테이블을 먼저 안내 받는 건 나"라며 "(인종을 가늠할 수 있는) 외모가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가 더 먼저인 게 프랑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외모는 달라도 우리 말을 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일원이라는 문화가 프랑스엔 있다"고 덧붙였다. 태어난 미국에선 한국계, 한국에 돌아왔을 땐 미국인으로 겪어야 했던 그의 마음이 녹아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니 홍 작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제일 먼저 볼 수 있도록 올린 사진. Photo credit: Creative Commons License

유니 홍 작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제일 먼저 볼 수 있도록 올린 사진. Photo credit: Creative Commons License

프랑스에 대한 애정은 그가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과도 관련이 있다고 그는 적었다. 그가 10대 시절 한국 학교에서 받았던 수업 이야기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배웠던 일화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학교에서 독일의 지배로 인해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게 되자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에 '프랑스 만세!'라고 하는 내용을 배우며,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한국어를 쓰지 못했던 시기를 떠올린다." 그는 이어 "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렇게 언어라는 것이 인간의 개성과 정체성을 정의하는 하나의 특성이라는 점에 전율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속해서 '파리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로 살아갈 작정이다. 그런 그가 쓴 책의 제목은 '한국식 쿨함의 탄생: 어떻게 한 국가가 대중문화를 통해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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